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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2020.05.04 22:48

'가정의 달' 5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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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의 음악일기 두 번째 이야기
'가정의 달' 5월,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

20대의 어느 날, 겁 없이 떠나와 시작한 독일살이가 어느새 10년을 넘어섰다.
지금이야 메신저나 영상통화로 어렵지 않게 한국의 지인들과 연락이 가능하지만, 십몇 년 전만 해도 독일 내에서 한국어로 문자 메세지를 전송하는게 불가능한 때였다.

국제전화카드는 독일생활의 필수품 같은 존재였고, 빠듯한 유학생 살림살이에 한국 유선전화로 500분을 통화할 수 있는 바나나카드를 어느 중국 상점에서 2유로 할인해 판다는 것이 굉장히 귀한 고급정보로 여겨지곤 했었다. 

그때의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이를 만난다면 풀어놓을 이야깃거리가 잔뜩 있지만, '삐삐'가 가끔은 그립다는 누군가의 말에 '말괄량이 삐삐'인지 되물어 본 이도 있었으니 더 이상의 추억소환은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겠다.

많은 사람들이 외국생활이 힘들지 않은지 물어보지만, 인간관계에 회의가 느껴질 때도, 쓴 실패를 경험했을 때도, 몸이 아팠을 때도 나름 다 견딜 만했다. 단 한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에 머무는 가족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국과 독일의 물리적 거리를 체감 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 자가격리 등에 발이 묶여 어머니의 부고에도 한국에 가지 못했다는 한 커뮤니티의 글이 쉽사리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도 그 안타까움에 지극히 공감하는 심리적 유대감 때문일 것이다. 

이토록 타지생활에서 가족이 가지는 의미, 특히 '어머니'가 가지는 존재감은 다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Ah! vous dirai-je, Maman)' 
주제에 의한 <12개의 피아노 변주곡> C장조 K.265

모차르트가 유럽 순회 연주 도중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도 부모님에게만 보일 수 있는 응석과 투정이 잔뜩 묻어난다.

"오늘은 편지를 길게 쓸 수 없을 것 같아요. 끝도 없이 레치타티보를 작곡하느라 무리를 했는지 손가락이 아파요."

열다섯 살의 나이에 '거장'이라는 격찬을 들은 천재 작곡가 모차르트도 어머니 앞에선 '침대가 하나밖에 없어 아버지와 나눠 쓰느라 잠을 잘 못 잤다'고 어리광부리는 평범한 아들이었던 것이다.


mozart.jpg

모차르트 피아노 변주곡 C장조 K.265 자필악보

'반짝반짝 작은 별' 동요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곡의 테마는 '아! 말씀드릴게요, 어머니'라는 제목의 프랑스 민요이다. 구전되어 전해지던 이 노래는 1774년 브뤼셀에서 출판된 '순진한 비밀' 이라는 제목의 책에 처음으로 가사와 함께 실렸다.

어느 소녀가 한 남자에게 반해 마음앓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머니에게 털어놓는 가사이다. 모차르트는 1778년 파리로 연주여행을 갔을 때 이 노래를 접하고 그 멜로디를 이용해 12개의 피아노 변주곡을 작곡했다. 

단조로 연주되는 제8변주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이다.

제2변주의 왼손 반주에서 나타나는 모차르트 특유의 16분 음표 모티브를 듣고 있노라면 재잘재잘 연주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쏟아내는 모차르트와 그런 모차르트가 대견하고 귀여워 열심히 맞장구 쳐주는 어머니의 모습이 절로 그려진다. 

12개의 변주 안에서 때로는 과장스럽게 때로는 익살스럽게 어머니 앞에서 무용담을 늘어놓고, 가끔은 어린 나이에 감당해야 하는 연주여행의 힘겨움을 털어놓는 아들로서의 모차르트가 떠오르는 곡이다.

