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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씨의 대한 느낌은 경건하다는 것이다. 마치 순례자나 성직자와 같은 인상을 받게 한다. 흔히 그를 소개할 때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건반 위의 구도자가 2월 22일과 23일 저녁, 파리의 모가도르 극장에서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들려준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극도로 절제된 경건함에서 나오는 내면의 깊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연주였다.
이 날 1부의 마지막 곡으로 연주된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그의 전성기로 향해가는 과도기적인 작품에 속한다. 헝가리 태생인 바르톡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의 한 명으로 헝가리의 민속음악을 자신의 음악에 사용하여 독자적인 음악어법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여러 피아노 곡들의 주된 특징 중 하나는 피아노의 타악기적인 사용법으로 불규칙하지만 변화무쌍한 리듬이 인상적이지만 연주자에게는 매우 까다로운 부분이기도 하다.

피아노로 느끼는 영적인 체험

이 날 백건우씨의 연주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깊이 있는 연주와 넘치는 에너지로 듣는 이들을 자신의 음악으로 몰입시켰다. 때로는 파도가 몰아치듯 격정적인 모습으로 건반을 종횡무진 하다가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음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며 연주하는 모습은 오랜 수행을 거친 구도자의 모습 바로 그 것이었다. 남은 모든 에너지를 분출하듯 오케스트라와 마지막 G음의 강한 종지로 곡이 끝나자 모가도르 극장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마치 반사작용처럼 그에게 열광적인 환호를 보낼 수 밖에 없었고 이 흥분한 관객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수 차례의 커튼 콜에 이어 백건우씨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야만 했다.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곡은 그의 장기 중 하나인 프랑스 작곡가인 가브리엘 포레의 ‘무언가’, 바르톡의 곡과는 정반대의 차분하면서 너무나도 감미로운 선율은 언제 그랬다는 듯이 방금 전의 치열한 전투를 모두 잊게 하고 모두를 평안한 안식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마지막 음의 잔향이 사라지고도 모두가 숨 죽인 몇 초간의 정적은 연주회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영적인 체험일 것이다. 앙코르 곡이 끝난 후에도 몇 차례의 커튼 콜에 답한 후에야 1부과 끝날 수 있었다.

이 날 파리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현재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음악감독인 파보 예르비가 지휘를 맡아 바르톡의 피아노 협주곡 외에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현악기와 타악기, 첼레스타를 위한 음악>과 같은 헝가리 작곡가인 코다이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지휘를 맡은 파보 예르비(43)는 에스토니아 출신으로 아버지인 네메 예르비(69)와 동생인 크리스티안 예르비(33)도 모두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어 세계 음악계에서 보기 드문 지휘자 가족으로 주목 받고 있다. 그는 또한 내년 시즌 독일의 헤센 방송 교향악단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의 새로운 명칭)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할 예정으로 있어 세계 음악계에서의 그의 입지는 더욱 확고해질 예정이다. 그의 지휘는 매우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곡의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어 오케스트라를 통제하였으며 백건우씨와도 원활한 호흡으로 성공적인 협연을 이끌어내었다.

완성을 향하는 베토벤의 전곡 소나타

현재 백건우씨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녹음이라는 결코 쉽지 않는 순례의 길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그의 이런 행보에 믿음을 가지는 것은 그가 보여주는 성숙한 인격자로의 모습과 완성으로 향하는 음악가로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총 3장의 음반으로 나올 이 작업은 첫 번째 음반(16-26번)이 작년 가을 발매 되었고 두 번째 음반(1-15번)이 올 가을에 그리고 마지막 음반이 내년 말에 출시될 예정이다.

연주 후 무대 뒤로 백건우씨를 만나러 갔을 때 한 헝가리인 커플이 그에게 찾아와 동족 작곡가인 바르톡의 곡을 너무나 잘 연주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모든 이들에게 항상 진지하면서 겸손하게 대하는 백건우씨의 모습에서 이미 구도자가 아닌 깨달음을 얻은 자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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