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별명이 꼴통이었다.
만나보니 예상과 다르다. 동그란 이마가 남보다 튀어나왔다는 느낌 외에는, 그 별명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한 이미지다. 어린 날의 ‘꼴통’에서 풍기는 의미는, 이제 봉사활동에 대한 물러섬 없는 힘찬 물줄기로 해석해도 좋을 것 같다.
독일에서 유일한 이종문화간의 호스피스 단체를 이끄는 그녀, 김인선(62세).
그녀의 청춘은 그 깊이만큼 까칠하게 목이 메인다. 그리고, 고단했던 과거는 현재의 삶에 자연스레 냇물처럼 강이 되어 흐른다. 슬픈 현실에 맞닥뜨린 이가 그녀 앞에 마주하면, 울먹이는 등이 자연스레 토닥거려질 것 같다. 따습다.
이제 꼴통이 아닌, ‘부드러운 리더, 김인선’이라 불리는, 그녀의 길옆에 나란히 걸어가 보자.
유로저널: 근황이 궁금하다
김인선: 한인들간 소통공간인 ‘대화의 기술’ 세미나를 몇 년 째 진행하고 있다. 반응이 좋아 덩달아 사명감까지 생긴다. 지난해에 이어 5월엔, 나이 드신 1세대 분들을 위한 ‘소망사진’(영정사진) 무료촬영 행사도 하고 있고, 여전히 호스피스 교육에도 주력하고 있다. 요즘엔 1세대 어르신 외에도 젊은 세대들의, 도움을 바라는 연락이 많아 분주한 편이다.
유로저널: 지나왔던 이국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있다면.
김인선: 시작이 가장 힘들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1972년,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문화적 충격은 글쎄...이곳에 오신 1세대 분들이 공감하는 이질적 문화, 음식, 언어 등이었다. 3년 정도 지나니 좀 나아졌다. 간호사로 일할 때였다. 독일 간호사 중에 괴롭히는 이가 있었다. 독일 말을 잘하게 되면 혼내주겠다고 작심하고 독일어 공부를 했다. 따질 정도 되니까 그 사람은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인생이 그런 거 아니겠는가. 하하..
유로저널: 그럼 행복했던 순간은.
김인선: 독일에서는 내가 원하면 뭐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좋았다. 더 좋았던 것은 나의 사생활을 일절 물어보지 않은 게 좋았다(제 사생활이 궁금하면 직접 연락하세요..흐흐). 한 인간으로서 존중받는 느낌이랄까, 무언가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랄까. 난 독일에서 희망의 씨앗을 보았다.
유로저널: 간호사로 꽤 오랜 시간을 일했다. 원했던 직업인지.
김인선: 사실 독일에서 간호학교를 다니고 간호사로 일한 것은, 이곳에서 살기 위한 일종의 생존수단이었다. 원래 미술공부나 예술계통의 공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간호사로 일한 후에는 보람이랄까, 전혀 후회가 없었다. 나에게 호스피스를 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나름대로 물밑작업이 아닐까 생각된다. 절반은 나의 의지지만, 절반은 무언의 이끌림이었다.
유로저널: 간호사와 호스피스는 엄연히 다르다. 호스피스 일을 하게 된 계기는.
김인선: 디아코니세 안수를 받고 신학공부를 하고 싶었다. 신앙의 맹종이 아닌, 진정한 믿음을 갈구했다. 그러다보니 훔볼트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독일 정식목사가 되어 2세들과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많이 방황했다. 그러던 중 친구의 소개로 호스피스 강사로 일해 보겠느냐, 는 제안을 받게 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을 텐데 어디서 죽을 것인가,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많은 이민자들의 자문일 게다. 나 또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죽는다는 생각 또한 안했다. 너무 젊어서였나. 결국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이민자들의 마지막을 함께 해야 한다, 는 내면의 갈증이 일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 일을 냈다.