모차르트가 바쁜 연주여행 일정 중에도 편지로 어머니에게 일상을 공유했듯, 삶에서 언제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편'이 있다는 것은 참 힘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행운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노래

안톤 드보르작의 연가곡집 '집시의 노래' 중 <내 어머니가 가르쳐 주신 노래> op.55,4 
작곡가 안톤 드보르작은 30대 시절 세 아이를 차례로 잃고 슬픔에 잠겨있었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는 어머니마저 곁을 떠나고 없었으니 지독히도 외롭고 고독했으리라. 보헤미아의 집시이자 시인이었던 아돌프 헤이독의 시에 선율을 붙였다.

어머니가 나에게 가르쳐주신 노래 / 오래전 지나가 버린 어린 시절 /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네 / 이제 내 아이들에게 그 노래 들려주노라니 / 내 그을린 두 뺨 위로 / 한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네 / 보석 같은 기억 속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가사와 달리 이 노래를 들려줄 자식도, 기댈 어머니도 모두 떠나보낸 드보르작의 서글픔이 느껴지는 애절하고 구슬픈 멜로디이다. 어머니를 여읜 자식으로서의 그리움과 자식을 잃은 부모로서의 안타까움이 담긴 이 노래가 작곡가 자신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가 되었기를 바래본다.


요하네스 브람스의 <자장가> Op.49,4
요람.jpg
베르트 모리조, 1872, <요람>, 프랑스 오르세미술관 

드보르작에게 어머니의 기억이 두고두고 꺼내들을 노래가 되었던 것처럼, 많은 이에게 어머니가 불러주는 노래이자, 세상에 태어나 듣게 되는 첫 노래는 어쩌면 '자장가'일 것이다. 
기억하지 못하지만 세상의 빛을 보기 전 뱃속에서부터 익숙해진 어머니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장가만큼 안락함을 주고 안정감을 주는 노래가 어디 있을까?

베르트 모리조의 그림 <요람>에서 보듯 여인의 얼굴은 젖먹이를 재우느라 밤새 잠을 못 잔 탓인지 피곤해 보이지만 턱을 괴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요람 속 아이는 벌써 자세부터 엄마와 닮아있다.

행여나 스치는 바람 자락에도 뒤척일까 고이 품에 안고 수없이 귓가에 흥얼대었을 자장가.

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 아름다운 장미꽃 너를 둘러 피었네 / 잘 자라 내 아기 밤새 편히 쉬고 / 아침이 창 앞에 찾아올 때까지

Guten Morgen, Gute Nacht 독일어의 아침인사와 밤인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잘자라 우리아가~ 앞뜰과 뒷동산에~'로 기억되는 모차르트의 자장가만큼이나 익숙한 노래이다. 친구 베르타 파버의 아들이 태어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쓴 이곡은 단언컨대 브람스가 작곡한 작품 중 가장 사랑스럽고 대중적인 노래가 아닐까 싶다.

"나의 어머니, 당신은 막 꿈나라로 떠나려던 어린 천사들에게 몸을 숙이시곤 우리들의 여행이 편안하도록, 그 어느 것도 우리들의 꿈을 방해하지 않도록, 침대 시트의 구김살을 펴주고 눈앞에 어른거리던 그림자와 넘실대는 파도를 없애주셨지요. 마치 하느님의 손길이 바다를 잠재우듯이."

<어린왕자>의 저자 생택쥐베리가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에서처럼 세상 모든 어미들은 곤히 잠든 아이의 꿈길이 편안하기를, 젖먹이 아기가 걸을 인생길이 꽃길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장가를 불러주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딸인 나 역시 언젠가 내 귓가에 숨결을 맞추고 들려주었을 자장가를 기억하며 삶의 역경을 이겨낼 것이고, 나 또한 그런 엄마가 되어보리라 마음 먹어본다.

메신저로 영상통화로 한국으로 닿는 그 길이 너무도 쉽고 짧아진 오늘에도 괜스레 낯부끄러워 고마움을 입 밖으로 꺼내놓기 어려워하는 '딸'은 자장가 대신 생택쥐베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으로 그 말을 대신해 본다.

"엄마가 저를 위해 해주신 모든 것에 대해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툭하면 심통을 부린다고 제가 배은망덕하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제가 엄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잖아요. 엄마."


5월 가정의 달,

사랑 받고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는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천 번의 입맞춤을 보내며


음악 칼럼니스트 여명진 크리스티나
mchristinaye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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