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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2일 아일랜드 시민들은 국민투표를 통해 리스본조약(Lisbon Treaty)을 거부했다. 이로써 비준이 되어 발효시 유럽연합(EU)의 정치적 통합을 앞당길 것으로 예상됐던 리스본조약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해졌다. 왜 아일랜드 시민들은 리스본조약을 거부했는가? 앞으로 조약의 미래는 어떻게 되고 유럽통합은 어떻게 될까? 여러가지 사항을 문답식으로 정리했다.

    반대파들의 적극적 반대가 조약 거부 원인
     우선 아일랜드는 유럽통합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회원국중의 하나이다. 지난 1973년 당시 유럽경제공동체(EEC: 이하 경제공동체) 에 가입한 후 1990년대말까지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5% 정도를 유럽공동체로부터 지원을 받았다. EC 예산의 2/3정도가 농민을 지원해주는 공동농업정책(CAP)과 낙후지역을 지원하는 구조기금에 지출된다. 가난한 나라였던 아일랜드는 농민 비중이 높고 낙후된 지역이 많아 EC 예산으로부터 두둑한 지원을 받았다. 이런 지원과 함께 세율을 낮추고 유연한 노동시장 법규를 도입해 많은 해외투자를 유치했다. 이 덕분으로 아일랜드는 현재 27개 EU 회원국가운데 1인당 GDP가 상위 5위안에 드는 부유한 나라로 탈바꿈했다.
     이런 사정임에도 왜 유럽통합으로 큰 이득을 본 아일랜드가 리스본조약을 거부했는가? 국민투표 전에 실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과 반대파가 엇비슷해서 매우 불확실한 사정이었다. 그러나 투표결과는 조약 반대가 53.4%, 찬성이 47.6%로 조약을 반대한 시민들이5.8%포인트가 많았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반대파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참여했고 효과적인 반대 캠페인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의 정부는 물론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리스본조약을 지지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 조직화되지 못했다. 반면에 반대파들은 이 조약이 비준되면 아일랜드는 낮은 세율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외국인 투자가 줄어들어 실업자가 많이 발생한다는 주장을 폈다. 리스본조약은 각 국의 세율에 대해 거부권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 조약이 발효된다고 세제권한을 유럽연합에 넘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반대이유를 제시하고 반복강조함으로써 반대파들이 일단 승리를 거두었다.

             국민투표 재상정 가능성은 매우 희박
      국민투표 결과가 나온 후 브라이언 코웬(Brian Cowen) 아일랜드 총리는 “국민을 뜻을 존중한다”며 “리스본조약을 국민투표에 재상정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조약의 상당수가 변경되지 않는 한 조약 말미에 아일랜드를 위한 특별조항을 두어 이런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식의 이른바 ‘선택적 탈퇴’(opt-out)는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 상당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리스본조약은 27개 회원국 모두가 비준해야 발효가 되는데 그렇다면 이 조약의 발효가능성은 매우 낮다.

         “조약 개정 없이 실행가능한 것부터 실천해야”.. ‘투스피드 유럽’은 안돼
      리스본조약의 거부이후 EU의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와 독일, 프랑스는 조약의 비준을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국내 비준을 앞두고 있는 영국이나 체코는 이 조약은 이미 ‘끝장났다’는 매우 현실적인 입장을 취했다. 법적으로 비준 가능성이 없는데 듣기 좋으라고 수사적으로 비준을 계속하자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견해다. 따라서 영국이나 체코 언론은 리스본조약의 개정을 위해 또 다시 시간을 허비할 필요없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자는 실리적인 견해를 드러냈다. 즉 EU차원의 공동외교안보정책 강화 등은 조약개정이 없이도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실천하면서 최소한 몇 년이 지나 다시 조약을 개정해도 된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몇몇 회원국들만 이 조약을 비준해 통합에 앞장서고 아일랜드나 이 조약비준을 거부하는 다른 회원국들은 뒤따라 오게 하자는 ‘투스피드유럽’(two-speed Europe)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이런 안은 유럽통합사에서 심심치 않게 거론되었으나 아직까지 실행된 적이 없다. 일부 회원국들만 외교나 국방정책 등 특정 정책에서 앞장서고 다른 회원국들은 거부한다면 유럽통합의 의미가 크게 반감되기 때문이다. 일부 영국언론도 ‘투스피드유럽’이 별로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원점으로 돌아온 유럽헌법조약과 리스본조약
     지난 2005년 5월과 6월 프랑스와 네덜란드 국민은 각각 국민투표에서 유럽헌법조약을 거부했다. 유럽통합에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두 나라가 국민투표에서 이 조약을 거부하면서 당시 유럽연합은 깊은 위기에 빠졌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회원국 정상들은 2년간의 성찰끝에 지난해 여름 헌법조약을 개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3개월정도 회원국 정부 대표들이 모여 헌법조약을 개정한 개혁조약(당시 포르투갈이 유럽이사회와 각료이사회 순회의장국이어 수도 이름을 따라 리스본조약이라 불린다)에 서명했다. 헌법조약이라는 이름을 고치고 일부 내용을 고쳤지만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됐다. 현재 회원국들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맡고 있는 유럽이사회의 순회의장을 임기 2년반의 상임의장으로 바꾸며 공동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는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도 유지됐다. 고위대표의 경우 원래 유럽연합 외무장관이었지만 이름이 변경됐으나 직책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에 리스본조약은 비록 헌법조약의 사문화에도 불구하고 주로 경제통합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유럽통합을 한단계 앞당길 수 있으리라고 예상돼 왔다. 그러나 리스본조약마저 아일랜드 국민에 거부당했다.
     현재 EU 27개 회원국의 총인구는 4억9천만명정도. 그러나 4백만명에 불과한 아일랜드가 리스본조약을 거부했고 EU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민의를 존중해야 한다.
      안 병 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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