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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2 00:17
나무의 향기가 건네는 노래 – 넷
조회 수 3325 추천 수 0 댓글 0
제대를 한 달여 앞둔 2001년 삼일절날 문득 부대 교회 앞에서 노을이 드리워진 하늘을 보았다. 눈부신 햇살이 노을로 잠들어가고 어두움이 찾아드는 풍경에 묘한 슬픔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내 그 눈부신 태양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일 아침 다시 찬란하게 떠오르리라는 희망을 되찾았고, 마치 내 삶이 힘겨웠던 군생활 초창기 저녁노을처럼 사그라져 가는 듯 했지만 다시 떠오르는 햇살처럼 이렇게 기쁨과 희망이 가득한 날들을 보내고 있음에 감사했다. 곧바로 교회에 들어가서 기타를 잡고 그 느낌들을 노래에 담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서 불과 몇 분 만에 만든 곡이 ‘나의 주님’이라는 노래였다. 제대 후 마침 일산에서 제3회 CCM 대회 (혹 모르시는 분들은 교회 음악 경연대회 정도로보시면 될 듯)가 열린 적이 있었다. 예선을 거쳐 열 팀 정도가 본선에 진출, 최종 심사를 통해 상과 상금도 주고 본선에 진출한 팀들은 참가곡을 한 곡씩 수록해서 음반제작도 하는 그런 행사였다. 음악을 미치도록 사랑하기는 했어도 제대로 음악을 배워본 적도 없고, 다들 쟁쟁한 팀들이 경쟁을 벌이는 대회에 괜히 참가했다가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지, 더구나 참가비도 있었기에 더욱 망설이고 있던 차 어머니께서 떨어져도 괜찮으니 경험삼아 한 번 나가보라고 직접 참가비도 건네주셨다. 어렸을 때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는커녕 말도 제대로 못했던 필자는 그렇게 해서 난생 처음 노래 대회에 나가게 되었다. 참가곡은 당연히 ‘나의 주님’. 예선이 있던 날 생각했던 것처럼 많은 팀들이 참가했는데 대부분 중창이나 밴드였고, 그나마 몇 있는 솔로 참가자들도 밴드 반주자를 대동하거나 정식 MR(반주 테잎)을 준비해 와서 나처럼 통기타 하나 달랑 메고 온 참가자는 없었다. 그나마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같이 연주해서 다행이었다. 괜히 주눅들기 싫어서 첫 순서를 자청하고, 심사위원을 비롯 수많은 이들의 눈과 귀가 내게 집중되는 가운데 조용히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눈부시게 밝은 햇살이 저녁 노을로 잠들어가도 다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바라보듯이 내 가슴에 서러움과 또 아픔이 쌓일지라도 주님 주신 사랑 그 평화로운 노래 부르네…’ 비록 단순한 통기타와 하모니카의 울림이 전부였지만 눈을 감고 노래를 부르면서 그 어떤 화려한 악기들이나 반주자들보다도 더 깊고 따스하게 내 노래를 감싸주고 있음을 느끼며 너무나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예선을 마치고 며칠 뒤 주최측으로부터 예선을 통과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본선이 있기 전에 음반을 녹음해야 했기에 녹음 스튜디오에 가서 정식 밴드와 프로듀스 하시는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해야 했다. 참가자들 중 유일한 자작곡이었기에 작곡자인 내게 곡 해석을 부탁했고, 악보도 잘 볼줄 모르고 그다지 음악에 전문가가 아니었던 나는 그냥 통기타를 치며 한 번 불러볼 테니 들어보시고 알아서 잘 편곡해 달라고 했다. 그런데 노래를 듣고 난 프로듀서와 밴드는 이 곡은 통기타 외에 다른 반주가 들어가기 힘들게 편곡이 되어 있다며, 오히려 다른 악기가 들어갈 경우 곡을 훼손할 수도 있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즉, 통기타 한 대로 조용히 부르는 내 편곡이 가장 곡에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음악에 제법 연륜이 있었던 프로듀서는 포크에 가까웠던 원곡을 조금 편곡해서 모던락 스타일로 바꾸자고 제안을 했고, 밴드와의 합주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나의 주님’은 또다른 상쾌함으로 다가왔다. 어차피 평생 이 노래는 내가 통기타와 함께 부를 수 있지만 밴드와 함께 편곡된 버전으로 부를 일이 많지 않을 것 같아 흔쾌히 편곡된 버전으로 녹음을 했다. (그런데 정말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밴드와 함께 그 곡을 불러본 적이 없다) 드디어 대회 날, 평소 필자의 음악을 별로 들어보지 못하셨던 부모님을 비롯 몇몇 교회 친구들이 응원하러 온 가운데 필자의 순서가 되었다. 노래에 앞서 사전에 제작한 인터뷰 영상이 스크린에 보여졌다. 군대에서 느꼈던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에 담은 사연을 담담히 얘기하던 내 모습이 스크린에서 사라지면서 노래의 전주가 들려왔다. 나는 대회에서 두 번째로 큰 상인 금상을 받았다. 하지만, 상을 받고 안받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보잘것없는 내 음악도 사용하신다는 벅찬 감격,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이 더 이상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 누군가의 가슴과 영혼에도 조그만 감동과 조그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했다. 부족한 음악실력에 늘 자신이 없었던 차 음악은 꼭 실력과 기교만이 아닌, 음악을 하는 사람의 진실함이 전해질 때 그 힘이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음악을 통해 나 아닌 누군가 에게도 행복을 주고 고단한 삶에 평안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무엇보다 음악을 통해 하나님을 전할 수 있다면 너무나 값진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음악과 함께, 기타와 함께 벅찬 감격과 희망으로 하루 하루를 보내던 중 또다른 음악 여행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바로 미국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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