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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붙여서 독일 손병원 가을이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하다가 추석이 가까워져 서야 가을을 만났다. 이제 저녁 밥상에는 차분히 가을이 내려 앉는다. 세월의 기운을 받아 영근 오곡백과(五穀百果)는 가을 정취의 진상품이다. 오곡은 쌀 보리 콩 조 기장이며 백과는 온갖 많은 과실을 뜻한다. 오늘도 햇살 고운 강변 들녘을 거닐어본다. 가벼운 운동을 하거나 자전거로 내 달리는 젊은이들의 옷차림에는 가을이 묻어난다. 야생화의 꽃 그림자가 진해진다. 꽃 그늘아래에서 가을을 지켜보는 것은 평온한 즐거움이다. 드높은 가을 하늘은 점점 올라가고 보름달은 차오르며 별은 한층 총총해진다. 팔월 한가위를 추석(秋夕)이라 한 것은 가을 저녁이란 뜻이라 달이 나오고 달 모양을 닮은 월병(月餠)을 만들어 먹는다. 친척들과 이웃들과 둘러앉아 떡 만드는 엄마가 떠오르는 계절이 가을이다. 동요 곡 가운데 엄마 생각이 나면 마루 끝에 홀로 앉아 별만 센다는 가사가 뭉클하다. 별 모습을 보노라면 엄마 얼굴로 떠오를 수 있건만 그리움은 한량없다. 초생달을 두들기는 엄마의 다듬이 소리가 그립다. 엄마는 항상 보름달로 대해준다. 엄마를 생각하면 고향이 따라 나와 추억얘기는 고향부터 쉽게 시작하게 된다. 한국 말을 쓴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순수 우리 말로 쓴 정지용의 <향수>에서 비롯된다.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오고 가을 전어는 깨가 서 말이라는 속담이 있다. 여름동안 바다에서 자라다가 가을이 되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수역에서 지낸다. 생선이 맞나 의심할 정도로 고소하고 기름지고 영양가 많아 사는 사람들이 돈 생각치 않고 많이 산다 하여 돈 전(錢)자 전어이다. 국산배는 미국에서 대박이다. 1985년도에 천안지역에 미국 수출용 배 단지가 조성되었다. 못 생기고 맛 없고 푸석푸석한 중국산은 한국산으로 둔갑하여 판매하기에 위조 방지용 QR스티커를 붙여야 할 지경이다. 미국 교민들 중에는 한국산 참외를 재배하여 부자가 된 이들도 더러 있다. 사과 수확량이 전국 1위인 안동사과는 지구 온난화 탓에 재배환경이 나빠지고 강원도에서 수확이 많아진다. 사과재배는 모래밭처럼 물 잘 빠지는 땅이 좋다 하여 모래 사 (沙) 열매 과 (果)이다. 가을의 으뜸 꽃은 코스모스와 국화이다. 산들바람 하늬바람에 한들거리는 코스모스의 자태에서 소박한 친근감이 생긴다. 가녀린 줄기에 상글상글한 잎새는 봄 철에 핀다 해도 가을을 생각케 한다. 형형색색으로 핀 코스모스의 하늘거림은 바람결보다 부드럽다. 꽃말은 어떤 꽃이든 색깔마다 다르지만 순결 순정이다. 코스모스 꽃 한송이로 학우의 등 짝을 치면 꽃 모양이 선명하게 찍히고 대판 싸움이 난다. 신이 세상을 만들고 더 아름답게 하기 위해 꽃을 처음으로 만든 게 코스모스이며 맨 나중에 만든 꽃이 국화라는 전설이 있다. 꽃 이름이 코스모스(cosmos)인 것은 혼돈의 시기에 질서와 조화를 위해 만들었으니 우주라는 뜻이다. 8 개의 꽃잎은 가운데 있는 황색 꽃을 보호하기 위한 보조 꽃잎이다. 황색 꽃은 수많은 별 모양으로 이뤄졌으니 한 개체마다 우주를 담은 셈이다. 황색 꽃은 관상화 또는 통꽃으로 불리며 보조 꽃잎은 혀 처 럼 길쭉하다고 설상화로 부른다. 코스모스의 순수 우리 말은 살살이 꽃이다. 살랑살랑 흔들거림이 유별 나다고 지은 꽃 이름이다. 키다리 해바라기는 기다림 일편단심의 꽃말에 연인들끼리 즐겨 선사하는 꽃이다. 해바라기 그림은 집안에 복을 가져 준다고 해서 액자로 만들어 걸어 두는 집이 있고 장마당에 가면 이따금씩 눈에 띈다. 미국의 야구장 덕 아웃에서 선수들이 껌을 질겅질겅 씹다가 언제 부 터인가 먹는 간식이 해바라기 씨앗인데 소화가 잘되고 영양가 많아 즐겨 먹는다. 해바라기의 꽃 망울이 맺을 때에는 영양가 합성을 위해 해를 따라 돌고 꽃이 피면 멈춘다. 가을 꽃에는 국화 다알리아 옥잠화 맨드라미 벽오동 은행 칸나 억새 메밀꽃 백일홍 채송화 구절초 무화과 등등이다. 꽃을 즐기는 것은 풍류의 한 줄기여서 꽃에다 여럿 뜻을 붙여 두고 좋아한다. 무궁화는 법률적으로 나라 꽃이라 제정은 하지 않았지만 무궁화를 본떠 여러 문양을 사용하는 행정부와 국가에 나오는 무궁화 삼천리에서 국화라 해도 무방하겠다. 