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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2 20:37

성(性)을 넘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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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항상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산다. 문뜩 어릴 적 소꿉친구들이 그리울 때도 있고, 첫사랑이 갑자기 궁금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해외로 나와 사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이 늘 그리움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그리워한다는 것은 때론 행복한 것 같다. 사실 생각해보면 한국에 있다고 해서 항상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친한 친구가 말한 것처럼 오히려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한번씩 한국에 갈 때면 잊지 않고 만나고 오니,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 늘 바빠서 보기 힘든 친구들보다 오히려 자주 보게 된다. 정말 그렇다. 같은 서울하늘 아래 살 때에는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같은 건 없었다. 내 생활하기에 바쁘고 한번씩 만나자는 연락이 오면 약속하는 날짜에 무슨 중요한 일이 없는지 먼저 체크하게 된다. 친구는 뒷전인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 오니 그들의 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보고 싶어서 연락을 해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그들을 그리워하게 만들고, 이것은 그들에 대한 행복한 추억만을 떠올리게 만든다. 친구나, 가족 등 한국에 있을 때 항상 내 곁에 있어주고 나에게 항상 행복한 시간을 선사한 그들은 외로운 타지생활의 마음 속 따뜻한 햇살과도 같다.

그렇다고 여기 생활이 늘 외롭기만 하다면 그것도 말이 안 된다. 나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큰 만큼 여기에서 더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와 같이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기 좋아하는 성격이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데 왜 아니겠나. 몇 년의 영국생활을 하다 보니 이제 여기에서의 삶도 안정되고 있는 것을 느낀다. 한국은 아니지만 많은 시간 스쳐 지나가 익숙해 져 버린 거리들도 생기도 정기적으로 만나 수다 떠는 친구들도 있으니 한국과 전혀 다른 문화환경이라는 것 외에 난 그다지 외롭게 할 것들도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여기 생활이 분명 한국과 다른, 흥미로운 것이 하나 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이다. 단순이 성격이나 직업의 다양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신세계의 다름을 뜻한다. 점점 내 주변에서 늘어나고 있는 게이(gay)친구들이 그들이다. 한국 친구 중 게이는 한 명도 없다. 나는 단언할 수 있으나, 정말인지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왜냐면 한국의 문화에서 게이의 세계는 아웃사이더이고 게이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일반인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친한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게이는 일종의 병도 아닌 것이 마치 질병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가끔 그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덮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기도 한다. 그들의 진실을 숨기게 하는 것은 한국의 닫혀진 의식일 것이다. 한국에서 게이들이 정상적인 인간관계나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젊은 사람들은 이제 조금씩 그들의 존재에 눈을 뜨고 있으나 – 하리수와 홍석천과 같은 연예인들이 커밍아웃했던 것이 벌써 언제적 일인가- 그래도 이성과 현실의 모습은 일치하지 않는다. 단지 게이인 젊은 이들이 조금 더 용기를 가지고 그들만의 커뮤니티를 늘려갈 뿐 그들의 세계와 일반인들의 세계가 융합되지는 않는 것이다.

내 머리 속, 한국의 그리운 친구들은 그래서 정상인들– 한국문화로 봤을 때 게이가 아닌 우리들은 지극히 정상인이다- 밖에 없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의 나를 정확히 상상할 수 있다. 지금 내가 그리워하는 친구들과 가족들 곁으로 돌아간다면 더 이상 그들에 대한 가슴 깊은 그리움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영국생활 속에서 만난 게이인 많은 친구들을 포함한 지금의 내 사람들에게 대한 그리움이 생길 것이 뻔하다.

여기 친구들은 ‘나와 정말 다른’, 게이인 애들이 많다. 그들은 한국에서처럼 일반인의 세계 뒤에서 살지 않는다. 아니다. 여기 영국에서는 일반인의 세계라는 것은 없다. 하나의 세계의 복잡하게 엉켜진 다양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본인들이 게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친구들이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왜냐면 한국에서는 그런 친구들을 사귄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게이라는 친구들의 말투와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조차도 내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 소소한 것들로 게이에 대해 나름대로 정의 내리기도 했다. 여전히 친구들이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하나의 ‘연구대상’ 같은 취급을 나로부터 받은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그들을 특별한 질병을 가진 해로운 존재로는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은 소위 깨어있어야 한다고 한다. 새로움에 대해 당황하지 않고, 그것을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태연함이 필요하며, 또한 그런 것들을 먼저 찾아 나서기도 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이 내 작업에 기초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게이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처음에는 예술가의 의지로서 비록 ‘연구대상’이긴 했으나 그 친구들을 겸허히 받아들였지만, 지금의 나에게 있어 그들은 ‘그냥 친구’일 뿐이다. 별로 나와 다른 특별한 것도 없고, 오히려 지나가는 멋진 남자를 보면 나보다 더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뜨거운 감정을 지닌 친구일 뿐이다.

레즈비언인 여자친구들도 다를 바 없다. 오래 전 홍석천이 인터뷰에서 커밍아웃한 후 멀어지는 동성친구들이 많아졌다고 했다. 왜냐면 말도 안 되는 오해의 소지를 피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나를 보면 난 분명 한국에서 살 때의 나의 닫힌 의식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레즈비언 친구들도 그냥 같은 여자에게 호기심을 느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친구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혹시나 하는 의심이나, 행여나 다른 사람들이 나를 곁눈질로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절대로 없다.

중학교 시절, 난 학교에서 늘 문제를 만들며 선생님들이 ‘깡패’라고 말하던 친구들과 잘 어울렸었다. 머리에는 염색을 하고 교복 치마는 항상 아슬아슬할 정도로 짧았으며 가방에는 책이 아니라 어른들이 쓰던 화장품이 가득한 친구들이었다. 그 애들도 한국의 게이들의 세계처럼 그들만의 닫힌 세계가 있었다. 보통의 학생들이 약간은 두려워하는 세계로 선한 학생들과 선생님들에게는 금지된 세계이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친구 몇 명과 짝도 하고 친하게 되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가슴 속 따뜻함과 이기심이 없는 오히려 다른 친구들이 가지지 않은 착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얼마 전 스페인인 게이친구는 자신의 파트너와 결혼을 했다. 3년 전부터 동성과의 결혼이 합법화 됐다며 얼마나 자신들이 행운아들인지에 기뻐했다. 곧 그 친구들의 결혼축하를 위한 파티가 있을 거다. ‘다름’은 그냥 다른 것이지, 특별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다. 한국으로 떠나간다면 난 이제 이 친구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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