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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완기의 테마 여행기
2015.04.14 04:49
테마여행가 안완기의 « 알고가자 » 디낭,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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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낭, 중세의 모습이 그대로…… 브르따뉴 지방 사람들이 꼭 방문해야 할 도시로 꼽는 중세도시 ‘디낭’으로의 시간여행을 즐겨보자. 디낭은 고대 켈트어의 언덕에 해당하는 ‘Dunos’와 ‘산 자들의 보호자이며 죽은 자들을 지키는 여신 ‘Ahna’ 단어가 결합된 것으로, ‘아나 여신의 언덕’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디낭 Dinan’은 브르따뉴의 특성과 중세 성곽도시의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한 곳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몇 세기 뒤로 돌아간 느낌을 주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도시의 역사 ‘항스 Rance’ 강을 이용한 수상교통으로 남과 북을 연결하고, 육로교통으로 ‘깡 Caen’ 과 ‘브레스트 Brest’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해 ‘로마시대‘부터 병영이 설치되었다. 9세기경 한 무리의 수도사들이 옛 ‘로마제국‘의 길이 지나가는 ‘항스 Rance’ 강 유역의 언덕 위에 정착하였고, 11세기부터 ‘베네딕틴 Bénédictin’ 수도사들이 수도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주변에 주민들이 정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탄생했다. 외적의 침입을 막고자 목책방벽을 세웠으나…… ‘노르망디‘의 공작으로 후에 영국을 점령한 정복 왕 윌리엄이 되는 ‘기욤 Guillaume’이 이끄는 노르만족의 공격으로 1065년 목책성벽은 불타고 도시는 정복당하는데, 왕조를 세우기까지의 이야기를 천에 자수로 남겨놓은 ‘바유의 타피스리 Tapisserie de Bayeux’에 상세히 묘사 되어있다. 십자군 원정에서 1120년에 귀환한 ‘히발롱 르 후 Rivallon le Roux’라는 영주의 아들이 살아서 고국에 다시 돌아오면 교회를 헌납할 것을 서원하였던 약속대로 ‘생 쏘베흐 Saint Sauveur’ 교회 건립을 시작하였다. 1283년 ‘쟝 1세 Jean Ier’의 공작령에 귀속되면서, 외적의 침입이 많은 전략적 요충지이기에 언덕 위에 돌로 된 성벽을 건설하고 끊임없이 요새화를 구축하여 대포를 갖춘 3km의 성벽을 이 때에 완성했다고 한다. 23년간이나 지속된 영국과 프랑스간의 ‘브르따뉴 상속전쟁 La guerre de Succession de Bretagne’ (1341-1364) 당시에 난공불락의 위력을 떨쳤고, 1357년에는 프랑스 기사계급의 영웅 ‘뒤게클랭 Bertrand Duguesclin’의 지휘아래 최강의 영국군을 두 번이나 물리쳤다고…… 왕족만 묻히는 ‘생 드니’ 성당의 납골당에 유일하게 안장된 일반인(?)으로, 평소 디낭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소원대로 ‘쌩 쏘베흐 Saint-Sauveur’ 교회의 북쪽회랑에 그의 심장만이 보관되어있다. 상속전쟁이 끝나고 평화시기가 찾아오자, 지리적 여건을 이용한 해상교역활동이 두드러지게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부를 축적한 장인과 상인들의 잘 지은 목골가옥으로 가득 차게 된다. 15세기말, 독립된 공작령을 소유한 브르따뉴 공작의 유일한 혈육인 ‘안느 Anne’가 ‘브르따뉴 지방‘의 상속권을 그대로 갖는 조건으로, 프랑스 왕 ‘샤흘르 8세 Charles VIII’와 1491년 정략결혼을 하면서, 프랑스와 브르따뉴 공국 사이에 평화가 찾아온다. 16세기에는 왕비의 큰 딸이 ‘프랑스와 1세 Francois I’와 결혼하면서 지참금으로 가져갔고, 중세 도시이며 ‘브르따뉴 지방‘의 실질적 수도이던 아름다운 성곽도시 ‘반느 Vannes’에서 1532년 «합병 서약 Acte d’Union»을 통하여 브르따뉴 공국은 완전히 프랑스령이 된다. 1628부터 1662년 사이에 ‘베네딕트 Bénédictines’ 수도회에서 수도원을 짓고,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시키는데, 유명한 ‘샤또브리앙 Chateaubriand’, ‘쉬흐꾸프 Surcouf’, ‘브후새 Broussais’, ‘빠비Pavie’ 등등의 유명인사들이 이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단다. 18세기에는 항구도시인 생 말로와 내륙간의 통상교역을 통하여 선박건조 업과 가죽세공 업이 발달하는데, 가까운 항구도시 생 말로의 선박들에 필요한 돛을 만드는 천을 짜는 직물 공들이 정착하여 도시가 활성화된다. 