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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30 15:22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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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독일 거주

                                                                                               손 병원 님 독자 기고 

 1971년 12월 24일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한 시간 비행거리의 푸칼파로 향하는 랜사 항공사의 록히드 사 L 188 모델인 508 편은 호로헤 차베즈 공항을 이륙해 고도 6400 미터에 이르렀을 때 악천후를 만났지만 비행을 계속 하다가 오른쪽 날개의 연료탱크에 벼락을 맞아 화염에 휩싸인 체 동체가 파손되면서 승객들은 3000 미터 상공에서 창 밖으로 빨려 나가 아마존 밀림지대로 추락했다. 

승무원 포함 탑승객 93명 중 한 사람만 살아남고 전원 사망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항공사는 성탄절부터 새해로 이어지는 연휴 스케줄 때문에 기상상태를 무시하고 비행을 강행한 게 사고의 발단이었다. 

차후 사고 항공사는 부도로 인해 폐사 되었다. 탑승 세 시간 전에 졸업식을 마친 당시 17세의 독일출신 여학생 쥴리안 쾨프케는 팡구아나에 계시는 아버지와 함께 졸업 파티를 즐기려 어머니를 졸라 어렵게 티켓을 구입했지만 이런 비극이 닥칠 줄이야. 

그녀의 아버지는 워낙 악명높은 항공사를 이용하지 말라고 했으나 촉박한 시간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항공사는 노후 비행기로 적자운영 수준이었다. 

그녀는 여객기 맨 뒤줄에서 어머니와 나란히 앉아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가 여객기가 요동치며 동체가 찢겨져나기자 이젠 마지막이야 라고 외치는 어머니의 고함과 동시에 좌석벨트에 묶인 채로 추락했는데 울창한 밀림의 나뭇가지와 좌석이 어느 정도 충격을 줄여줘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추락 다음날 아침 9시경에 그녀가 의식을 회복했을 때에는 쇄골과 정강이 뼈가 부러지고 전방십자인대가 찢어진 아픔과 팔 다리의 통증으로 움직이질 못했다. 

그리고 11일간의 생존기가 시작됐다. 우선 자기가 추락한 지점부터 상황을 살폈다. 동승했던 승객들의 처절한 모습에 두려움과 불안감에 떨다가 어머니를 먼저 찾기로 했으나 쉬울 리 만무했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여객기에서 떨어진 사탕 한 봉지를 주웠으니 이것이 11간의 유일한 양식이었다. 

하루 두 개씩 아껴먹으며 발 닿는 데로 걷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동물학자 어머니는 조류학자인지라 함께 정글을 자주 누벼서 그때 얻은 많은 지식이 정글생활에 도움이 되었다. 

정글에서 길을 잃으면 냇물을 따라가거라, 개울이 강물 되어 어디선가 마을을 찾게 될 거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했다. 

민소매에 미니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추위에 떨어야 했고 안경을 잃어버려 주위 판단이 어렵고 신발 한 짝도 없어져 척박한 밀림지대를 걷기가 힘들었다. 

독충 뱀 늪지대 독 품은 식물들을 피하기 위해 물길을 자주 걸었다. 걸은 길을 혹시 되돌아 갈 경우를 대비하여 흔적을 남겼다. 

그리고 앞으로 나갈 때마다 신발 한 짝을 던지며 전진했다. 스님들이 산속을 걸을 때 방울 달린 주창자로 땅을 찍으며 걷는 것은 숲 속에 숨어있을 뱀들을 쫓기 위함이다. 

뱀은 놀래기를 잘해 사람을 공격한다. 열대우림의 악어들은 사람을 피한다는 걸 알기에 물길을 마음 편히 걸을 수 있었다. 

체력이 떨어져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개구리를 잡기로 했으나 쉽지 않다. 

결국 포기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자기가 잡으려던 개구리는 독 개구리였으니 이 또한 행운이었다. 

나뭇잎파리에서 떨어지는 물로 허기를 달랬다. 우기라서 나무열매가 없었고 먹을 수 있는 식물도 자르고 깎을 도구가 없어 체력이 갈수록 고갈되었다. 

수색 헬기가 사고 후 삼 사 일간 밀림 상공을 나를 때는 다소나마 마음의 위안이 됐지만 헬기 소리가 끊기자 절망감에 사로잡혔다고 했다. 

왕 독수리는 썩은 고기만 먹는데 상공 주위를 맴도니 함께 동승한 승객들의 시신이 있겠구나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 했다. 