유로저널: 삶의 마지막은 순서가 없다. 가족이나 친구 중에 중병을 앓아 죽음에 임박할 때, 원하지 않아도 호스피스 역할을 해야 할 경우도 있다.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
김인선: 사실 이곳의 2세들은 독일문화 속에 자라서 부모를 부양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덜한 편이다. 결국 이곳에 사는 우리는 가족의 경계선을 넘어 모두가 함께 도와야 하는 당위성에 서 있다. 거창한 봉사가 아닌, 가까이에서 돕는 체제다. 누구나 죽음은 예외가 없다. 1세대들끼리도 서로가 도울 수 있는 호스피스 교육이 필요하다. 그 교육은 자기 정립부터 시작된다. 자기를 알아가고 자기 통찰을 시작해야 남을 진정으로 도와줄 수 있다. 결국 호스피스 봉사는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또한 통계적으로도 보면, 죽음 앞에 섰을 때는 같은 감정을 가진 이와 소통하길 원한다. 그러니 같은 정서를 가진 한인들 스스로 공존공생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로저널: 그래서 호스피스 교육 관련, 독일과 유럽 순회강연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김인선: 그렇다.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우리 스스로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려고 한다. 현재 베를린에만 실시하고 있는 호스피스 교육을 독일 전 지역, 더 나아가 유럽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 모두 이민자로서, 피부로 공감하는 부분은 삶의 연장선상에 선 죽음의 문제다. 인생에서 거부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세월과 죽음뿐이다. 호스피스 교육시간은, 세월을 거치면서 소통하는 방법과 마지막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혹시 각 지역별로 호스피스 교육과 웰다잉, 대화의 기술에 대해 공감하고 싶다면 동행 호스피스로 연락해주길 바란다.
유로저널: 한국인 호스피스 환우 중에 기억나는 이가 있는지.
김인선: 평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지 못해서 외롭게 죽는 경우를 보았다. 정작 마지막에 누군가와 화해하고 싶은데, 혼자 죽어야 하는 경우다. 뒤돌아보면 이미 늦은 나이다. 나이 들면 약점이 강화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돈에 사로잡힌 이는 나이 들면 돈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발현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 들수록 마음을 내려놓고 버리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아직 시간이 있어, 라는 말처럼 오만한 말이 있을까. 지금 정기적으로 하고 있는 ‘대화의 기술’ 세미나가 바로 이런 훈련을 하자는 데 기인한다.
유로저널: 최근 ‘내게 단 하루가 남아 있다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을 적용한다면.
김인선: 물론 ‘하루’라는 단어가 주는 절실하고 의미적인 제목이긴 하지만, 하루는 너무 짧긴 하다. 죽음을 인지하는 순간에 허둥지둥 24시간이 지나가버릴테니...만약 시간이 조금 더 있어서 시한부 1개월이 남아 있다면, 남아 있는 이들과 화해와 소통을 하고 싶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과 ‘안녕, 사랑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내 것을 정리해서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작업도 병행하면서...그러려면 한 달도 짧다. 책 출간에 따른 인세 수입도 복지관 건립에 주춧돌을 쌓는 것이니 나눔의 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유로저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지
김인선: 30년 전 독일에서 시무하셨던 장 목사님이다. 얼마 전까지 캐나다에서 사셨는데 많이 편찮으시다고 들었다. 지금쯤 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수도 있다. 교회 목사해임 관련 논의 때 가슴 아프게 해드렸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무언가 문제가 있었을 때, 다른 부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후회가 된다. 그것 역시 대화의 단절 아니겠는가.
유로저널: 현재 독일 유일의 이민자를 위한 호스피스를 운영하고 있다.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김인선: 무엇보다 재정적 어려움이다. 독일사회는 성인, 그것도 외국인 호스피스는 관심이 없다. 게다가 이곳에서 40년 이상을 사신 1세대 분들은 어려웠던 시절에 와서 고생하며 살아서인지 주변을 돌아볼 시간과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또 젊은 시절에 연금을 한국으로 보낸 분들이 많아 의외로 힘들게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많다. 그나마 독일 인도주의협회의 지원을 받아 호스피스 교육 등은 실시하고 있다. 사실 후원만으로는 힘들지만, 십시일반으로 함께 한다면 한인사회의 노년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작은 정성이 큰 힘이 된다.
유로저널: 복지관을 계획하고 있다. 설명 좀 해 달라.
김인선: 독일도 개인주의가 팽배하면서 한계상황에 돌입했다. 역으로 공동으로 살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는 편이다. 하물며 우리는 전통적으로 함께 하는 사회였지 않은가. 점점 한인사회도 노노(老老)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나이 들수록 많은 한국 분들이 함께 노래하고 음식 먹는 것을 그리워하는 것 같다. 그런 장소를 만들고 싶다. 부담 없이 한국의 정을 느끼고, 인간적으로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곳이 절실하다. 그리고 단순히 친목에 그치는 것이 아닌, 돌봄이 필요한 치료적 공간도 확보되어야 한다. 치매환우 공간을 만들어 고립시키지 않고 어울려서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어 가능한 한 그곳에서 편안하게 돌아가실 수 있게 배려하고 싶다. 사실 이것은 남 이야기가 아니고, 나의 이야기이고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또한 나이든 1세대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고, 이곳에서 사는 젊은 한인세대들도 머지않은 미래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실 독일 양로원에서는 이런 정서적 부분이 케어가 되지 않는다.
유로저널: 점점 젊은 세대들의 유입이 늘어간다. 2세나 차세대들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으신 것 같다.