1852년 높이 40미터, 길이 250미터로 건설된 고가도로에 의하여 육로수송이 원활하게 되고, 1879년 개통된 철도에 의하여 항구의 역할이 점점 사라진다. 또한, 디낭의 경제를 받쳐주던 직물산업도 영국의 기계화된 대량생산에 밀려 도시는 쇠락의 길을 걷는다. 산업혁명으로 프랑스 전체가 역동적으로 도시를 재개발하는 이 시기에 당시 가난하던 디낭은 재개발의 열풍에서 뒤쳐지지만, 역설적으로 중세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도시로 현재는 수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된다. 새옹지마 塞翁之馬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인에 의하여 주민 674명이 학살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만,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산업과 관광의 메카로 떠오르는 곳이다. 관광 명소 종탑 Tour de l'Horloge 디낭의 아름다운 풍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성벽 위에서 항구를 바라보는 모습이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1500년경에 빈번한 화재와 외적의 침입을 알리기 위하여 세운 종탑을 올라가 보자. 당시, 브르따뉴 지방의 영주인 ‘안느 드 브르따뉴 Anne de Bretagne’의 이름을 딴 2.5톤의 종이 설치되는데, 현재는 1906년에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며 새로이 만든 종으로 대체된 것이다. 벨기에와 접경지역인 노르망디 지방에는 흔하디 흔한 종탑이 브르따뉴 지방에는 ‘헨느 Renne’, ‘후제흐 Fougères’와 이 곳 디낭 단 3도시에만 존재하는데, 1932년부터 일반인에게 진입이 허용된 종탑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도시의 모습은 환상적이다. 디낭 성 Château de Dinan ‘생 루이 Saint-Louis’ 성문 가까이에 위치한 디낭 성은 원형 탑 ‘동종 Donjon’으로 구 시가지를 에워 싸고 있는 중세성벽의 일부분으로 1866년에 문화재로 등재된 것이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브르따뉴 공작이던 ‘장 4세 Jean IV’에 의하여, 타원형의 높은 방어진지용 성을 1384년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30미터 높이의 위용을 자랑하는 동종은 적군들에게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하였으리라…… 프랑스령이 된 후로 방어용 기능을 잃고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17세기 말엽부터 감옥으로 사용된 것을 1906년에 디낭 시에서 구입하여 선사시대부터 20세기까지의 디낭 역사와 지역특산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쌩 쏘베흐 성당 Saint-Sauveur 1112년 십자군 원정에서 포가 되었다가 돌아온 ‘히발롱 르 후 Riwallon le Roux’가 초석을 놓는다. 포로생활 시 고향 땅을 다시 밟게 되는 행운을 갖는다면 성당건립을 하겠다고 서원하였단다. 프랑스에서 동방의 영향을 받은 유일한 성당으로, 로마 식 아치와 그리스 식 원주들이 벽에 포함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갖는데, 지붕의 하중을 두꺼운 벽으로 지지하던 로마네스크 시대의 건축에 비하여, 훨씬 튼튼하고 웅장한 건축이 가능하였다. 프랑스 기사계급의 영웅 ‘뒤게클랭 Bertrand Duguesclin’의 시신은, 왕족만 묻히는 ‘생 드니’ 성당에 안장되지만, 평소 디낭에 묻히고 싶다는 그의 소원대로 이 성당의 북쪽회랑에 그의 심장만이 보관되어있다. 프랑스 테마여행, '알고가자' 대표 이메일: algogaza82@gmail.com 홈페이지: www.algogaz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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