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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의 아니게, 혹은 의도적으로 한 달 넘는 시간을 홀로, 그야말로 나 홀로 지내오고 있다. 홀로라는 의미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곁에 두지 못하고, 또 연락조차 멈춘 채, 그야말로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일년 중 가장 사람들과 함께 하고픈 시간일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 심지어 생일날도 작정하고 나홀로 체험을 하고 있다. 물론 함께 하자고 친절과 애정을 보여준 분들이 계셨지만, 왠지 지금은 깊고 어두운 동굴에 갇혀 나 자신의 깊은 속으로 더욱 파고들어야 할 것만 같은, 기다림의 막바지를 견뎌내야 하는 시간이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남자는 자기 동굴로 들어가고픈 때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연말에 찾아온 강추위에 바깥 외출도 거의 안하고 혼자만의 공간, 혼자만의 시간에 고립되다 보니 마치 어렸을 적 재미있게 읽었던 로빈슨 크루소가 된 기분이다. 비록 무인도에서 문명의 이기가 차단된 야생의 환경은 아니지만, 로빈슨 크루소처럼 식인종과 야생 동물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도 아니지만, 한 칸 방에서 홀로 남겨진 느낌은 로빈슨 크루소의 그것임에 틀림없다. 혼자놀기의 진수를 보여준 로빈슨 크루소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확인해 보고 싶었다, 과연 내가 정말로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다면 생각했던 것처럼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는지, 잘 놀 수 있는지, 그리고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는지를. 이렇게 홀로 남겨지는 기회가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 세상을 떠날 즈음에 맞이할 실전 상황에 대한 훈련도 할 겸.

예전에 썼던 ‘외로움은 소중한 행복’ 편에서도 밝혔듯이 필자는 외아들로 자라 일찍부터 고독의 즐거움을 터득한 덕분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울 턱이 없었다. 물론, 주위 사람들은 이러한 필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하다는 듯, 또 불쌍하다는 듯 여기지만, 그것은 홀로 남겨져본 적이 없는 이들의 한계일 것이다. 인생은 결국 혼자 걷는 길이라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은 어떻게든 혼자 있는 시간을 갖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며 평생을 보낸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든, 누가 되었든 언제나 곁에 사람이 있어야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기울일 기회를 갖기 힘들다.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또 자신의 삶을 깊이있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혼자 있어봐야 한다. 항상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그것이 자신의 전부인 줄, 인생의 전부인 줄 착각에 빠진다. 특히, 자기 자신의 깊은 속에 빠져보는 시간을 갖지 못하는, 혹은 의도적으로 갖지 않는 이들에게는 창작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이 글이든, 음악이든, 그 어떤 것이든, 창작은 언제나 홀로 남겨진 공간, 시간 속에서 자기 자신의 깊은 곳에 빠졌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상상했었다, 식량만 있다면 혼자 평생 방에서만 사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일단, 영원히 질리지 않는 음악과 영화가 있었다. 기타를 연주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감은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면서부터는 아주 짧은 소절일 지라도 창작을 하는 단계가 찾아온다. 어렸을 적부터 본 영화를 또 보면서도 그토록 좋아했던 소년은 서른 즈음의 아저씨가 되어서도 여전하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그런 것들이 다 재미 없어지는 날이 온단다.”라던 부모님 말씀은 안타깝게도 틀렸음이 증명되었다. 여전히 크리스마스에 ‘그렘린’을 보면서 눈내린 영화속 풍경과 만화같은 이야기에 빠져들고, 스필버그의 영화들을 보면서 아직도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다. 마음은 언제나 그 시절, 가장 큰 감동과 가장 많은 상상을 가졌던 그 시절에 남아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이의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은 행복이며 축복이다. 그렇게 혼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지내면서, 실제로 훗날 세상에 홀로 남겨져도 그다지 외롭거나 우울하지는 않겠다는 안도감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로빈슨 크루소로 한 달 넘게 지내보니 예전보다는 고독이 덜 즐거워졌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행복을 너무 많이 알아버렸기 때문이리라. 고등학교 시절 혼자 극장에서 영화를 여러 편씩 보는 것을 즐기다가, 대학교 때 첫사랑을 만나 함께 영화를 보러 다니면서, 그 뒤로는 더 이상 혼자 극장에 가는 게 그다지 즐겁지 않게, 더 정확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함께 영화를 보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혼자 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고 즐거울 수 있지만 로빈슨 크루소의 행복은 결국 2% 부족한 그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대부분 회사들이 쉬는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31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던 덕에 더더욱 쓸쓸했던 퇴근길,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가족들을 향해 바쁜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많은 인파들, 그들의 얼굴에 한가득 피어있는 행복의 미소,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야말로 부족한 2%를 채워주는 진정한 행복이며 축복인 것이다. 퇴근 후에는 비록 어둡고 싸늘한 방의 적막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곧 다가올 행복의 시간들을 그려보며 마지막 기다림을 이겨내리라. 아주 오랜만에 겪어보는 혼자만의 시간들, 세월이 많이 흐르면 또 이 시간들조차 그리운 추억으로 남겨지겠지...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 어느 해보다 참 많은 과제들이 놓여져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써야할지 모를 다양한 삶의 과제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세상, 무게조차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짐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완의 인생길에서,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다짐으로 올 한 해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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