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
||||||||||||||||||||||||||||||||||||||||||||||||||||||||||||||||||||||||||||||||||||||||||||||||||||||||||||||||
|
||||||||||||||||||||||||||||||||||||||||||||||||||||||||||||||||||||||||||||||||||||||||||||||||||||||||||||||||
|
2009.01.31 06:00
남는 놈, 떠나는 놈, 떠날 곳도 없는 놈
조회 수 1911 추천 수 0 댓글 0
공식적으로 경기 침체에 접어든 영국, 치솟는 실업률 속에서 사람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모습을 날마다 목격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미국발 금융 위기의 여파로 경기 침체가 예상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던 지난 해 여름까지만 해도 불과 반 년 만에 이렇게 처참한 상황을 목격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점심 시간마다 쉬면서 다음 아고라의 이야기방에 올라온 사람들의 사연들, 특히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렇게 밥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예전에는 뭐든 열심히 하면 그 만큼의 보상이 따른다는 인생의 법칙을 믿었는데, 아쉽게도 더 이상 그 법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절대 안 되는 일이 너무 많다. 영국도, 런던도 예외는 아니다. 한창 경기 좋고 잘나가던 시절 젊은이들의 가슴을 설레이게 했던 런던 금융가, 그 금융가 입성을 꿈꾸며 파이낸스(Finance) 관련 전공을 택한 수 많은 젊은이들, 지금 런던 금융가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그저 생존하는 것 만으로도 고단한 일상을 버티고 있는 직장인들의 어깨가 쳐지고 있고, 금융가를 꿈구었던 수 많은 젊은이들은 청년 백수의 공포 속에서 갈 곳을 잃은 혼돈을 겪고 있다. 오늘 출근길에 런던 금융가 중심지인 Bank역에 게시된 우리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포스터를 보며 문득 현재 우리 직장인들이 처한 상황에 어울리는 문구가 떠올랐다, ‘남는 놈, 떠나는 놈, 떠날 곳도 없는 놈’. 서글픈 패러디지만 현재 상황이 딱 그렇다, 능력을 인정받은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이 시기에 수입이 늘고 있는 좋은 직장을 만난 운이 좋은 것인지, 어쨌든 끄떡없이 일자리를 지키고 남아있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저런 사유로 일자리를 잃고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 그나마 그만 둘 일자리조차 아직 구하지 못한 순도 100% 신입 구직자들. 요즘 정말 가까운 주위에도 떠나는 놈들이 너무 많다. 특히, 필자가 일하는 중 새로 입사했다가 얼마 못버티고 해고되어 떠나는 이들은 그저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안좋다. 내가 사장 같아도 해고시키고 싶을만큼 일도 못하고 인격도 별로인데 게으르기까지한 사람이 떠날 때는 별 감정이 안생긴다. 그런데, 인격도 괜찮고 나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시기가 안좋아서 안타깝게 떠나게 되는 이들은 참 안타깝다. 여직원의 경우 해고 통보를 받은 날 혼자 회사 건물 구석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적도 몇 번 있는데 참 서러워 보였다. 특히, 그 떠나는 놈이 가끔 맥주도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같이 상관 흉도 보면서 키득거렸던 친한 사람이었을 경우에는 정말 일이 손에 안잡힌다. 그리고 바로 오늘이 그날이다, 그 동안 가장 친하게 지냈던 동료가 그만 떠나는 놈이 된 것이다. 동료에게 해고를 통보한 참모급 상관들이 필자를 따로 불러서 떠나는 놈을 위로하기 위해 술을 사주려는데 같이 가자고 하는 걸 거절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같은 동료에서 남아있는 놈과 떠나는 놈으로 갈리운 마당에 상관들을 끼고 마시는 술은 분명 맛있는 술이 아닐 것이고, 술을 맛없게 먹는다면 그것은 술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면 가차없이 버려지는 냉엄한 자본주의의 현실 속에서 그래도 남아있는 놈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차원에서 기쁠 법도 한데,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지금은 비록 남아있는 놈이지만 언제든 예고없이 떠나는 놈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정말 X같은 기분이다. 그래도 필자는 떠나는 놈이 되어도 그렇게 깜깜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경우지만, 정말 대책없는 상황에서 갈 곳도 없는데 떠나는 놈이 되는 사람들의 기분이란 어떤 것일지... 최근 미국에서 평범했던 한 가정이 부부가 모두 동시에 실직하자 남편이 5명의 자녀와 와이프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끔찍함 보다는 서글픔이 먼저 들기도 했다. 그래도 떠나는 놈은 떠나기 전까지 어쨌든 어딘가에 있기라도 했다는 얘기다. 떠날 곳도 없는 놈들은 대체 어쩌란 말인가? 요즘 졸업을 앞두고 있거나 갓 졸업한 분들에게 취업 상담을 하면서 해주는 얘기가 있다. 지금 당신이 직업을 구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당신이 못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단순히 일자리가 너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이든 영국이든 아무 경력도 없는 그야말로 순수한(?) 신입 구직자들, 즉 떠날 곳도 없는 놈들이야말로 지금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떠나는 놈은 그래도 어딘가 있다가 떠난 만큼 또다른 어딘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들이지만, 아직 한 군데도 발을 붙이지 못한, 떠날 곳도 없는 이들은 말 그대로 대책이 없다. 이들을 너무나 돕고 싶은데 도울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 ‘철밥통주의’ 편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필자는 단지 안정성만을 보고 공무원이 되려고 환장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참 못마땅해 했었는데, 요즘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수도 있겠다니! 그냥 음악 하면서, 글 쓰면서 전 세계를 떠도는 나그네 인생길로 갈아 타고 싶어진다. 남는 놈도, 떠나는 놈도, 떠날 곳도 없는 놈도 다 싫다, 그냥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방랑하는 놈으로 세상 구경이나 실컷 하면서, 노래나 실컷 부르면서 훨훨 날아다니고 싶다.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