포르투갈에서 가장 오래된 고적은 Alentejo에서 볼 수 있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과 특히 Conimbriga의 황폐한 고적의 터에서 감상할 수 있는 로마시대의 유적임.
로마시대는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시대중의 하나이며, 그 시대의 종교적이고 시민적인 건축물이 아직까지 잘 남아있음.
- 에보라 신전, Criptop rtico de Coimbra, 꼬닝브리가 市 등
서고트족 지배시대에는 Lamego 근처에 있는 「성 뻬드루 드 발스마웅 성당」과 Braga의 Real에 있는 「성 후르뚜오주 드 몽뗄리우스 교회」의 건축물들은 비잔틴과 서고트적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평가됨.
포르투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미술은 다른 나라들에 비교하여 비교적 늦은 시기에 Borgonha의 기사들과 클루니와 모이삭의 승려들에 의하여 프랑스로부터 전래되었음. 이 미술 양식의 표현에서 가장 대표적인 뛰어난 작품의 예로는 Coimbra의 구성당을 들 수 있음.
Alcoba a의 수도원에서 엘바스의 도미니칸식 고딕양식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고딕양식의 발전은 바딸랴 수도원에서 절정에 달함.
- 1388년에 시작된 바딸랴 수도원은 Flamboyant식 요소와 프랑스의 고전적인 고딕양식이 훈다도르 예배당에서 조화를 이루게됨.
나. 대항해시대 (Manuelino 양식)
15세기에 나타난 Manuel 양식이 고딕 양식에서 르네상스 양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대두하는데, 포르투갈의 가장 독특한 건축양식임.
Manuel 1세의 통치시기에 발전됨으로 이러한 명칭이 부여된 이 건축 형식은 신대륙발견시대에서 영감을 얻은 풍부하고 정교한 해양을 주제로 한 장식으로 특출함.
이 양식의 건축물에서는 종교적인 주제, 문장의 상징으로 짜여진 기둥, 조개껍질, 밧줄 또는 기묘한 해저 소재 등을 볼 수 있음.
리스본에 있는 제로니모스 수도원이나 벨렝 탑 외에도, 전국에 산재하는 마누엘리노 양식의 건조물을 흔히 볼 수 있음.
다. 대항해시대 이후
바로크 양식의 건축은 18세기 포르투갈의 상징이 되었음. 브라질에서의 금과 금광석 광산의 발견으로 인하여 포르투갈이 경제강국이 됨으로써, Jo o 1세 조정은 번영과 화려함을 과시했고, 유럽의 중요한 화가, 조각가 또는 음악가들이 포르투갈로 진출할 수 있게 했음.
- 이러한 현상은 Porto 시의 S o Francisco 교회의 내부에서 볼 수 있는 금으로 장식되고, 아라비아 타일과 대리석으로 아름답게 치장된 "개선의 바로크" 미술을 발전하게 함.
신고전주의는 프랑스와 이태리의 영향이 18C후반에 미치면서 나타났던 양식으로 19C까지 지속됨.
- 「성 벤뚜 궁전」 및 「아주다 궁전」이 대표적
낭만적인 왕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낭만주의가 대두
- Sintra에 소재한 뻬나 궁전이 대표적
20C에 들어서 새로운 건축개념이 등장하였는데 대부분 리스본, Coimbra와 레이리아에 있는 거주지와 건물에서 실현됨.
- 리스본 공과대학, 까삐똘리우 극장, 라디오 파빌리온 등이 대표적
2. 장식 예술
포르투갈은 아줄레주라 불리우는 타일, 보석세공 특히 장신구, 가구 및 도자기 분야가 발달하였음.
가. 타일
포르투갈 건축의 특징은 대다수 카톨릭종교 관련 건물들의 정면과 내부를 장식하는 화려하게 채색된 아라비아 타일에 있음.
이 타일장식의 전통은 중세 아랍인들의 정복시대 때부터 시작되었으나, 포르투갈에서는 16세기부터 타일 고유의 독특한 예술작품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음.
오늘에 이르기까지 타일 작품은 국가 문화자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 - 리스본에 국립타일박물관 존재
나. 보석세공-장신구
16C 보석세공은 소박하고 후기 르네상스의 특징을 갖고서 점점 발전
17C에는 종교적 특성이 짙은 보석세공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함.
- 리스본 소재 꼬멘타데이라스 드 아비스 왕좌와 성소등이 대표적
- 여타 쟁반, 물병, 그릇과 잔들은 고전주의 영향을 고수한 초기 장식 형태을 보여줌.
18C는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작품들의 지속적인 영향을 받았으며, 바로크, 로코코 및 신고전주의로 발전함.
19C에는 영국의 영향-Adam풍-을 보여주는데 주로 로마 스핑크스와 요정들이 작품의 주제로 채택됨.
