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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크리스마스 이브면 꼭 보는 영화가 있다. 바로 ‘그렘린(Gremlins)’이라는 영화다.

1984년도에 나온 이 영화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모과이라는 신기한 동물(?)이 그렘린이라는 끔찍한 괴물로 변신하여 벌어지는 한 바탕 소동을 그리고 있다.

성인이 보기에는 조금 유치하기도 하고, 또 크리스마스 영화 치고는 조금 괴팍한 영화라서 ‘나 홀로 집에’처럼 모든 이들에게 사랑받는 전형적인 크리스마스용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이미 ‘서른 즈음에’를 통해 여러 번 밝혔지만, 형제 하나 없이 외동아들로 자란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그 외로움을 달래주던 영화를 정말 너무나 좋아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당시 우리집은 비디오를 들여놓을 만큼 넉넉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 시절 필자의 절대 소원 중 하나가 바로 비디오를 갖는 것이었다.

한편, 낚시광이던 필자의 아버지는 그 해에 한창 실내낚시라는 것을 즐기셨다. 워낙 낚시 실력이 좋으셨으니, 실내낚시에 가셔서 큰 물고기들을 잡아오셨다.

그런데, 하루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 실내낚시에서 경품을 걸고서 낚시대회가 열리는데, 그 경품들 중에 바로 비디오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평소 아버지의 낚시 실력으로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고, 드디어 필자가 그토록 소원하던 비디오가 생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고, 낚시대회는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지는 야간행사로 치러진 탓에 어머니는 먼저 잠자리에 드시고, 필자는 TV를 보며 밤 늦게까지 아버지를 기다렸다.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그 크리스마스 이브에 낚시대회 경품으로 탄 비디오를 들고 오실 아버지를 간절히 기다리던 중 TV를 통해 본 영화가 바로 ‘그렘린’이었다.

함박눈이 펑펑 내린 크리스마스 이브, 영화 속에서도 그렇게 하얀 눈에 덮인 마을 풍경이 너무나 정겨웠고, 주인공 빌리 역시 필자처럼 외동아들이었으며, 우리처럼 단 세 식구뿐인 빌리네 가족의 화목한 모습은 그야말로 우리 가족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필자의 또 다른 소원 중에 하나가 바로 강아지를 키워보는 것, 그리고 눈이 펑펑 내리면 그 강아지와 함께 눈 속에서 놀아보는 것이었는데, 마침 주인공 빌리도 그렇게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있었다.

게다가 주인공 빌리의 여자친구로 나오는 케이트 역의 피비 케이츠는 그야말로 천사 같았고, 필자는 영화를 보며 그 모든 것을 갖춘(?) 주인공 빌리가 너무나 부러웠으며, 심지어 내가 빌리가 되어 그 영화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끔찍한 그렘린들로 인해 한 바탕 소동이 일어나지만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만큼, 주인공 빌리가 겪는 그 모험도 너무나 신나 보였다.

그렇게 재미있게 영화를 본 뒤에 잠이 들었다가 새벽 늦은 시간, 드디어 아버지의 벨 소리가 들렸고 필자는 자다가 미친듯이 현관으로 뛰어나갔다.

현관문이 열리자 커다란 종이박스들을 여러 꾸러미 들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보였고, 그 순간 필자는 정말 좋아서 펄쩍 뛸 지경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버지는 여러 경품들을 타셨지만 비디오는 끝내 놓치셨던 것이다.

비록 필자가 그토록 원했던 비디오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 꼭두새벽에 아버지가 타오신 경품들을 뜯어보며 필자는 너무나 신이 났고, 이내 어머니도 잠에서 깨어 나오셨다.

그 경품들 대부분은 조개껍질로 만든 커다란 장식품들이었고, 솔직히 별 쓸모는 없어 보였다. 잠에서 깨신 어머니는 경품들을 보시더니 이 조잡한 것들을 어디다 두겠냐고 하시면서 심지어 갖다 버리라고까지 하셨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들 대부분이 나중에는 실제로 그렇게 버려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도 필자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렘린’을 보며 비디오를 들고 오실 아버지를 기다리던, 그리고 비록 비디오는 아니었지만 경품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신 아버지를 반겼던, 그리고 그 경품들을 뜯어보며 신났던 그 기억들이 아련하다.

결코 넉넉하지 못했던 그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외로움에 눈물까지 질질 짜던 그 시절, 그럼에도 이렇게 떠올려 보면 다시 돌아가고픈 그 시절...  

이후 초등학교 6학년 여름에 드디어 우리집도 비디오를 들여놨고, 훗날 연극영화과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했을 만큼 영화를 사랑했던 필자는 비록 영화인이 되지는 않았지만 신문에 영화 칼럼도 쓰고 영화 감독들을 인터뷰하며 여전히 영화와 함께 살아가는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비록 이렇게 서른을 넘은 아저씨가 되어 버렸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렘린’을 다시 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그 시절 꼬맹이가 되어 그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 이브로 돌아가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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