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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어느덧 영국에서 4년이 넘도록 살아왔건만, 아직 단 한 번도 다른 유럽국가를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유로스타를 타면 불과 몇 시간 안에 프랑스라도 다녀올 수 있음에도, 아직도 영국 바깥을 벗어나보지 못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영국에 살고 있으니 유럽은 언제든 다녀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보니 막상 유럽을 방문하지 못했고, 또 그렇게 한가하게 유럽을 다녀올 만큼 물질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더 큰 물질적, 정신적 비용이 필요한 한국도 몇 번 다녀왔고,  영국 내에서는 이런 저런 일로 방방곡곡 많이도 다녔으니, 딱히 정확하게 왜 내가 아직 다른 유럽국가를 다녀오지 못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정답이다.

어쨌든, 한국의 추석 연휴가 있었던 지난 며칠 동안 다른 유럽국가로의 첫 방문으로 스웨덴에 다녀왔다. 감사하게도 개인 경비를 전혀 들이지 않고 다녀올 수 있는 기회였으며, 그런 만큼 단순히 여행하고 즐기기 위한 방문이 아닌, 해야 할 일들과 만나야 할 사람들이 있는 방문이었다.

스웨덴 하면 보통 복지국가, 깨끗하고 아름다운 북유럽 풍경을 떠올리기 마련, 필자 역시 스웨덴에 대한 별다른 사전 지식이나 경험 없이, 특히 이번 경우에는 사실 너무나 준비없이 방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첫 날 도착하고 숙소 주변을 돌아다녀 보니 스웨덴 사람들의 분위기(?)가 예상했던 것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도 스톡홀름에서만 머물렀던 만큼, 참 사람이 많았는데 조금만 스쳐도 “I’m sorry”, “Excuse me”를 연발하는 다소 소심한(?) 영국인들이나 영국에서의 문화와는 달리, 이들은 거리를 걷는 사람들도, 도로의 자동차들도 너무나 거칠었다.

다음 날은 주스웨덴 한국대사관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어서 오고 갈 때 택시를 이용했는데, 오전에는 정말 친절하고 택시비도 합리적으로 계산한 스웨덴 출신 운전사를 만났다. 이동하는 중 스톡홀름에 대해 해박한 정보를 들려주는데 전문 가이드를 해도 손색이 없을 수준이었다. 들어보니 스톡홀름이 옛날에는 바이킹들의 집결지였다고 한다. 어쩐지, 기념품 가게마다 바이킹 장식품들이 있었는데, 바이킹은 노르웨이 출신이라고만 생각했지, 스웨덴이 이토록 바이킹의 직계(?)였는지는 정녕 몰랐던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나니 이들로부터 다소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던 게 납득이 갔다.

가는 길에는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났건만, 일을 마치고 대사관을 나서니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는데 역시 스웨덴 출신인 또 다른 택시기사는 첫 인상부터가 너무나 안 좋고, 요금을 석연치 않게 부르려는 듯 싶었다. 그래도 워낙 가까운 거리에 별일이야 있을까 싶었는데 이게 왠걸, 그렇게 길치인 필자도 파악한 근처 지리였는데, 일부러 길을 빙빙 돌면서 차가 막히는 구간으로 돌아가려는 것이다. 아무리 항의를 해도 자기가 35년 택시를 운전했다고 하면서 자기가 맞다고 우기는데 도무지 대책이 없었다. 결국 갈 때의 두 배에 가까운 비용을 내게 되었는데, 한참을 따지다가 도저히 말이 통하지 않아서 ‘X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심정으로 먹고 떨어지라고 그냥 줘버렸다.

런던에 며칠 있어보고 영국을 알 수 없듯, 필자가 스웨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은 맞지 않겠지만, 어쨌든 바이킹 민족이 세운 복지국가라는 다소 부조화의 느낌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무엇을 토대로, 어떤 과정에서 그렇게 복지국가가 되었을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물가도 그렇게 비싸다는 런던보다도 훨씬 비싼 것 같은데. 그리고, 스웨덴 사람이 부모인데 그 자녀는 동양인인 경우가 식당이나 거리에서 많이 보였는데 바로 입양된 경우였다. 별로 따뜻하지도, 친절하지도 않은 이들이 그렇게 입양은 많이 하다니, 역시 부조화의 느낌이다. 참, 그러고보니 그 유명한 ‘말괄량이 삐삐’도 스웨덴 출신이다. 정말 부조화다.

어쨌든, 항상 차를 가지고 여행하다가 차 없이 다니니 불편하기도 하고, 궂은 날씨에 고생도 많이 하고, 그럼에도 구시가지 감라스탄의 오래된 골목들을 걸으며, 수백 년은 된 것 같은 지하 동굴의 아늑한 카페에 앉아서 사색에 잠겨보며, 스웨덴이라는 나라에 새끼 손까락을 콕 찍어서 한 모금 맛을 보았다. 아직은 만분의 일도 알 수 없는 맛이지만 늘 먹던 맛과 다르다는 것 만큼은 분명하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지식과 마음의 시야를 동시에 넓혀준다. ‘이건 이럴 뿐이다’에 갇혀서 살다가 ‘이건 저럴 수도 있구나’를 발견하게 되고, 그래서 내가 알고 경험한, 내가 예상하는 것들이 전부는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 그렇게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다 보면 내가 시달리고 있는, 아니 어쩌면 스스로를 달달 볶고 있는 그런 문제들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보다 자유롭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사고와 감정을 전환하게 해준다. 그래서 우리는 늘 여행이 필요한 것 같다. 아주 가끔은 스스로를 가둬 놓은 자신만의 좁은 방에서 나와봐야 한다. 그러면 그 방에서 온갖 고민과 스트레스였던 것들이 그 방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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