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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2 19:59
그들의 21세기 연출작을 기다리며 (1) 이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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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간부터 올 해 마지막 시간까지 총 8주 간에 걸쳐 8명의 한국 감독들을 연재하려 한다. 70~90년대에 상당히 주목할 만한 작품들을 내놓은 뛰어난 감독들임에도 21세기 들어서 그 활동이 주춤해 졌거나 아예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그래서 그들의 새로운 연출작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감독들을 선정해 봤다. 봉준호, 이준익, 박찬욱 등 요즘 우리 영화계의 대표적인 감독들에는 익숙하지만, 그 이전 세대 감독들에는 다소 무지한 젊은 세대에게는 신선한 소개가 될 것이며, 20세기에 이들 감독들의 작품과 함께 청춘을 보낸 중년 세대에게는 추억의 영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오늘 그 첫 순서의 주인공은 이장호 감독이다. 80년대 한국 영화계를 가장 화려하게 장식했던 감독이었던 데 비해, 2000년대 들어서는 영화계에서 이장호 감독의 이름을 발견하기 어려워 졌다는 것은 서글픈 현실이다. 이는 역시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스티븐 스필버그나 마틴 스콜세지 같은 외국 감독들이 여전히 거장으로 대접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전에도 몇몇 작품에 연출부로 참여했지만, 이장호 감독의 본격적인 데뷔작은 1974년 작 ‘별들의 고향’으로 볼 수 있다. 이미 10만 부나 판매된 최인호의 인기 소설을 원작으로 하면서, 신성일이라는 당대 최고의 스타를 주연으로 기용한 덕에, 어찌 보면 이 영화는 흥행이 이미 보장된 작품이었지만, 신인 감독으로서는 뛰어난 연출력을 보인 이장호 감독의 역할은 충분히 인정받을만 했고, 이장호 감독은 이 작품으로 그 해 대종상과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데뷔작으로 관객 동원 46만이라는 큰 성공을 너무 일찍(?) 거둔 탓인지 이후 70년대 말까지 이렇다 할 차기작을 내놓지 못하다가 다시 주목을 받은 작품은 1980년 작 ‘바람불어 좋은 날’. 이 작품은 70년대 멜로물의 시대를 뒤로 하고, 사회 소외 계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이장호의 시선으로 그려낸 80년대 사회 의식이 담겨지기 시작한 신호탄과 같은 작품이었다.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함은 물론, 지금은 국민 배우로 칭송받는 안성기가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이룬 작품으로도 그 의미가 있다. 이후 81년도부터 83년도까지 이장호 감독은 무려 6편의 작품을 연출했으며, 아마도 이 때가 이장호 감독 최고의 역량을 발휘하던 시절이 아닌가 싶다. 이 시기에 이장호 감독 개인이 기독교 신자가 되면서 연출한, 이청준의 원작 ‘맹인 안요한 목사의 생애’를 영화화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와 같은 작품은 지금과 같은 안티 기독교 분위기가 확산된 우리 사회에서는 다시 만나기 힘들 작품이다. 이 작품으로 이장호 감독은 대종상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83년 작인 ‘바보선언’은 이장호 감독 최고의 걸작으로 손색이 없는, 배우들의 즉흥 연기를 도입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출을 선보인 작품이다. 당시 암울했던 사회 현실을 블랙 코미디로 담아냈으며, 이보희라는 그의 파트너와 다름없는 뛰어난 여배우를 발굴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보희의 발견은 위험한 유혹(?)이었던 듯 하다. ‘과부춤’으로 이보희의 섹시한 매력을 발견한 이장호 감독은 84년, 85년에 연달아 이보희를 주연으로 ‘무릎과 무릎사이’, ‘어우동’을 내놓았다. 물론, 에로티시즘은 장치일 뿐, 실제로는 사회 의식을 담아내고자 했으나, 당시만 해도 에로 영화에 생소했던 우리 관객들은 두 작품 모두 본격적인 한국 에로 영화로 인식하면서, 비록 흥행에는 성공했으나 이장호 감독의 연출 세계를 묘한 방향을 이끌기 시작했다. 86년에 신인 최재성을 기용에 흥행에 성공한 ‘이장호의 외인구단’ 역시 비평에서는 혹평을 면치 못했고, 87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는 그의 뛰어난 연출력을 마지막으로 발휘한 작품으로, 이후 그는 쇠퇴기에 접어든다. 실망스런 작품들을 내놓던 그가 회생하기 위해 그의 성공작 ‘바보선언’을 90년대로 끌어낸 1995년 작 ‘천재선언’이 그의 공식적인 마지막 연출작이 되어 버렸다. 물론, 이 작품은 ‘바보선언’의 명성이 부끄러울 만큼 졸작으로 혹평을 면치 못했다. 이장호 감독은 해외에서 영화를 공부했다거나 국내 영화판에서 오래 잔뼈가 굵은 인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실험 정신과 연출 재능은 말 그대로 타고난 것임에 틀림없다. 작가적인 성향을 지니면서도 관객들의 기호를 꿰뚫어 흥행에도 성공했던 그의 연출력은 이렇게 마냥 쉬고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그것이다. 아무쪼록 어떤 계기로 인해서든 그의 연출작을 다시 한 번 만나고픈 간절한 바램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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