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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부터 우연히 기회가 되어 성악수업을 받고 있다. 사실 예전에는 성악 음악에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인간의 목소리가 그 어떤 훌륭한 악기보다도 듣는 이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그 동안 내가 좋아했던 곡들을 직접 노래 부르며 공부하는 즐거움에 빠져있다. 특히 슈베르트, 슈만, 슈트라우스 등의 독일가곡들을 즐겨 부르는데 음악도 훌륭하지만 그 음악을 덧입은 독일 작가들의 시(時)들도 나의 마음을 파고든다. 지난 수업에는 내가 가장 불러보고 싶었던 곡을 가지고 갔다. 반주자에게 그 악보를 건네니 대뜸 나에게 말한다. “이 곡, 굉장히 어려운 곡인지는 알지?” “물론!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까 한번 연습해 보자. 이 곡은 정말 불러보고 싶었던 곡이야 오래 전부터…..”

이 곡의 사연은 한 영화로부터 시작한다. 중학생 시절, 우리 집에선 모 음악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다. 그날도 새 잡지가 도착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던 중 구독자들 중에서 추첨을 통해 곧 개봉할 영화의 시사회에 초대한다는 이벤트가 눈에 띄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응모를 해보았는데 운 좋게도 당첨이 되어 난생 처음 영화 시사회란 곳에 가게 되었다. 영화는 '가면 속의 아리아'라는 제목의 음악 영화였는데, 벨기에 영화라 대사는 프랑스어였고 영화의 내용은 14세 소년이 보기에는 좀 지루한 면도 없진 않았다. 하지만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들은 나의 눈과 귀를 떼지 못하게 만들었었는데, 특히 이 영화를 통해 '말러' 라는 작곡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감동의 여운이 오랫동안 남아있어서 다시 이 영화를 보기를 원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이 영화의 비디오 테이프나 자료들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어린 나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15년이 지난 2004년 프랑스, 여느 때와 같이 상점에서 장을 보던 중 서점의 가판대에서 나의 기억을 되살리는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15년 전에 보았던 그리고 지금껏 찾았던 영화 '가면 속의 아리아'였다. 음악과는 전혀 상관없이 보이는 한 시사주간지에서 특별 호로 이 영화의 DVD를 사은품으로 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그 시사주간지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가 서둘러 DVD플레이어를 작동시켰다.

음악선생 Le Maitre de musique

한국에서는 '가면 속의 아리아'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가 소개되었는데 내용과는 그리 큰 연관성은 없다. 영화의 원제목은 Le Maitre de musique, 직역하면 음악스승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우리에게 <파리넬리>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제라드 코르비오(Gerard Corbiau)'의 1988년 작품으로 세계적인 바리톤 '호세 반 담 (Jose van DAM)이 주연을 맡아 화제가 되었었고 그 해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에 노미네이트가 되는 등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은퇴한 유명 성악가 죠아킴과 그를 사랑하는 여제자 소피, 그리고 죠아킴에게 발탁되어 소매치기에서 테너로 성장하는 장, 그리고 죠아킴의 라이벌로 20년 전 노래대결에서 져 목소리를 다친 스코티. 그가 다시 노래경연 초청장을 죠아킴에게 보내고 이제는 그들의 제자들이 경합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영화의 구성은 단순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슈베르트, 슈만, 볼프, 말러의 가곡들과 모짜르트, 베르디, 벨리니의 오페라 아리아들은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과 더불어 이 영화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여제자 소피 역을 연기한 앤 루셀의 성악 목소리는 소프라노 다이나 브라이언트(Dinah Bryant)가, 남자 제자 쟝을 연기한 필립 볼테르의 목소리는 테너 제롬 프루에트(Jerome Pruett)가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죠아킴을 열연한 세계적인 바리톤 가수인 호세 반 담은 1940년 벨기에 브뤼셀 출신으로 브뤼셀 왕립 음악원에서 공부한 후 세계의 유수의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휘자 카라얀이 가장 신뢰했던 성악가이며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호세 반 담은 첫 영화출연작인 이 작품에서 흠잡을 데 없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데 수많은 오페라에 출연한 그로서는 연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듯하다. 더군다나 성악가의 역할이기에 더욱 자연스럽게 보여지는데 역할에 감정 이입하는 모습은 음악과 함께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내 노래의 품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 중 그가 죽음을 예감하고 자신의 연습실에서 피아노를 치며 부르는 슈베르트의 가곡 “음악에”(An die musik)는 한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아온 주인공이 자신의 삶이었던 음악에 대한 마지막 고백으로 듣는 이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말러의 '뤼케르트 시에 붙인 5개의 가곡' 중 제 3곡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지고.."(Ich bin der Welt abhanden gekommen)는 14세 소년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었다. 그 때는 노래의 제목도, 가사도 몰랐었지만 호세 반 담의 목소리와 영화의 장면이 너무나 잘 어울려 나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말러와의 첫 만남이기도 했다.

반주자의 전주가 시작되고 나는 담담히 이 노래를 부른다. 어린 시절 나의 마음을 파고 들었던 이 노래를…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혀졌다오.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세상으로부터. 이제 그 누구도 나의 일을 듣지 못하네 아마도 내가 죽은 것이라 생각하겠지. 그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른 이들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한들 그것을 나는 부정하지 않는다오. 사실 이세상에서 죽은 것과 다름없으니. 나는 떠들썩한 세상의 동요로부터 죽었고, 고요의 나라 안에서 평화를 누리네. 나의 천국 안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오. 내 사랑의 품에서. 내 노래의 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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