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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출국을 할 때 하늘 위 비행기에서 도시를 내려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런던과 같은 대도시들도 숨막힐 정도로 딱 붙어 있는 집들과 빌딩들의 모습이 어느 자연경관 못지 않게 거대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난 그럴 때면 가끔씩 멀리서 바라보기에 아름답게 보이는 그 대도시 속에서 살고 있을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한다. 내가 그들을 향해 내려다 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바삐 움직이는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 막히는 차 안에서 하늘을 향해 담배를 피우고 있을 인상을 잔뜩 찌푸린 운전자들, 혹은 학교 안에서 정말 지루한 수업을 들으며 딴 생각에 빠져있는 학생들 하며 내 상상의 세계가 자유롭게 움직인다. 물론 집 정원에 앉아 차 한잔과 함께 책을 읽거나, 친구들과 함께 한바탕 웃으며 기뻐하는 젊은 이들, 그리고 방금 받은 기쁜 소식에 하늘을 향해 소리지르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상상이 가능하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도시 속 사람들은 티끌과도 같다. 하루하루 힘들게 사는 것이 허무할 정도로 큰 도시 속에서 인간의 존재는 나약하게만 보인다. 물론 그 도시를 이룩한 것 또한 인간이지만, 꼭 거대가 도시가 인간을 배신하여 짚어 삼킨 것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우리의 존재감은 작기만 하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나를 끝없이 허무하게 만들고,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끝까지 놓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 어깨에 힘을 빼고 그것을 다시 너그럽게 생각하게 만든다. 왜냐면 결국 우리들은 작은 티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매번 비행기를 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비행기에서 찍은 사진이나 다른 영상 매체를 통해 느낄 수는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빡빡한 도시 속에서 벗어나 나의 존재의 나약함, 그리고 그를 통한 내 삶에 대한 관대함을 가질 수 있는 곳이 땅 위에도 어딘가에 존재 할 수 있다. 그리니치 공원 한복판에 있는 천문대 언덕이 런던의 그런 곳이 아닌가 한다. 그리니치 공원은 런던 중심지에서 벗어나 남동쪽으로 위치해 있다. 런던을 멀리서 바라보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니 이는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런던 브리지에서 기차를 타고 그리니치 역으로 향했다. 보통 DLR을 타고 많이 가는데 내가 갔었던 주말에는 그리니치 역을 포함한 일부 구간이 운행을 하고 있지 않았다. 사실 기차 여행을 좋아하는 지라 DLR이 다녔다고 하더라고 기차를 탔을 거라 장담한다. 그리니치 역에서 내려 사람들이 가는 방향을 따라 걸어 갔다. 딱히 급할 것도 없고 여유로운 주말이기도 하니 공원까지 가는 길에 보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며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꼭 Car Boots 시장 같은 작은 마켓도 열리고 있고, 펍의 바깥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시원한 맥주와 활기찬 대화로 따뜻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런던을 여행 중이던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1년 동안 보지 못해 밀렸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깔깔거리기도 하면서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길을 잘 몰라 무작정 사람들이 향하는 곳으로 따라갔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리니치 공원과 천문대를 가기 위해 온 여행자와 현지인들이었다.

주말인데다 오랜만에 날씨도 화창하여 공원에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모습이 생기 있어 보인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선 아이들도 하늘에 연을 날리거나 공놀이를 하면서 조그만한 손이 더러워 지고, 얼굴에는 땀이 맺히는 줄도 모르고 뛰어 다닌다. 하이드 파크나 제임스 파크처럼 런던 중심에 있는 많은 공원에서도 이런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지만 바쁜 런던 중심지와는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맘이 더욱 편안하다. 같이 온 친구와 함께 공원 입구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 본 후, 잔디 위를 걷기 시작했다. 나무 아래 넒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곳에 집에서 챙겨 온 돗자리를 펴놓고 잠시 누워본다. 약간은 서늘한 바람이 등뒤로 불어 왔지만 따뜻한 햇살이 있어 단지 시원한 느낌만 들었다. 친구는 잠들었고, 나는 공원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했다. 거기에서 책을 읽으려고 들고 왔었으나 사람들의 흥미로운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책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잠에서 깬 친구와 함께 잠시만 더 그렇게 누워 하늘의 구름의 움직이는 속도를 느껴본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리니치 천문대가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약간은 가파른 언덕이라 산책처럼 느끼기에는 힘이 들었다. 잔디밭을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잔디밭을 뒹굴며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아 천문대로 향하도록 나있는 오솔길을 택했다.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지만 대부분 환한 미소를 띠고 있다. 조금씩 오르니 그리니치 공원 옆에 있던 박물관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박물관을 지나면서 보았던 건물들은 이제 저 멀리 작은 풍경이 되어 있다. 조금 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부터 발걸음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드디어 천문대 언덕에 도착했다. 물론 천문대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그것은 뒷전으로 하고, 먼저 런던시내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끝으로 향했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런던 시내가 한 눈에 보이는 그곳에 서서 하염없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비행기안에서 런던을 내려다 보았을 때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몇 시간 전만해도 난 도시 속에 묻혀 코 앞에 있는 건물과 지나치는 사람들에 치여 알 수 없는 스트레스 속에 존재했었지만, 현재의 나는 기차를 타고 건너 온 여기 그리니치 언덕에 서서 마음의 평안을 느끼며 도시의 스트레스 보다 도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이 곳에서는 런던 속 매연과 소음이 느껴지기 보다 런던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가지고 있는 ‘도시의 매력’이 강하게 전해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전해주는 매력은 누구나 다 알고 있으며, 거기에서 사람들은 ‘내가 어디에서 왔을까?’와 같은 인간의 근원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여기 도시의 모습에서는 ‘내가 지금 정신 없이 쫓고 있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현실문제에 봉착하게 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눈 앞의 도시 풍경에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냐면 결국 인간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것을 볼 수 있고, 지금 머리 속의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 되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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