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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2024.12.08 14:01
조선시대, ‘달거리’를 어떻게 처리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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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달거리’를 어떻게 처리했나? 성인 여성들 대부분은 한 달에 한 번, 그들만의 피를 보는 작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것은 흔히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약 28일을 주기로 출혈하는 생리 현상 곧 월경(月經)이라고 하는 것인데 월사(月事), 월객(月客)으로도 부르고, 우리말로는 ‘달거리’라고 하며, 빗대어 ‘이슬’, ‘몸엣것’ 등으로도 불렀다. 그런데 요즘이야 다양한 크기를 갖춘 생리대를 쉽게 살 수 있음은 물론, 각종 모양의 날개가 달린 최첨단 생리대에 음이온이나 한방 처리된 특수 생리대까지 개발돼 그 불편은 많이 줄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엔 여성들에게 생리는 부끄럽고, 비밀스러운 것은 물론, 꽁꽁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때는 생리대를 ‘개짐’ 또는 ‘서답’이라 하여 하여 주로 광목 옷감을 빨아서 재활용하는 것었다. 딸이 생리를 시작하면 어머니가 마련해 둔 광목천을 내어주며, 달거리 때 이것을 쓰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개짐에 베를 쓰기도 했는데 핏물이 잘 지워지는 대신 뻣뻣할 수 있기에 오래 입은 삼베옷을 뜯어서 재활용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지금과 달리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여, 비밀스럽게 밤에 빨아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외진 곳에 밤새 널었다가 날이 밝기 전에 얼른 걷었다.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 “피 묻은 개짐은 죽을 쑤어 더운 김을 쐬고 쇠뼈를 태운 재를 놓아서 빨면 지워진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조선의 여인들에게 달거리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었는지 알 수 있다. 한편, 개짐만으로는 그냥 흘러내릴 수 있어서 개짐 위에 오늘날의 팬티나 거들과 비슷한 기능을 했을 다리속곳이란 것을 입었다. <기사: 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제공> 한국 유로저널 노영애 선임기자 yanoh@theeuro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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