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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2008.06.07 04:25
루마니아,즐거운 묘지 (서푼짜 마을)
조회 수 7592 추천 수 8 댓글 0
◆ 서푼짜 : '즐거운 묘지' ◆ 루마니아 북서부 끝에 위치한 서픈차마을. 마을의 약간 안쪽에 자리잡은 공동묘지에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촛불과 꽃을 들고 고인들의넋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분위기는 여느 공동묘지와 사뭇 달랐다.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표현하면 죽은 자를 욕되게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 묘지의 이름이 바로 ‘즐거운 묘지’다. # 죽음을 즐거움으로 승화한 장식들 “모두들 저를 봐 주세요. 저는 이 세상을 즐겁게 잘 살다 갑니다. 왜냐하면 저는 저의 형제들과 놀기를 좋아했기 때문이죠. 그들은 노래하고 나는 춤을 춥니다. 우리는 모두를 기쁘게 하였죠. 내가 결혼을 하려고 할때 죽음이 나를 찾아왔고 나의 삶을 거두어갔죠. 사랑하는 부모님. 저의 형제들로부터 위안을 받으세요. 이제 작별을 고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저를 잊지 말아주세요.” 묘지 한쪽에 자리잡은 한 청년의 묘비에 새겨진 글이다. 묘지에 빼곡이 들어찬 6백여개의 이 묘비들에 새겨진‘죽은 이의 말’이야말로 묘지를‘즐겁게’ 만드는 첫번째 요소다. 이들 묘비는 각양각색의 무늬 위에 죽은 자의 이런저런 하소연을 1인칭 화법으로 담고 있다. 청년의 묘비 옆자리를 차지한 두살배기 아이는 어떤 사연을 안고 있는지 살펴보자. “나는 시비우시에서 온 그 택시를 증오한다. 이렇게 넓은 나라에 어디 차 세울 곳이 없어서 우리집 대문 앞에까지 와서 나를 차로 받다니. 어린아이를 잃은 나의 부모의 슬픔은 비교할 것이 없을 정도로 크다. 나의 가족들은 그들이 살아 있는 그날까지 나를 위해 애도할 것이다. 1978년 두살의 나이로 죽다.” 물론 죽음은 즐거운 일은 아니다. 불치병으로 사망한 한 가정주부의 비문은 가족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내 이야기 좀 들어보시오. 나는 나쁜 병이 들었는데 나를 돌보던 의사는 나를 치료할 수 없었다오. 불쌍한 나의 삶은 얼음처럼 녹아만 갔소. 불쌍한 내 딸은 엄마를 잃어버린 비탄에 쌓여 있고, 나의 사위도 슬픔에 젖어 있다오. 나는 51세의 나이로 이 세상을 떠난다오. 1987년 사망하다.” 하지만 많은 묘비들은 이런 죽음의 고통을 ‘즐거움’으로 승화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우선 묘비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그렇다. 묘비의 이름은 양치기, 농부, 퇴직한 군인 등 직업에서부터 귀머거리, 주정뱅이 등 별명까지 다양하다.또 묘비에 장식된 각종 그림도 죽은 이의 특징을 쉽게 파악하게 해준다. 마차를 탄 모습, 다정한 여인의 모습 등 다양한 그림들은 죽은 이의 평생의 활동 또는 그의 사망 원인이다. 그림의 색깔도 중요하다. 녹색은 삶을, 노란색은 풍요로움을, 붉은색은 열정을, 검은색은 죽음을 각각 상징한다. 그림 위에 위치한 비둘기가 흰 색이면 정상적인 죽음을 검은색이면 비극적인 끝을 상징한다. 이에 죽은자의 자기소개까지 보태지면 한마디로 ‘즐거운 묘지’는 마을의 역사책 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게 묘지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은 예로부터 내려오는 서픈차마을의 사망관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서픈차는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따라 흐르는 티사강과 카르파티아산맥으로부터 이어지는 작은 언덕들에 둘러싸인 평화로운 마을이다. 약 5천명 정도의 주민들로 구성된 이 마을은 루마니아 북부지역인 마라무레시지방의 여타 마을들과 같이 매우 고립돼 있다. 마라무레시지방은 오래 전부터 지리적으로 멀고 접근이 어려운 관계로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으며 이러한 까닭에 타지방에 비해 독특한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고립으로부터 이 지방 사람들의 자기 문화와 전통에 관한 깊은 사랑과 보존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서픈차의 주민들은 정교회의 전통을 열심히 실천하며 그것을 하나의 의무로 간주한다. 루마니아의 농부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들은 십자가를 영원한 휴식으로, 꿈으로의 통로로 여기고 있다. 죽음은 자연발생적인 것이며 나이든 이들은 죽음을 초연히 기다린다. 또한 이들에게 가족은 생활의 기본적 터전으로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 지역의 가족 구조는 부족적 생활단위에 기초해 대를 이어 계속돼왔다. 결혼한 여성들은 남편의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며 맏딸은 그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얻는다. 많은 아이들을 키우는 것은 항상 기쁨이며 의무다. 아내는 가정을 돌보며 남편은 가축을 키우고 산에 일을 하러 간다. 아들들은 아버지의 일을 도우며 딸들은 어머니들의 일을 도우며 옷감 짜는 일을 배운다.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결혼은 주로 같은 마을 내에서 이뤄진다. 따라서 성도 몇개 되지 않는다. 서픈차마을의 경우에는 단지 네개의 성이 존재한다. 폽, 스탄, 투르다, 홀디스다. 묘비에 별명이 많이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네개밖에 안 되는 성만으로는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별명은 주로 그 사람의 직업, 모자라는 점, 나쁜 습관 등과 연관돼 만들어진다. 양치기, 귀머거리, 주정뱅이 등은 대표적인 예다. # 민족예술 살아 숨쉬는 마을의 추억 묘비의 재료가 되는 나무도 이 지역에서는 역시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서픈차마을에서 숲은 옛날부터 중요한 경제적 활동의 원천이었다. 나무는 거의 모든 사물들에 사용되는 기본적 재료로 이 지방에서는 힘과 영원의 상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교회, 십자가, 가정집, 대문, 담, 가구 등 거의 모든 것에 나무가 사용되었다. 물론 현재는 벽돌집 등이 많이 보이기도 하지만 최근에 생겨난 것들이다. 즐거운 묘지’는 따라서 이런 서픈차마을 민족예술의 살아 숨쉬는 보고이며 마을의 추억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죽은 이가 들려주는 그 덤덤한 슬픔과 기쁨의 이야기로 죽음의 어둠에 도전한다. 서픈차마을의 묘지는 그래서 삶을 찬양하는 즐거움의 장소로 마을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루마니아 어학 박사 엄태현 (현 한국외대 외국학 종합연구센터 동유럽발칸연구소 대우 교수) '즐거운 묘지'의 재미있는 묘비들을 더 보시려면 아래의 주소를 방문해 보세요. http://www.samaelwings.com/sapanta/selfrm.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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