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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심원의 사회칼럼
2018.11.12 23:06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29): 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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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심원의 영화로 세상 읽기 (29): 파이란



movie_image.jpg  

감독: 송해성

주연: 최민식 (강재), 장백지 (파이란), 공형진 (경수)

개봉: 2001년 4월


교향곡이란 18세기에 후반에 형식이 갖추어진 관현악기로 연주되는 다악장형식의 악곡이다. 이름도 생소한 악기들이 수십 개, 혹은 수백 개가 함께 연주하여 아름다운 음의 세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 교향곡이다.


악기는 각각의 소리를 가지고 있다. 교향악에 연주되는 악기는 홀로 소리를 낸다면 소음이 될 수 있다. 함께 조화를 이룰 때 천상의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완벽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자신의 소리를 감추고 다른 소리가 분명해 지도록 보조해 주는 겸손한 태도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비결이다. 교향곡은 인간 세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지구촌에 거하는 70억 넘는 인간 악기들이 각기 고유한 소리를 내고 있다. 그 소리는 귀로 듣는 것만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있으며, 코로 향기를 맡을 수 있으며, 인류 역사에 삶의 발자국을 남기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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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 분명한 자기 취향의 발자국의 소리가 있으면서 자기 소리만 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소리가 아름답게 나타나도록 협력할 때 진성한 삶의 아름다운 소리로 남길 수 있게 된다.


2002년에 개봉된 ‘안소니 홉킨스’(한니발 렉터) 주연 <양들의 침묵> 시리즈인 <레드 드레곤>에서 교향악단의 등장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매번 연주할 때 마다 플롯 연주자는 자기 소리를 강하게 내어 화음의 조화를 깨트리는 단원이 있었다. 실수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주인공 '한니발 렉터'는 유명한 내가 의사로 사람의 신체를 손바닥 보듯 훤하게 볼 수 있는 능력자이다. 


연말이면 단원들을 위해 특별만찬을 준비한다. 지상에서 먹어 볼 수 없는 맛의 향연이 펼쳐진다. 단원들은 묻는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여 만든 음식이기에 이렇게 맛있는지 비밀을 공개해 달라 한다. 주인공은 대답하다. ‘이 음식의 재료를 알게 된다면 입에도 대지 않을 것이며 기절할 겁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지만 단원들은 유머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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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음식 재료는 자기 음만을 내어 음의 조화를 깨트린 단원의 콩팥 요리였기 때문이다. 후일 법정에서 진술 하던 단원들은 동료의 신체 일부를 나눠 먹은 것을 알았을 때 실신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잔인한 영화여서 청소년 관람 불가한 판정을 받고 있지만 깨달음이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삶의 음을 깨트리는 것은 이웃에게 공해가 된다는 것을 고발하기 위한 것이라 여겨진다. 어떻게 보면 영화이야기는 남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로 해석해야 한다. 


나 홀로 잘 살기 위해 동료와 이웃을 배반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다. 그것이 큰 일이 아니어서 기억에도 남지 않지만 죄엔 크고 작음이 존재할 수 없음을 감안할 때 내 소리만을 강조한 이기적 삶이 오늘 주어진 삶의 반경을 비좁게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생은 자신만의 소리로만 살아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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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있다. 결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길 수 없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좋은 인생이란 자신의 분명한 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 타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가 더 아름답게 울려 퍼지기 위해 자신의 소리를 약간 낮추어 조화를 맞추는 것이다. 실상 이것은 이론에 불과하다. 머리는 알고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타인의 아름다운 소리에 배가 아픈 비좁은 현실에 목 놓아 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현대는 과거보다 월등한 지식과 문명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과거에 알았던 지식들은 현대엔 상식이 되어 버렸다. 지식이 상식이 되는 시대의 약점이 있다면 어두운 그림자가 많아진다는 것이다. 비밀스럽게 안방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 다음날 온 세상에 알려지기도 한다. 