교교한 달빛아래서 찬 서리 맞아 핀 국화꽃으로 술을 담그고 꽃을 말려 베개 속에 넣는다. 인동 초 같은 강인한 생명력에 키우기가 쉽다.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는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가 싶다. 김춘수의 <꽃>는 정감이 쏠린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의외로 무궁화를 키우는 집이 많다. 무궁화 나무를 지날 때면 경롓! 하며 인사해준다. 내가 좋아하는 꽃을 머리에 꽂고 다니면 벌 나비들이 기웃 기웃거릴 것 같다. 꽃의 옛 말 표기는 곷이다. 사람 이름에도 꽃 명을 갖다 부치니 장미 나리가 나오며 꽃 화(花) 자를 쓴다. 꽃에 대한 나의 서정은 새벽안개의 운무같이 서늘하게 가슴을 적신다. 가을 흔적에는 그리움이 녹아 내린다. 서로 그리는 뜻이 예나 제나 다 같이 까마득해 지건만 추억으로 항상 따라다닌다. 즐거웠던 추억은 오래가나 힘들었던 추억은 더 오래간다. 그게 인생의 나이테이다. 추억은 과거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나이 들면 구름에 달 가듯이 나무 결 대로 지내는 게 편안할 것 같다. 대체로 몸은 늙어도 못다한 것에 미련이 남아 꿈은 늙지 않는다. 나이 들어 가는 길 또한 처음 가는 길 인지라 꿈이 따라다닌다. 이는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허나 욕심이 많으면 자루가 찢어진다. 과 (過)하면 화 (禍)를 부르고 부족하면 다소 불편할 따름이다. 스스로 제 분수를 알아 중용(中庸)지도를 지켜야 한다. 나이 들수록 슬기로워져야 꿈을 걸 수 있다. 그리고 연기를 충분히 뿜어내면 불이 날수도 있다. 늙은 말은 길을 잃지 않는다. 자기 나이만큼 지혜를 갖지 않으면 자기 나이 만큼이나 고초를 겪는다. 그 사람의 위치가 그 사람의 등급이다. 내 지식의 한도 내에서 맴돈다. 마음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앞서간 선인들의 말과 행동을 내 것으로 만든다면 나 또한 세상의 등불 하나 켠 셈이다. 삶의 욕망과 소박한 소망 하나라도 키우면 빨리 늙지 않을 것 같다. 어느 정도라도 뜻을 이루면 삶의 즐거움이고 그 과정에서 인내 겸손을 배운다. 이는 자식들에게 귀감이 되는 가정교육이다. 살아있는 오동나무로 지내서 사후 거문고가 된다. 사람의 뼈는 193개 내지 197개인대 의사마다 뼈 모양의 해석이 달라서 생기는 차이이며 근육은 600개나 된다. 사람은 신체적으로 많이 움직여야 하는 구조인지라 늘상 부드럽게 운동해야 한다. 나는 집 나서기전에 내 나이를 읊조리며 신을 싣는다. 이는 나를 다잡기 위 함이며 나이에 걸 맞는 의식과 행동을 챙긴다. 체력 단련장에서 10여년 간 열심을 다하며 건강에 대한 자신감을 키우지만 장담할 수 없다. 일상생활 중 깜박할 때도 있듯이 몸이 삐끗할 수도 있다. 이제까지는 괜찮았으니 별 일 없겠다는 안일함은 게으름이며 스스로에게 적이 된다. 그동안 별 일 없음을 다행으로 치고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자기 합리화에 익숙하면 자기 변명이 자꾸 늘어난다. 때론 소금이 쉬나 바닷물이 넘치나 천연덕하게 지나 쳐야 한다. 꽃의 향기처럼 사람에게는 인격이 있다. 인격과 명성이 같이 가면 좋은데 꼭 그렇지 않다. 그 사람의 명성이 수그러졌을 때 온갖 추문이 불길같이 일어난다. 재능이 부족해도 인격을 갖춰야 그 사람을 오래 기억하고 존중하게 된다. 광부 간호원으로 시작된 독일 1세대 교민들은 거의 70 중반 이상이라 만나면 병치레 얘기가 오간다. 가을을 몇 번 더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는 나이지만 독서는 지식과 수양의 의미로 묶어 상식을 더 하면 대화 주제가 풍성해진다. 작은 노력도 큰 변화의 시작이다. 아무리 노년의 즐거움과 여유를 부린다 해도 노년의 가슴에는 낙조의 쓸쓸함이 깃들어 있다. 그럴지 언정 하루 해가 져 물때 노을이 가장 아름답다. 노년은 그렇게 준비해야 한다. 아닌 말로 죽는 것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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