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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와 각종 폭약을 발명하고, 뛰어난 사업적 감각으로 젊은 나이에 거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
by 강운학 목사 / on Jun 17, 2006 07:36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와 각종 폭약을 발명하고, 뛰어난 사업적 감각으로 젊은 나이에 거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사망 기사가 프랑스의 한 신문에 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형 루드비히가 죽은 것을 신문사에서 잘못 기사를 낸 것이다. 그러나 노벨에게 실제 충격을 준 것은 기사의 제목이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요약한 수식어가 ‘죽음의 상인’임을 알게 되고 충격을 받는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7년에 걸쳐 유언장을 다시 작성한다. 1896년, 노벨이 사망한 후 유언장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가족과 친척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깜짝 놀랐다. 노벨은 세금과 친지에게 물려준 일부를 뺀 유산의 90% 정도를 노벨상을 위해 쓰기로 명시했다. 다음은 유언장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나의 전 재산을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처리할 것을 밝혀둔다. 원금은 나의 집행인들에게 맡겨 안전한 곳에 투자해 기금을 조성하게 하고, 거기서 나오는 이자는 지난해 인류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을 선정해 상을 주는 형태로 매년 지급하도록 한다. 앞서 언급한 이자는 5개 부문에서 공헌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하도록 한다. 첫째, 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둘째, 화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셋째, 생리학이나 의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넷째, 문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다섯째, 국가 간 우애를 돈독히 하거나 군대를 폐지 또는 축소시키거나 평화 회담을 주창ㆍ개최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다. 불행인지 행운인지 알 수 없지만, 그는 오보 하나로 자신의 죽음 후에 남게 될 인생에 대한 평가를 미리 보았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을 때 세상에 기여한다고 생각했지 자신이 살인과 전쟁을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세상의 냉정한 판단을 그는 수용했다. 그리고 그 사건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아, 수십 년 후 실제 죽음을 맞이했을 때 그의 이름 앞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노벨상을 탄생시킨 ‘평화의 후원자’라는 호칭이 남았다. 사후에 대한 생각 한번이 그의 인생관을 바꾸었고, 수세기 동안 후세에 남을 그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우리도 지금 이 순간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그리고 죽은 후 어떤 수식어가 우리의 이름 앞에 남을 지 한 번 생각해볼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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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news-강운학 목사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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