지구촌 한 구석에서 있었던 일이 실시간으로 국경의 장벽을 넘어 온 세계로 생중계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의 여정은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진실은 아니다. 진실이란 사람을 살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잘못된 진실 때문에 현대인들은 고통당하고 있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일인데 거짓말을 못한다는 자기 교만과 이기심으로 폭로하게 된다. 그 일로 인하여 타인의 마음을 다치게 된다. 이런 일은 사회에서 반복되는 일상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진실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데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사실을 알고 있다할지라도 침묵하는 것이 성숙한 진실이라 할 수 있다. 


진실, 그것은 삶을 걸어야 할 문제이다. 몇 마디 사건을 있는 그대로를 말한다 하여 진실 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최민식(강재) 주연의 <파이란> 영상 앞에 한 동안 내 인생이 굳어 버린다. 2001년에 개봉했으니 근 이십여 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꼼꼼하게 봐야 할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조건적 사랑이 충만한 세상을 향해 분노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조차 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진리의 본질을 잃어 가고 있다. 이러한 조건적인 것을 현대인들은 사랑이라 착각을 하며 서로를 부둥켜안고 사랑하려 한다. 중국에서 한 소녀 파이란(장백지)이 한국을 찾아온다. 


명분은 친척을 만나기 위함이었지만 이미 그 친척은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 상태였다. 중국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한국에 머물 수도 없는 상태에서 그녀는 조건적 결혼을 제안 받는다. 법적인 남편인 강재(최민식)는 삼류 양아치이다. 돈을 벌기위해 조건적으로 혼인 신고를 해 주었고, 주인공 파이란은 살기 위해 혼인을 한다. 실제 혼인이 아니라 서로 얼굴도 보지 않고 서류상 결혼을 한 것이다. 


그들은 조건적 만남이기 때문에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혼인 신고를 하고는 술집으로 팔려가기 시작한다. 무언가 잘못된 것임을 알고는 화장실로 달려가 혀를 깨물어 피를 토해내어 폐병 환자임을 알린다. 이후 강원도 화진포 해수욕장 부근의 세탁소에 맡겨진다. 


그곳에서 파이란은 고된 일로 인하여 지병이 악화돼 죽어간다. 그러면서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남편을 흠모하게 된다. 한글을 배워 남편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낸다. 죽음 직전에 법적인 남편을 만나러 가지만 양아치 인생을 만날 수 없어 그녀의 여린 마음이 담긴 긴 편지를 유물로 남기고 이국땅에서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강재에게 경찰이 소식을 전해 온다. 부인이 사망에 관한 소식이다. 강재는 죽어 화장을 마친 서류상 부인을 만나러 간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보내준 편지를 읽으며 철이 들어간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다. 그렇게 영화는 막을 내리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케 하는 조건적인 만남에 대한 분노는 내 마음에 길고 긴 여운으로 남는다. 한 때 꿈을 품고 태어난 아름다운 파이란의 눈물과 핏값을 누가 지불해야 하는가?


물론 영화일 뿐이다. 인생 막장으로 살았던 강재는 부인의 죽음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이 된다. 막 살아서는 안될 만큼 자신이 존귀한 존재였음을 깨달은 것이다. 파이란은 잠시 잠깐 낯선 땅에 머물다 가지만 그녀의 소리를 분명하게 내고 있다. 그 소리는 험악하고 추악하게 살아온 한 남자의 생을 조용하게 개혁하고 바꾸어 간다. 조건 없는 사랑인 것이다. 내 것을 다 내어주고는 것이다. 


상대의 소리를 영롱하게 나타내기 위해 내 소리를 조금 죽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교향곡의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된 것이다. 세상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 드는 것은 자기 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온통 자기 소리로만 가득차 있다면 그것은 공해가 된다. 교향악에 사용되어지는 악기는 최고급이며 모든 악기들이 가치가 있다. 그러나 자기 소리만을 강조하는 악기는 그 가치는 낮아질 수밖에 없게 된다. 내 소리가 가치 있기 위해선 상대방의 소리를 높여주는 방법밖엔 없다. 


내 소리가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오히려 내 소리는 가장 가치 있는 소리가 될 수 있다. 파이란이 죽음으로써 남편을 변화시킨 것처럼 말이다. 영화는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작아지고, 낮아질수록 커지고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박심원  유로저널칼럼니스트

- seemwon@gmail.com

-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 카카오톡 아이디: 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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