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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7 21:53
현대미술을 바라보는 시각 2 - 영국
조회 수 3844 추천 수 0 댓글 0
-지난 호 글이 이어집니다- 영국 안에는 작가 거주 프로그램이나 스튜디오 지원 공모뿐만 아니라 싼 임대료에 합류할 수 있는 작가 스튜디오 기관과 같은 예술가에게 작업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 많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기도 하고, 전시와 같은 또 다른 기회를 얻기도 한다. 나는 2년 전까지 이런 형태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었다. 거대한 공장과 같은 건물에100여명의 작가들이 각자의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데, 같이 작업을 하면서 정기적인 모임이나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일년에 두 번씩 모든 작가들의 스튜디오를 개방하여 사람들을 초대한다. 개인적인 초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갤러리 큐레이터나 비평가들의 방문을 유도해 그들에게 작품을 선보이면서 작가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바라기도 한다. 주로 이런 형태의 스튜디오에는 전체 작가들과 작업실을 관리하고 홍보 책임을 가지는 사람들이 따로 있어 작가들이 개인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오픈 스튜디오에 초대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나 또한 그 해 여름 가졌던 오픈 스튜디오에서 작품을 선보이면서 내 그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보기도 하고, 몇몇의 작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는 대화도 할 수 있었다. 전시기간 3일간 스튜디오에 머물면서 자주 부딪히는 작가가 아니면 보기 힘들었던 다른 작가들의 작업실도 방문해보기도 하고, 각자의 손님을 서로 소개해주면서 기대하지 못한 만남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놀랐던 사실은 일반사람들의 많은 방문이다. 런던 내에 얼마나 많은 갤러리와 스튜디오가 전시를 개최하는 지 모른다. 이제 갓 문을 연 갤러리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형 박물관하며 작가들 여럿이 모여 계획한 작은 전시 등 형태도 다양하고 전시 장소의 위치 또한 중구난방이다. 이런 런던 안에서 모든 전시가 성공하기 힘들다. 하지만 오픈 스튜디오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런던이라는 곳은 일반인들의 많은 전시공간으로 향한 움직임을 통해 아무리 작은 전시라도 관객이 없을 순 없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름 없는 작은 전시공간을 찾는다면 아마 아무도 없는 실내에 갤러리 지킴이만 긴 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있는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일반인들의 ‘방문’보다도 더 놀라운 사실은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면 구입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호 에서 말한 것 처럼 런던과 한국의 미술시장은 지금 호황기이다. 많은 작품들이 아트페어나 옥션과 같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팔려 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 이득을 취하기 위한 계산이나, 혹은 보이기 위한 과시의 수단으로 구입을 한다. 또한 구입 작품을 선택하는 것도 어떤 작품에 대한 기호를 바탕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미술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은 작업이나 이미 인기있는 작가들의 작품들 위주이다. 그래서 아무리 한국이 작품거래가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다고 해도 제대로 하나 팔아 보지도 못하는 작가들이 여전히 넘쳐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의 태도는 다르다. 이들 또한 보통의 한국인처럼 미술에 관한 전문적인 시각이 없기는 똑같다. 그런데 이들은 가족과 함께, 혹은 친구들과 함께 작은 전시들을 가보고 행여 이름 없는 작가더라도 작업이 마음에 들면 선뜻 작품을 구매한다. 그렇다고 이런 사람들이 엄청난 부자인 것이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일반인이다. 하지만 그림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꺼려하는 것이 없다. 서툴게 그림 풍경화나 정물화라도 상관없다. 개인적인 감동이 있다면 그들에게는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멋있는 것이다. 그래서 멋진 구두나 옷을 사는 것보다 더 강한 욕구로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말 그대로 다른 교육이 필요 없이 예술적 교양이 잠재된 국민들이다. 현대미술작가들은 가끔 ‘이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작품들을 내놓는다. 부셔놓은 물건을 떡하니 펼쳐놓고 예술이라고도 하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전혀 ‘예술 같지도 않는’ 예술이나 전혀 ‘예술스럽지 않는’ 작품을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반응은 놀랍다. 이런 작업에 대해서는 그들은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새로운 경험인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경험을 주는 현대미술에 대해 감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세인트 마틴 미술대학 건물에 속해 있는 쇼 윈도우 공간에서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남녀가 전체 몸에 분장을 하고 머리 장식과 간단한 드레스 차림을 하고는 전시공간 안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것이었다. 마치 마네킹인 것처럼 움직임을 최소화 하였는데 그 행위자들이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가끔씩 깜빡이는 눈동자가 전부였다. 무엇보다 가슴이 그대로 드러난 여자 행위자의 의상과 퍼포먼스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 또한 남자행위자보다 마네킹이나 슬픈 삐에로의 모습이 보이는 그 여자에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길거리 한복판이다. 어떤 사람들은 가야 할 길이 바빠 가까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였고, 또 다른 ‘예의 없는’ 남자들은 단순히 가슴이 드러나는 여자의 분장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쇼 윈도우 바로 앞에 서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당연한 결과이다. 시간을 내서 방문한 갤러리에서 본 작품도 아니고, 운이 좋아 그 길을 지나다 보니 우연히 본 것이 아닌가? 그 작품을 볼 수 있었던 많은 사람들은 영국인들이 아니다. 런던이 아닌가? 여행자일 수도 있고, 다름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민자일 수도 있다. 아니면 단지 공부를 하러 온 국제 학생들 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런던이라는 곳은 예술적 교양이 잠재된 영국인들 만큼이나 예술의 형태에 상관없이 다양한 예술을 흡수할 준비가 된 도시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거기에 적응하고 변화한다. 이전에 살아온 공간이 보수적이거나 폐쇄적이라 상식에 어긋난다면 먼저 부정적인 시각을 먼저 보내던 사람들도 런던과 같은 모든 것이 개방되어 있고 새로움이 넘쳐나는 공간 안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새로움은 더 이상 멀리해야 되는 것이 아닌, 말 그래도 ‘새로운’ 흥미거리가 되는 것이다. 런던과 영국인들은 같이 공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예술적 소양을 가지게끔 만들어준다. 런던의 거리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예술에 관심을 가져 봤다거나, 누구의 작품인지 상관없이 마냥 좋은 작품 한 점이라도 건졌다면 한국인들이 갖기 힘든 예술을 바라보는 교양이 생긴 것이라고 봐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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