20C는 몇몇 신예술(Arte Nova)과 아르데코(Art D co)의 영향을 받은 작품도 등장하나 전반적으로 18C의 전통을 계승함.
다. 가구
16C가 서랍장과 탁자에서 인도의 영향이 두드러졌다면 17C는 포르투갈적인 작품들로 특징을 이룸.
- 의자는 다리 굵기가 같은 곧은 모양에 바닥과 등받이가 가공된 가죽으로 처리
바로크풍이 압도적이었던 18C에는 자른 모양, 파상형, 나선형, 곡선 또는 역곡선으로 이루어진 로코코풍의 비대칭 양식이 특징임.
신예술과 아르테코풍은 새로운 형태의 가구를 선보이며 1930년대까지 지속되다가 이후 국제적이고 현대적인 스타일로 바뀜.
라. 도자기
리스본은 오랫동안 중국과 일본 도자기 유입과 보급의 중심지였음.
1670년이후 아라뇽이스 그릇들과 중국을 주제로 응용한 작은 그림들이 그려진 그릇들이 가장 많은 인기를 차지
18C 뽕발 후작 통치시대에는 간결한 장식, 다채로운 색상 또는 단순한 색상으로 가장자리를 광택처리한 도자기가 유행
1824년에는 비스따 알레그르(Vista Alegre)가 설립되어 도자기 생산이 본격화
1858년에 설립된 Sacav m 제조회사는 회사규모가 커서 국내생산을 대부분 담당하게됨.
3. 미술
건축과 병행하여 포르투갈의 화가들은 나라의 정치적 상승을 그들 나름대로 표현하였음.
초기의 가장 훌퓽한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15C로 거슬러 올라감.
- 삽화가 실린 문헌(또헤 두 똥부 고문서 보관소 소재), 성 비쎈트 드 포라 패널 그림, 성 비쎈트의 고난(Martiriosde Sao Vicente) 등
16∼17C에는 플랑드르 미술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중부지역(Coimbra와 Viseu)을 중심으로 국가적 개성을 유지해나가면서 리스본학파를 형성
- 바스꾸 훼르난데스, 가스빠르 바스, 조르지 아퐁수 등이 대표적
18C에는 낭만주의가 부활하여 19C중엽까지 지속
- 비에이라 루지따노, 도밍구스 쓰께리아 등
아눈씨아싸웅은 풍경화가인 동시에 동물화가로서 자연주의 탄생을 예고
19C에는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화풍이 주류를 이룸.
19C말∼20C초 Rafael의 형제인 꼴룸바누 보르달루 삥예이루(Columbano Bordalo Pinheiro: 1857∼1920)가 등장, 초상화 부문에서 천재적 재능을 발휘
1914∼1918년까지 전쟁기간중 파리에 거주하던 많은 화가 등 예술가들이 포르투갈로 피난, 포르투갈내 문화적 환경을 발전적으로 변화시켰으며, 인상주의, 입체주의, 미래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등 여러 조류가 형성, 발전
- 아마데우스 드 쏘우자 까드도수,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마리우 엘로이, 안또니우 다꼬스따, 에우리꾸 곤쌀브스 등
포르투갈 미술에서 가장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서정주의가 최근 몇 십년 동안의 국제적인 흐름을 잘 소화시키는 가운데 발달
4. 음 악
포르투갈의 음악은 종교음악에서 발전하기 시작
르네상스에 맞춰 15C초 다음합성음악이 등장하고 오르간 음악학교가 출현하였으며, 음악이론가의 활동도 두드러지는 등 17C에 전성기를 맞이함.
- 아카펠라풍의 학파가 형성, 발전하여 유럽음악을 대표
18∼19C에는 이탈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아 오페라 공연이 성행
20C초는 포르투갈 음악사에 또 하나의 강한 개혁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시기로 꼰쎄르바또리우 드 무지까의 역할, 뽀르뚜소재 성 까를루스 국립극장과 성 조앙 국립극장의 역할 및 국내 주요 도시에서 성행한 4중주단과 합창단의 결성 등으로 전성기를 맞이함.
- 작곡가 : 루이스 드 후레이따스 브랑꾸, 졸리 브라가 싼뚜스
- 지휘자 : 후란씨스꾸 라쎄르다, 알바루 까쑤뚜 등
- 악기 연주자 : 비아나 다 모따(피아노), 길예르미나 수지아(첼로), 주제 까를루스 쓰께이라 꼬스따(피아노), 마리아 조앙 삐르스(피아노), 또마스 알까이드(오페라 가수)
1950년대이후 실내악단, 합창단, 발레단을 창설하고 축제와 연주회를 장려하는 Gulbenkian 재단을 중심으로 음악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동양재단(Funda o Oriente)은 포르투갈과 아시아의 유대 및 협력관계를 돈독케 하려는 시도에서 극동의 젊은 지휘자들을 위한 국제 콩쿠르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음.ㅋ
현재 국립방송 교향악단, Porto 교향악단, 리스본 시향을 비롯한 여러 교향악단이 있으며, 아울러 민속음악, 민속무용, 전통의 Fado 등도 주된 음악적 표현양식으로 남아 있음.
