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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 조작’보다 ‘부실 검증’이 문제다


지난 대선 막바지에 문재인 후보의 아들이 고용정보원에 특혜를 받아 입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고 국민의 당에서 목소리를 높였고, 대부분의 미디어가 대서특필했었다.
 
당시 카톡 메시지를 보여 주고, 변조된 음성을 근거로 제시한 이 폭로는 고소 고발로 이어졌고, 정권이 바뀐 후 수사가 진행되었다. 어쩌면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었으니 고소 고발이 취하될 법도 했는데, 워낙 사안이 심각해서인지 취하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국 제보를 받았다고 조작한 당사자와 관련 인물들의 검찰 소환에 즈음하여 국민의 당에서는 비상대책위원장이 당을 대표하여 조작 사실을 발표하며 사과했다.
 
# 별로 어렵지 않은 디지털 증거 조작
 
당시 일부 언론에서 기자 혹은 외부 출연자의 발언으로 폭로 내용이 좀 허술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았지만 언론도 직접 검증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변조된 방송 인터뷰 내용을 보면 뭔가 허술하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물론 직접 조작을 실행한 당사자 잘못이 크다. 아무리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대부분의 고소 고발이 취하된다는 게 일반적이라 하더라도, 나름대로는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위한다는 신념을 가졌다 하더라도 카톡 대화를 조작하고, 지인 행세를 하며 취업 특혜를 폭로하면 문재인 후보에게는 상대적으로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하더라도 기본 상식에 어긋나는 불법 행위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기가 믿고 싶었던 취업 특혜를 ‘진실보다 더 진실로 보이는 허구’를 보여 주고자 했던 작가적 일탈 행위는 그에게 죄인이라는 타이틀만 돌려 줄 뿐이었고, 그가 지지하는 후보는 정치적, 도덕적으로 ‘새정치’는 커녕 구태 정치인들보다 더 부도덕한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안겨 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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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부실 검증’이다.
 
제보 조작 당사자에 대한 비난은 우리 모두, 그리고 모든 언론에서 공통적으로 쏟아낸 것이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더 반성해야 할 것은 부실 검증이다. 우선 국민의 당은 제보 조작 사실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그 제보를 검증하는 데 소홀했다는 점을 도덕적인 면에서만 반성했다. 조작 당사자로부터 제보를 받은 전 최고위원이 조작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가 법적인 측면에서는 중요하지만, 그 최고위원을 포함한 모든 당사자들은 검증 소홀에 대해 반성조차 회피하려고 한다.
 
국민의 당 차원의 발표나 언론에서 다루는 비난을 보면 실제로 조작에 가담했는지, 조작 사실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만일 이정도 수준에서 멈춰 버린다면 현재의 법적, 도덕적 시스템에서는 흔히 말하는 ‘꼬리 자르기’ 수준의 처벌만으로 종료될 것이다.
 
# 부실 검증이 더 심각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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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이나 다른 대통령, 의원 선거에서 수없이 많은 폭로전이 있었고, 그 내용 면에서 전혀 근거 없거나 혹은 약간의 근거를 과장, 왜곡한 네거티브 폭로전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그래도 약간은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할 개연성이 조금이나마 있었기에 유권자들도 ‘알아서’ 걸러 듣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카톡 대화나 인터뷰라는 조작된 증거를 제시하면서 폭로하는 경우 유권자들은 일정 부분 사실로 받아 들이면서 판단한다. 가끔은 별 것도 아닌 소문이 언론에서 기사화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우리 일반인들의 현실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증거’와 ‘언론’이라는 이중 왜곡을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호 인양을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인양 시기를 조정했다는 SBS 기사도 비슷했다. 발언 자체는 사실이나 그 발언자의 위치 등을 보면 객관적 신빙성이 떨어지는 데도 불구하고 주요 뉴스로 전파를 탔고, 결국 간판 앵커가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사과하고 그 직위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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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의 부실 검증은 재앙이다.
 
자기 지지 후보를 위해 뛰는 당원들, 그리고 당의 공식, 비공식 책임자들 책임은 언론의 책임에 비하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설사 국민의 당에서 지난 번 같은 폭로를 시도한다고 해도 일반인이 보기에도 허술한 그 증거와 인터뷰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조작된 주장에 확성기를 달아 준 언론이 더 큰 악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물론 완벽할 수는 없겠지만, 프랑스 언론이 세계적으로 최고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언론의 책임을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종이 신문이나 인터넷 신문에서의 기사들에 대해 언론으로서의 방패막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책임 면에서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중요하게 다뤄진다. 심지어 기사 뿐만 아니라 웹사이트에서의 댓글 내용도 언론사의 책임으로 규정했으니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몇 해 전에 한 프랑스 언론사가 통신사 Free 를 다루는 기사가 인터넷에 올라왔는데, 한 독자가 프리 사장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댓글을 올렸다. 하필이면 웹사이트 관리자들의 교체 시간이라 한동안 인터넷에 노출되었고, 신고를 받은 경찰은 그 언론사 발행인을 소환하여 조사했다. 게다가 이른 아침에 아이가 보는 앞에서 발행인을 체포하였다는 점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언론사의 책임 문제는 덮어지지 않았을 정도로 언론사의 지면이나 인터넷 사이트의 관리도 엄중하다. 그래서 언론사들은 자체 검열을 거친 후에 댓글을 공개하는 게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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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더 ‘정상적인 사회’를 위해
 
이번 제보 조작 사건에서 조작의 당사자가 더 있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조작 시도에 대해 국민의 당이 조금 더 검증하려고 노력했다면, 그래서 윗선으로 올라가지 않고 하급 기관이나 개인이 폭로했다면 그 여파가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허술한 증거에 대해 조금 더 검증해 보려는 언론이 있었다면 보도 자체가 없었거나 기껏해야 아주 작은 비중으로 다뤘다면 이렇게 심각한 상황이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의 개인들은 그렇게 심각하게 검증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원래 우리들 언어란 사물과 달리 주어진 대로 전달되는 게 아니라 다소 다른 느낌으로 전달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뒷얘기나 소문들은 입을 거치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번지기도 한다. 그래 봐야 헛소문이 그렇게 심각한 타격을 입히지 않는다면 약간의 파문만 일고 곧 잊혀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활자화 된다거나 인터넷에 찍혀서 보이는 내용들은 더 큰 위력으로 전달되며, 직접 말하지 않은 내용들도 함께 전달될 수도 있다. 그 위험이나 책임이 훨씬 중요한 것이다.


프랑스 유로저널 정종엽 기자
eurojournal25@ek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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