가다가다 민가 근처에 사는 호아친이라는 새를 발견하고 가까운 곳에 마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어머니한테서 배운 지식이었다. 

새떼들의 날아가는 방향을 나침반으로 삼고 따라 가면 강이 있고 마을이 있다는 확신도 부모님에게서 배운 생존 법칙이었다. 

밀림에서는 어디서 해가 뜨는지 알 수가 없다. 

나무의 나이테 간격이 넓으면 남쪽이고 좁으면 북쪽임은 우리나라 위도로 말 함인데 북반구는 태양이 남중고도에 있어 나이테가 남쪽으로 성장이 활발하여 그렇게 말 하지만 아마존은 남반구이니까 나이테의 간격이 넓은 쪽은 북쪽이 된다. 

정글의 밤은 맹수의 포효하는 울부짖음 속에 무섭고 춥고 칠흑 같아 밤을 지샌다는 게 매우 고역이다. 

우기 철이지만 아무런 도구 없이 나뭇가지로 불 피우는 방법을 알아 추위를 이겨냈다. 

웅덩이를 발견하자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다 정글에서는 갑각류가 사는 물만 마셔 라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니면 물이 오염된 상태이다. 

20여일간 광산에서 매몰된 광부는 물 만 마시고 버티다 구출되는 사례는 가끔 뉴스로 접한다.

 길을 재촉하다가 드디어 강가에 메어 놓은 조그만 배 하나를 발견했으니 사고 10일후의 일이다. 그리고 조그만 움막에서 휘발류 통을 발견하여 왼쪽 팔에 생긴 상처에 달라붙은 구더기들을 제거하기 위해 휘발류를 쏟으니 모조리 떨어져 나갔다. 

무덥고 습한 기후에는 상처가 빠르게 도진다. 키우던 강아지가 상처에 붙은 구더기로 힘들어 할 때 아버지가 휘발류를 뿌려 치유한 기억이 도움됐다. 

상처에 구더기가 도움되는 바는 구더기가 썩은 살을 먹어 치워서 패혈증을 예방한다. 날씨 때문에 배를 살피러 왔던 3 명의 어부와 조우하여 지역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원기회복을 한 다음 수색대와 함께 자기가 쓰러졌던 지역으로 가던 중 1972년 1월 12일 사고로부터 20일만에 사망한 어머니를 찾았다. 

그녀는 주변정리를 다 한 다음 독일북부 소재 킬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하고 뮌헨 소재 루드비히 막시 밀리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1989년 곤충학자 에리히 딜러와 결혼했다. 

페루정부는 2019년 그녀에게 우수 유공훈장을 수여했다. 페루에서 아버지와 함께 생태계를 연구하며 자연 보호에 힘을 쏟는데 2000년 부친이 타계하자 연구소장직을 수행하다 독일로 다시 돌아와 활동을 계속하니 2024년 현재 69세이다. 

당시 문제의 항공기 탑승 예정이었던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르쵸크는 갑자기 일정이 변경되어 참사를 피했는데 살아있는 행운으로 이 이야기를 희망의 날개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거기에 그녀는 직접 출연했고 자기를 도와준 3명의 페루인도 등장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의 일화가 있는데 – 사고 선박을 탑승하려던 춘천의 어느 고등학교가 출항 하루 전에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선박으로 행선지를 변경하여 사고를 모면했는가 하면 단원 고 학교측은 미리 예약한 여객선을 취소하고 세월호에 탑승한 일이다. -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이 책으로 2011년에 코린 문학상을 받았다. 

비 내리는 밤이면 밀림에 홀로 있는 내가 살아 남는다면 뭔가 원대하고 의미 있는, 인류와 자연에 크게 공헌할 수 있는 일에 내 인생을 바치고 싶다고 자주 다짐했다. 내가 살아남은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녀의 강인한 정신력과 용기는 크게 본받을만하다. 기적과 행운은 스스로 돕는 자의 몫이다. 

그녀는 이런 멋진 말도 하였다 “삶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마주하는가에 달렸다. 불가능해 보일 때조차 모든 것은 가능할 수 있다” 

자기의 조급함에 어머니를 여의고 힘들어하는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끔찍한 사고에 대한 트라우마를 극복한 그녀이기에 연민과 함께 무한한 존경을 드리고 싶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화내고 낙심하고 포기한적이 없는 가.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세상 그 어떤 것도 그냥 주어진 게 아님을 깨달었을 때 나는 그 이후로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살고 있다는” 말이 계속 여울진다. 나에겐 이 말은 새벽 종소리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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