김인선: 고통을 통해서 인간은 성장한다. 고대 페르시아왕의 반지에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슬픔이 거센 파도처럼 몰려와 마음의 평화를 침몰할 때, 이 문구를 기억하곤 한다. 최근 베를린에서 발생한 유학생 자살사건을 보면서 차세대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야함을 실감한다. 젊은 세대들이 도움을 원하는 일들도 부쩍 늘어나는 추세다. 동행 호스피스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기성세대로서 그들과 호흡하고 등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차세대와의 소통은 우리 사회가 희망을 꽃 피울 수 있는 모토가 될 것이다.
유로저널: 좌우명이나 철학이 있다면
김인선: 사랑할 때 집착하지 않고, 매달리지 않는다. 동행 호스피스를 잉태한 창립자, 라고 해서 내 소유는 아니다. 늘 버릴 수 있는 자세를 견지한다. 변화시킬 수 없을 때는 내려놓는다. 난 어릴 때부터 힘든 환경에서 자랐기에, 좋은 것만 취하는 인생의 편식에 길들여지지 않았다. 그것은 내 인생 양질의 거름이 되었다. 독일에 온 후에는 잘못된 상황을 좋은 경험으로 승화할 수 있는 인성교육을 받았다. 나에겐 오기도 있고, 엉뚱한 구석도 많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다듬어지더라. 앞으로도 변하겠지. 난 이 정도로 충분해, 라는 말은 얼마나 알량한 언어인가. 인간의 인격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죽을 때까지 변해야 하는 것이다. 뭔가 이뤘다고 해서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면 이미 정지된 것이다. 정지된 것은 썩는다.
유로저널: 일이 아닌 개인적인 소망을 말해 달라.
김인선: 글쎄, 일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복지관이 건립되면 좋겠다. 내 나이 벌써 62세다. 이제는 삶을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느낀다. 내 인생의 시간표가 얼마나 더 주어질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진정성을 가지고 도와줄 수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09년 암을 발견하고 난 후부터, 몸이 하는 언어에 신경을 더 쓰긴 한다. 순간순간 하고 싶은 표현을 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사랑한다, 감사한다. 등등...
그녀의 진정성은 이미 검증이 된 듯하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교육을 하는 모습에서 오랜 시간의 무게를 견디고 우뚝 선 느티나무처럼 바르고 늠름하다. 사람을 대할 때 계산하지 않고, 순수함과 진정성으로 자신을 숙성시켜 지금의 자리에 서 있다.
그녀에겐 넉넉한 웃음이 있다. 파독 1세대에겐 같은 과거를 걸어왔던 공감의 웃음으로, 젊은 세대에겐 고단한 청춘의 길을 걸어온 선배가 갖는 혜량의 웃음으로.
그래서 그녀를 만난 이들은 그녀의 길옆에서 늘 서성거리고 싶어진다. 그녀만의 리더성의 키워드는 소통에 있었다.
▶동행 호스피스 “사회복지사업” 으로는 독일기관을 위한 세미나, 개인 및 가족 상담, 일반도우미(등대지기)봉사, 사별동행, 장례연결 및 봉사, 호스피스 봉사활동, 한인사회 소통과 교류, 이민자 실태 조사 등이 있으며 “교육사업” 은 대화의 기술, 글쓰기와 삶, 기공과 태극권, 음악일대기, MSK 교육, 슈퍼비전, 호스피스 자원봉사자 교육, 치매예방 교육 등 이 있다. 또한 동행 “문화 서비스” 행사가 연중 자선음악회, 패치워크 강좌, 움직이는 문화공연, 어린이 합창단 등으로 펼쳐진다.
▶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손길이 모여지고 있는 동행 호스피스에 작은 정성이라도 힘든 길을 가는 동행에 따뜻한 동반자가 되어주실 분은 후원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으며 재정 후원 이외에도 매년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일반 자원봉사자 교육, 슈퍼비전, 교육사 교육, 사별상담, 가정상담, 개인상담 등 여러 분야에 참여할 수 있다.
지금까지 Bezirk Charlottenburg - Wilmersdorf, Alfred Krupp von Bohlen und Habach -Stiftung, Senatverwaltung für Integration, Arbeit und Soziales가 동행 호스피스를 후원하고 있으며 개인후원과 한인단체들이 후원하고 있다.
연락처: 김인선 대표
Dong Heng Förderverein für Hospizdienste e.V. , Sigmaringerstr.1, 10713 Berlin
전화: 030 - 86 39 42 96 / HP:+49- 174-933-7655(김인선 대표)
팩스: 030 - 86 39 43 72
www.dongheng.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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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계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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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유로저널 안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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