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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3 13:47
내가 살던 그곳은...
조회 수 2654 추천 수 0 댓글 0
오랜만에 찾은 한국,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찾은 그곳, 다섯 살 무렵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마포구 성산동. 태권도장,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닌 곳, 25년 지기 친구 성훈이를 만난 곳, 그리고 너무도 그리워 꿈 속에서 그려보던 그곳을... 일단, 모래네 시장부터 들렀다. 허름한 곳에 자리잡은 떡볶이 집은 아직도 그 주인에 그 맛이었고, 응암동에 있는 초등학교를 다니느라 버스를 타기 위해 걷던 모래네 길에는 여전히 불꽃을 번쩍여 신기했던 그 대장간이 있었으며, 내가 살던 동네로 가는 길에 여전히 기찻길과 땡땡거리가 있었다. 땡땡거리라는 이름, 기차가 지날 때면 땡땡 소리가 나면서 차단대가 내려와서 그렇게 불렸나 보다. 어린 시절에는 그 기차가 그리도 빠르고 커 보이더니, 마침 그곳을 건너는데 땡땡 소리가 나면서 기차 한 대가 지나가는데 별로 빠르지도, 커 보이지도 않았다, 그만큼 내가 커버린 것이겠지... 땡땡거리를 지나 내가 살던 동네로 올라가는 길목,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먹던 구멍가게가 여전히 그 곳에 있었고, 가로등도 없는 그 좁은 골목길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어렸을 때는 가끔 그 곳에서 불량한 형들이나 걸인들이 있어서 긴장하며 걷곤 했었는데... 아쉽게도 내가 살던 조그만 아파트는 재건축이 되어 이제는 거대한 아파트촌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곳곳에 아직도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오래된 집들, 건물들, 그리고 골목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 즈음에 친구 성훈이네 약국이 있었고, 저 즈음에 장난감 가게가 있었고, 저 즈음에 오락실이 있었고, 저 즈음에 분식집이 있었고, 저 즈음에 비디오 가게가 있었고... 그 모래네, 중동을 지나 성산동 쪽으로 걸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태어나 처음으로 깡패를 만났던 길, 그 때 빼앗긴 돈이 이백 원이었는데도 너무나 놀래서 집에 와서 어머니 앞에서 울었던 기억들... 고가 밑에는 덤블링을 타고 뽑기나 달고나, 그리고 각종 불량 식품을 먹을 수 있었던 곳도 있었는데... 요즘 애들은 그렇게 놀지를 않다 보니 그런 곳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제법 큰 아파트 단지에 상가 건물도 있어서 자주 갔던 곳, 시영 아파트 단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버지랑 다니던 목욕탕도 그 자리에 있고, 어머니를 따라 다녔던 농협도 그 자리에 있었다. 상가 안으로 들어서니 아직도 문구점이 있던 자리에는 비록 그 때보다 규모는 훨씬 작아졌지만 그 문구점이 그대로 있었고, 전체 동네에서 가장 비디오 테잎을 많이 구비하고 있어서 필자가 좋아했던 비디오 가게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 수 많은 영화들이 있던 그 곳을 들어서면 그렇게 흥분이 되었더랬는데... 걸음을 옮겨 내가 졸업한 중암 중학교를 찾았다. 학교로 가는 길, 방과 후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걷던 그 길… 토요일 오후라 한적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던 그 곳, 그 때는 참 넓어 보였던 그 운동장이 좁게만 느껴지고, 다행히 본관 건물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 교실이었던 곳 창문을 바라보니 그 시절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래도 중학교 시절에는 공부를 제법 해서 조회 시간에 전교 1등 상장을 받으러 올랐던 단상, 참, 전교 부회장 선거에도 나가서 그 단상에서 전교생들 앞에서 연설도 했었는데...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자애들이 농구공을 가지고 지나가는데 그 시절 친구들이랑 농구공을 들고 동네마다 있던 농구골대를 찾아 다니던 내 모습이 보였다. 열 몇 살 전성민의 모습, 영화와 음악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외로움을 많이 타던, 그래서 늘 무언가를 상상하면서 그 외로움을 달랬던 그 어린 소년은 훗날 이렇게 영국에서 살아갈 것이라고는, 훗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글을 써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인생을 살아갈 것이라고는, 그리고 상상했던 일들 대부분이 현실에서도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원래 지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남다르게 잘 하는, 그 순간들의 느낌들을 잊지 못하는, 그래서 늘 그 향수에 가슴 시려하는 필자였기에 꿈에서도 그 동네 곳곳의 모습들이 나타나곤 했었다. 지난 것들에 묶여서 전진하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지만, 지난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에 행복을 느껴 지금 전진하는 이 순간들에 힘과 위로가 된다면 그것은 건강한 향수가 아닐까?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이 갖고, 더 높이 날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 가졌던 아름다운 기억들과 느낌들을 통해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잃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잃지 않는, 또 앞으로 나아갈 길을 다짐하는 그 순간들이 어찌나 가슴이 벅차 오르던지... 그래도 참 다행이다, 그 소중한 기억들이 남아 있는 그 곳이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많이 남아있기에... 그래도 참 다행이다, 세상 때가 많이 묻었는데도 아직 그 순수함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기에... 그래도 참 다행이다, 고단한 세상 살이에도 이렇게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한 순간들을 간직할 수 있어서... 세월이 더 흘러서 마흔 즈음에 되고, 또 쉰 즈음이 되어 이 곳을 다시 찾으면 또 어떤 느낌일까? 그 때까지 나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몸도 마음도 지친 퇴근 후 어느 저녁, 기타를 퉁기다가 내가 살던 그곳이 너무나 그리워서 노래를 만들었는데 아직 후렴밖에 못 만들었다. 다시 영국에 돌아가면 이 노래를 완성해야 겠다. 내가 살던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아름다운 기억들이 잠들어 있는 내가 살던 그곳은 이렇게 눈감으면 떠오르는, 꿈에서만 갈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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