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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해질 중국의 ‘굴기(?起)’

중국의 국력이 일취월장하면서 기존 강국과의 마찰이 늘어나자 중국 내부에서는 외교적 고립을 우려하는 목소리와 ‘적극 국익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가 철칙은 아니다. 상황에 따라 도광양회할 수도, 유소작위(有所作爲)할 수도 있다. 다만 후자의 필요성이 경향적으로 커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에도 제법 알려진 중국 인민대 미국연구소의 스인홍(時殷弘) 교수가 최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중국 외교의 현주소다.

‘LG 비즈니스 인사이트’가 지난 14일자로 내년 중국경제가 연중 화두로 끌고 나갈 주요 이슈를 8대 트렌드로 정리한 보고서 중에 아래 내용은 국제 정세와 관련된 부분이다.


스 교수의 평가는 상황에 맞춰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절충론을 표방하고 있지만, 추세적으로 유소작위의 상황이 많아지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중국의 ‘굴기(?起,Rising)’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 속에서 세계 최강 미국이 디플레이션 위기에 몰려 달러를 무차별 찍어내고, ‘굴기강국’들이 즐비한 유로존이 해체위기를 겪고 있으며,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한탄하는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세기사적 사건이다.

덩샤오핑,미국 패권에 순응하며 국익 극대화

중국 개혁개방의 초석을 다진 덩샤오핑(鄧小平)은 경제건설에 매진하기 위해 가능하면 주변 강대국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전술적으로도 협조하는 외교 전략으로서도 광양회를 주창했다. 현실적으로 동서 냉전기와 이어진 미국 패권시대에 순응하며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중국의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차선의 방편이었다. 이 노선은 중국경제가 외국으로부터 부족한 자금과 기술을 들여오고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을 통해 해외시장을 넓혀왔던 지난 20여 년간 훌륭하게 기능했다.

‘굴기(?起,Rising)’란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2003년 10월 중국이 주관하는 보아오(博鰲) 아시아포럼에서 공산당 중앙당교 간부를 역임했던 정비젠(鄭必堅)이 ‘화평굴기론’을 제창하면서부터이다. 현 중국 4세대 지도부가 권력의 전면에 나선지 1년만의 일이었다. 연평균 9.8%의 고도성장을 통해 일본에 필적할 만한 규모를 갖췄기에 굴기 노선은 단번에 국제사회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당시엔 중국 지도자들이 ‘굴기’를 남발할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분명했다. 굴기란 용어는 기존 세력균형의 변화, 즉 중국의 굴기에 반해 세력이 약화되는 상대국이 암시돼 있다. 필요 이상으로 미국 일본 등 강대국과 인도 등 인접국을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화평굴기’는 정비젠의 공식 발언 이후 채 1년이 지나기 전 ‘화평발전’이란 용어로 대체돼 공식 석상에서 사용된다. 화평발전은 다분히 상생(相生)발전의 늬앙스를 풍기는데, 이 같은 절제는 역설적으로 중국이 대외적으로 자국의 국제지위 부상을 선언하기를 유보했다는 의미가 된다.

'굴기'선언은 민족주의적 자긍심과 통치력 배가

공식적으로 ‘굴기’를 선언하는 데 따른 정치적 이득은 적지 않을 것이다. 각종 모순으로 사회적 응집력이 이완되고 있는 중국에서 민족주의적 자긍심도 높일 수 있고, 공산당의 통치력 역시 한층 배가될 수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에선 상당한 금액의 ‘계산서’가 날라 올 게 뻔하다. 대표적인 것이 ‘대국책임론’이다.
미국 보수진영의 학자들이 내세운 ‘G2’란 용어는 중국을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으로 띄우는 대신,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에 나서야 한다는 책임론을 동시에 제기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져가던 때 맹렬하게 달아오른 G2 책임론은 지난달 서울의 G20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위안화 절상이나 과도한 경상수지 감축 등으로 구체화됐다. 2009년 말 코펜하겐 회의에서 제기된 중국의 CO2 감축의무, 핵확산방지 문제에서의 기여 등 G2의 책임은 경제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국 정부관계자는 물론 학계의 전문가들조차 한사코 G2란 외투를 입기를 거부하는 것은 이처럼 미국 등 선진국의 속내를 읽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중국 굴기'가 전세계 대세

2011년의 세계질서는 그러나 중국이 손사래를 치든, 받아들이든 ‘중국 굴기’가 대세로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정황들이 가득하다. 미국 등 선진국들의 경기부진은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경제는 여전히 9% 안팎의 거침없는 성장세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을 자임할 것이다. 2010년 2분기일본 경제규모를 넘어선(경상달러 기준) 중국은 내년엔 한층 일본과의 격차를 늘려갈 것이다. 대규모 재정투입과 금리인하란 카드를 남발한 선진국 내에선 재정이란약발이 떨어지자 사회혼란까지 가중되는 양상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진원지인 남유럽 각국은 물론, 좀체 시위에 나서지 않는 영국 시민들도 대학 등록금 인상방침에 반기를 들었다.

미 연준의 달러 찍기는 동아시아 각국 통화의 절상을 부추기게 마련인데, 중국역시 인플레 압력을 막기 위해 점진적 위안화 절상은 불가피한 선택이 되고 있다. 한층 세진 위안화를 배경으로 중국 국유기업들의 해외기업 사냥은 더욱 맹렬히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파워게임에서도 중국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미국 등과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란제재 문제나 미얀마 군부독재 제재에서도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온 중국이다. 미국으로선 옛 소련 이후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뤄야 할 강적을 만난 셈이다. 중국의 독자행보가 두드러질수록 미국엔 안보, 중국엔 경제협력으로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한국의 전략적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

유로저널 김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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