Fado(영어의 Fate)는 갈망, 슬픔 및 학창시절에 대한 그리움 등을 포함하는 saudade(우리의 恨과 비슷)를 주제로 한 일종의 포르투갈식 민요하고 할 수 있으며, 크게 리스본 Fado와 꼬임브라 Fado로 구분됨.
대개 guitarrista(guitarra를 치는 사람), viola(스페인식 기타)치는 사람 등 3인조로 구성되며, guitarra는 현이 8,10 또는 12개된 포르투갈식 기타로 통이 만돌린처럼 둥근 것이 특징임. Fado 공연은 보통 밤10시부터 시작되는데, 여성가수는 요절한 젊은 fado 가수인「Maria Severa」(1810∼36)를 기리는 의미에서 어깨에 검은 쇼울을 걸치고 나옴. 대표적인 Fado작곡가는 O Marceneiro(master of carpenter)로 알려진「Alfredo Duarte」(1891∼1982)이며, 대표적인 Fado가수로는 Barco Negro(흑선)과 Gaivota(갈매기)를 부른「Am lia Rodrigues」(1921∼99)가 있음. Fado를 들을 수 있는 Fado House(보통 caf 나 식당을 겸함)는 리스본 구시가지인 Alfama, Lapa, Bairro Alto 등지에 산재해 있으며, O Faia, Sr. Vinho, Machado, Luso, Lisboa Noite, Casa do Fado 등이 유명함.
5. 문학
포르투갈의 중세문학은 두가지 방법을 통해 전수되어옴.
- 구전문학 : 직업가수 즉 암송하는 사람이나 가수 또는 음악가 등을 통해 전달되는 시와 운문적 이야기로 구성
- 글로 쓰여진 문학 : 주로 산문과 시로 처음에는 수도승 교육용이나 종교의식을 위해 만들어지다가 음유 서정시 (디니스 왕이 대표적)가 탄생, 발전
르네상스시대에는 희곡, 연극, 코메디와 해학극이 발전하였으며, 16C경에는 세계적인 시인 루이스 까몽이스가 탄생
- 그의 작품 Os Lusiadas("포르투갈인"이라는 의미)는 오디세이아 형식으로 Vasco da Gama의 인도항해 위업을 서사적으로 서술했으며, 이로인해 까몽이스는 포르투갈의 위대한 발견시대의 대표시인으로 추앙받고 있음.
17C 문학은 크게 주목을 받지도 못했고, 독창성도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
18C는 계몽주의 시대로 교육제도에 대한 개혁이 있었고, 뽕발의 대학개혁결과로 만들어진 왕립과학 아카데미는 문학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바로크의 요란한 스타일에 대한 반동으로써 클래식과의 조화와 규율로 복귀하려는 신고전주의 경향이 등장 - 안또니우 씰바와 안또니우 가르싸웅 신부가 주요 인물
19세기부터 20세기 초는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 변천을 겪음.
- 자유주의자와 절대주의자들간의 시민전쟁으로 인해 낭만주의 유행하였는데, 그 첫단계는 근본적으로는 사회와 을 변화시키려는 의도로 인해서 애국적·민주적·혁명적·개혁적 그리고 비판적이었으며, 두 번째 단계는 부르조아적이고 적으로 변해 사회적·정치적 투쟁에 대한 의지를 단념함.
- 70년대 세대(A Gera o de 70) 내지는 꼬잉브라 학파가 19C중반이후, 산업혁명의 시작, 기술의 발달, 노동인구 및 일부 민족주의 움직임 등 주요 사회사건들로 점철되면서 문학에서도 사실주의 운동이 주류를 형성
20세기에 들어와서 까몽이스이후 포르투갈 최고의 시인으로 불리우는 Fernando Pessoa가 등장함. 그는 포르투갈의 시문학을 개혁했음.
- 뽀르뚜에서 최초로 문학의 개혁을 시도하는 단체인 '포르투갈 문예부흥'이 등장
- 예술과 연계되어 떠오른 모더니즘은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그 형식의 변화가 특징인데 논쟁적·개혁적 성격의 운동인 르페우(Orfeu)와 개인적·심리적·본능적인 거셍 가치를 부여하며 생동감있고 독창성을 중요시한 쁘레젠싸(Presenca) 에서 가장 잘 표현되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