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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다보면 너무나 괴롭고 힘들어서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온다. 그런데도 차마 진짜로 인생을 포기하지 않은 다음에야 먹고 살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까지 진짜로 다 그만둘 수는 없는 일, 더군다나 요즘처럼 불경기에 하루가 멀다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는 살벌한 현실에서는 쉬지않고 달려야 한다.

잠시 휴식을 갖기라도 한다면 좋을 법한테 그마저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으니 결국 그 괴롭고 힘든 짐들을 다 짊어지면서 모든 일상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자니 그 마음은, 그 영혼은 날마다 병이 들어서 죽어가는데 겉으로 보기에 몸은 별 일 없어 보이니, 냅다 달려가고는 있는데 마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다.

사회 생활을 하는 이들은 공감할 것이다. 아예 잃을 게 없는 사회 초년생이던가, 아니면 챙길만큼 챙겨놓고 떠나도 아쉬울 게 없는 사회 말년이라면 ‘그냥 확~’ 할 수 있겠는데, 이게 어중간하게 사회 경력을 쌓은 상태에서는, 더구나 그 자리까지 오면서 뜨거운 땀과 눈물을 흘려왔다면, 제 아무리 화끈하고 막나가는 성격이라도 ‘그냥 확~’이 잘 안된다. 아까운 것이다, 사회에 발을 딛고 여기까지 오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서 차마 발을 뗄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어떤 상황이 닥쳐도 최대한 버텨내려 용을 쓰며 하루 하루를 지탱해 간다.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직면하는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들이지만, 그것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하고 있는 일이 싫든 좋든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해야 하는 일인 경우이다. 그렇게 마음에 병이 들어 있는 때에는 적어도 누구랑 마주치지 않아도 되고, 아무 말 안해도 되는 그런 직업이면 그나마 견딜만 할텐데, 쉴 새 없이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는, 마주치는 것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 내면의 목소리를 뽑아내야 하고, 때로는 웃음과 친절을 팔기도 해야 하는 경우에는 고역도 그만한 고역이 없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은데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얘기든 해야 한다는 것,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말 모른다. 게다가 그것이 늘 타인에게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하고, 또 쌓아온 이미지가 있거나 공들여온 경력을 매우 조심스럽게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필자 역시 하루는 바쁜 업무에, 또 개인적인 마음 고생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회사 휴게실에서 유리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회사 건물 청소부가 옆에서 열심히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분명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라고 필자를 비난할테지만, 맹세코 그 순간에는 그 청소부가 그렇게 부러워 보였다. 그냥 하루종일 커다란 빌딩 구석 구석을 다니며 쓰레기를 비우고, 쓸고, 닦으면 되는 그 일이 그렇게 부러웠다.

영국에서는 단순 노동에 대한 급여도 그리 나쁜 편이 아니니 열심히 일하면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고, 그저 하루 하루 맡은 분량의 청소만 하고 나면 두다리 뻗고 잘 수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이 좋지 않을 때에도 누구랑 마주치고 말할 필요 없이, 그저 자기 일만 묵묵히 해도 되는 그 청소부의 영혼이 어쩌면 필자보다 더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 때는 정말 심각하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도 차라리 청소부가 되고 싶다고 심각하게 털어놓을 정도였다.

한국에서 어떤 기자가 직접 공장 단순 노동직으로 얼마간 일하면서 경험한 얘기를 쓴 기사를 본 적이 있다. 하루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기계의 한 부품처럼 그렇게 일하는 단순 공장직의 애환을 절절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들의 복지와 급여 등 처우는 분명 개선되어야 할 일이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이 살다보면 그렇게 기계의 부품처럼 지내고 싶을 때가 있어도 그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 점 만큼은 나름 단순 노동직의 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수 많은 상념과 갈등과 아픔들이 마음 구석 구석을 떠다니며 괴롭힐 때, 그럴 때 조차도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또 그 아이디어를 나누고, 사람을 만나고, 웃음과 친절을 유지해야 한다면, 살아남기 위해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면, 그럴 때는 정말 그렇게 살아있는 인간이 아닌, 끊임없이 무언가를 느끼고 생각하는 인간이 아닌, 그저 어느 기계의 부품이 되어 스스로의 존재감을 잊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을까? 내 마음, 내 의지와 상관없이 그렇게 기계의 부품이 되어 그저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의미없이 돌아가다 보면 그래도 그 괴로움과 아픔이 조금 덜하지 않을까?

능력에 과분한 일들을 하게 된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아마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조금이라도 더 잘 해보려고 모든 에너지를 쥐어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정말 가끔은 그냥 어느 커다란 기계의 조그만 부품이 되어 아무도 안 만나고,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않고, 그렇게 기계가 움직이는 대로 나를 맡긴 채 내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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