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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의 ARTNOW
2016.10.23 23:02
게릴라 걸스(Guerrilla Girs)의 대담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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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걸스(Guerrilla Girs)의 대담한 도전 게릴라 걸스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흡사 아이돌 그룹의 이름쯤으로도 들리는 이 예술가 그룹은 1985년부터 현재까지 자신들의 이름과 얼굴 등 정체를 숨긴채 공동 작업을 해 오고 있는 여성미술가 단체이다.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작은 전쟁'이라는 의미를 지닌 '게릴라'라는 이름이 시사하듯이, 이들은 1985년 한밤 중에 뉴욕 소호(SoHo)지역의 벽에 <이 미술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What do these artists have in common?)>와 <이 갤러리들은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을 10%이하를 전시하거나, 전혀 하지 않는다(These galleries show no more than 10% women artists or none at all)>라는 작품을 기습적으로 부착하면서 화단에 등장했다.
포스터 형식의 이 두 작품은 모두 텍스트로만 이루어졌는데, 상단에 적힌 제목은 고딕체의 굵고 검은 글씨로 쓰여져 있어 흡사 선언문과 같은 느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선보인 작품의 제목 아래에는 미국의 권위있는 미술잡지인 『아트 인 아메리카(Art in America Annual)』 1984년호와 1985년호로부터 발췌한 자료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미술 제도의 여성 차별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기 위해서였다.
위와 같은 통계자료를 바탕으로 한 게릴라 걸스의 페미니스트 제도비판 작업은 오늘날 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그들은 이처럼 사실에 근거한 데이터를 통해서 미술계의 남성 중심적 시선, 운영, 관행 등을 꾸준히 폭로하고 있다. 이러한 실증적 자료를 사용해 미술 제도 내의 여성 차별성을 드러내는 방식은 1985년 뉴욕 소호에 처음 제시했던 작품들 이후에 진행되고 있는 포스터 작업들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통계자료의 활용, 포스터 제시, 유인물 배포 등의 방법 외에 게릴라 걸스가 사용하는 다른 전략은 고릴라 가면을 쓰고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내세우는 익명성이다. 이러한 전략을 사용한 이유는 그들의 개인적 정체성에 관심이나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을 막고, 철저히 그들이 주장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제도비판적 행위를 부각 시키기 위해서였다. 기본적으로 게릴라 걸스의 제도비판에 관한 입장은 페미니즘적 입장이다. 그들의 페미니즘적 입장은 1980년대의 남녀 평등개념에 근거한 페미니즘 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시작되었다. 그들은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이 급여 평등이라 낙태권과 같은 여성의 권리와 양성평등을 중요한 쟁점으로 삼았던 것의 영향을 받았다. 게릴라 걸스는 이들의 입장을 당시 소수의 미술가들이 개념미술 방식을 차용해서 권력과 미술 제도의 관계를 파헤쳤던 제도비판 미술 방법과 연결시켰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활동 초기에는 미술 기관에 작업을 전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미술계의 양심'으로서 미술 제도 내에 일어나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과 대중에게 사회 속의 은닉된 진실을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페미니즘적 입장에서 미술제도를 비판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던 게릴라 걸스는 1990년대에 들어서는 미술계 밖으로까지 작업을 영역을 확장했다. 그들은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이슈에 집중했는데, 그 중에서도 낙태의 합법화와 같은 여성의 권리와 강간과 같은 여성 폭력 문제를 집중 조명했다. 그들의 이러한 사회비판적인 입장은 조지 H. W. 부시정부(1989-1993)가 들어선 후 사회정치적인 문제로 작품의 주제가 확장되면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들은 인종차별과 대외 정책적 문제, 저소득층과 소외계층에 대한 정부의 복지 정책 문제까지도 폭넓게 다루게 되었다. 이후 2000년대부터는 메스미디어, 특히 헐리우드 영화산업을 비판하기도 했고, 2005v 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 범위를 미국 이외의 국가로 넓히며 다른 나라가 처한 여성과 소외계층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화이트 채플에서 열리고 있는 게릴라 걸스의 전시 [Is it even worse in Europe] 또한 그들이 수집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이트 채플의 커미션 하에 게릴라 걸스는 유럽의 383개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그들의 컬렉션과 운영중인 프로그램에 관한 설문을 보냈다. 화이트 채플의 커미션과 같이 활동 초기에 제도 밖에서 제도를 비판하던 게릴라 걸스는 명성을 얻게 되면서 미술관들의 의뢰에 의해 전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러한 경우, 게릴라 걸스는 전시를 하는 미술관의 남성중심적 운영관행을 드러내거나 장소의 역상성이나 특성을 고려한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이번 화이트 채플의 전시도 이와 같이 화이트 채플의 커미션 하에 유럽의 미술제도 전반을 점검하는 광범위한 테이터베이스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설문은 '다양성(Diversity)'이라는 큰 주제 아래 각 기관의 운영 방침을 통해 여성에 관한 시각이나 입장을 확인할 수 있는 문항들로 구성되었다. 게릴라 걸스는 이러한 작업을 통해 유럽의 미술관과 박물관이 미국과 비교해서 여성 차별적 행태가 어떠한 것인가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본 전시에서 소개되고 있는 기관의 답변들은 고작 97개에 불과하다. 이는 97개의 기관만이 게릴라 걸스의 설문에 답변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불편한 진실에 대한 침묵인지 혹은 대답할 가치가 없을 만큼의 당당함인지 본 전시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날, 미술 제도가 양성평등을 이루었다는 통계는 본 전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여전히 부재하며, 매스 미디어를 통한 여성의 성상품화는 지속되고 있으며, 여전히 여성들은 사회에서 약장의 위치에 있다. 이와 같은 사실들은 게릴라 걸스가 초기에 지녔던 페미니스적 비판 의식이 최근들어 희미해졌다는 화단의 평가와 연관하며 아쉬움을 더한다. 또한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단체들이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공론화하는데 일정부분 필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상기시키도 한다. 오지혜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이화여대 미술학부 졸업 - 이화여대대학원 조형예술학 전공 - 큐레이터, 아트 컨설턴트, 미술기자, 칼럼리스트로 활동 중 - 이메일 iamjeehy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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