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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웨일즈에, 그리고 그 웨일즈 중에서도 Resolven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휴양도시 Swansea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에 있는 Resolven은 관광객이 전혀 방문할 일 없는, 동양인이나 흑인과 같은 유색인종을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는, 그야말로 시골의 조그맣고 조용한 마을이다. 그리고, 그렇게 별볼일 없을 것 같은 Resolven이 필자에게는 너무나 특별한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잠시 방문으로 처음 영국 땅을 밟고 언젠가 영국에서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2004년 여름, 약 한 달 간의 일정으로 영국을 방문했다. 런던부터 시작된 여정, 사실 그 때는 런던이 너무 싫었다. 뉴욕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느낌처럼, 너무 지저분하고 혼잡하고 팍팍해 보이는 런던의 모습이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다음 행선지인 스코틀랜드는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전원, 필자가 좋아하는 흐리고 늘 비가 뿌릴 것 같은 날씨, 다만 한국 목사님 댁에 머물렀던 탓에 실제 영국인들의 삶을 체험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행선지였던 웨일즈, 친딸처럼 아끼는 소중한 지인을 통해 처음 소개받는 필자를 너무나 따뜻하게 맞아주셨던 존 할아버지와 말린 할머니 댁이 있는 마을이 바로 Resolven이었다. Resolven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평범한 시골 노인이었던 두 분, 그럼에도 그 분들의 삶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의 눈부신 보석들이 가득한, 그래서 너무나 행복한 분들이었다.

존 할아버지와 말린 할머니 댁에서 머물기로 하고 그 곳을 찾은 첫 날, 존 할아버지의 아들인 조나단의 집에 바베큐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작은 마을이라 이미 장성해서 가정을 이룬 자식들이 모두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살고 있었다. 심지어 큰 딸인 샤론의 집은 바로 존 할아버지 댁 바로 옆집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찾은 조나단의 집, 푸른 빛이 가득한 산을 바라보고 있는 조나단의 정원에서 기타를 연주하면서 노래도 불러 드렸다. 자신이 가꾸는 정원에서 다양한 과일과 식물을 보여주며 흐뭇해하는 조나단, 그의 직업은 페인트공이었다.

참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한국에서 페인트공이라 하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삶에 대한 몹쓸 선입견이 있었다. 꼭 페인트공이 아니라도 솔직히 우리 사회는 학벌, 직업, 재산 등 쓸데없는 조건들에 갇혀서 소중한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던가? 그러나, 조나단은 페인트공인데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성실히 일하면서,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가족들과 화목한 삶을 꾸려가면서 평화로운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 때 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가 나도 영국에서 그와 같은 삶을 살겠노라고. 그와 같은 삶이란 대단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인생 말고, 소신껏 성실히, 평화롭게, 행복하게 사는 삶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조금 적게 가지고, 조금 낮은 자리에 있고, 조금 천천히 가는 삶이면 어떤가? 그저 하루 하루, 매 순간 순간에 스스로를 돌아보고, 세상과 인생의 오묘한 진리를 만끽하고, 그렇게 소박한 즐거움들에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게 훨씬 나은 삶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삶을 동경한다 한들, 그것은 결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었다. 당시만 해도 대학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벌어놓은 돈 한 푼 없는 내가 과연 무슨 수로 영국에 와서 살아간단 말인가? 운 좋게 영국에서 살게 된다 한들 처음부터 영국인으로 태어난 그들이 누리는 삶을 과연 이방인에 불과한 내가 어떻게 똑같이 누릴 수 있단 말인가?

결국 필자는 하늘의 도우심으로 기적처럼 영국에서 지내면서 먹고 살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그토록 싫어했던 런던을 거점으로. 이번에 Resolven을 방문해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고, 함께 식사하면서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5년 전 Resolven 을 처음 방문했던 당시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 그토록 꿈꾸었던 삶에 나름대로 근접한 듯 보이지만, 그럼에도 5년 전에 비해 세상때가 많이 묻고, 그 동안 어느새 먹고 사는 문제에 끌려가느라 지쳐버린 내 영혼을 발견했다. 복잡한 도시에서 쫓고 쫓기는 생활에 파묻히다 보니, 정작 영국에서 살기를 원했던 진짜 이유들을 망각하고,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어가고 잊어가고 있는 내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

정말 요즘 들어서 마음이 많이 팍팍해진 것 같다. 다들 어려운 시기인 만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이런 저런 일들에 지치고 마음이 많이 상했나보다. Resolven의 정겨운 시골 풍경도, 그 곳 사람들의 소박한 미소와 따스한 마음씨, 평화로운 삶의 풍경도 5년전에 보았던 그대로건만, 나는 왜 이렇게 변해버린 것일까? 겉으로 내색은 안했지만, 퇴색한 내 영혼이 그들에게 발각될까 두렵기까지 했다.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 내가 5년 전 웨일즈에서 꿈꾸었던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삶을 다시 찾아가리라고. 그 동안 부렸던 욕심과 미움들, 겹겹이 쌓인 세상때를 다시 벗어 버리겠다고. 5년 전 존 할아버지, 말린 할머니와 찍은 사진과 이번에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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