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특히 런던의 지하철이나 유동 인구가 많은 하이스트릿 등의 거리, 그리고 심지어 지하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거리의 예술가들, 그들의 거리 예술 활동은 버스킹(busking), 그리고 버스킹을 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은 버스커(busker)라고 불린다.

위키피디아는 버스킹과 버스커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Busking is the practice of performing in public places for gratuities. People engaging in this practice are called buskers.’ ‘버스킹이란 gratuities(무엇에 대한 대가, 팁과 유사한 개념)를 위한 공공 장소에서의 공연 행위이며, 그 공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버스커라고 부른다.’

잘못 오해하면 일종의 구걸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영국의 버스커들은 상당수가 실력 있는 예술가로 나름대로 자신들의 버스킹 활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며, 대중들 역시 이들을 진지한 예술가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지금은 거리 질서 확립을 위해 우후죽순으로 버스커들이 버스킹을 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규율과 규제가 확립되어 있지만, 과거에는 누구나, 어느 장소에서나 자유롭게 버스킹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듀오 사이몬과 가펑클(Simon&Garfunkel)의 2003년 공연 실황을 보면, 아트 가펑클이 오래 전 자신들이 무명이었을 때 런던에서 거리 공연을 했는데, 영국에서는 그것을 버스킹이라고 불렀고 자신들은 버스커라고 불렸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지금은 거의 전설의 수준으로 칭송 받는 사이몬과 가펑클이 그 옛날 런던의 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받으며 버스킹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인 키타리스트 케이 존슨(Kay Johnson) 역시 어쩌면 훗날 사이몬과 가펑클처럼 역사에 기록될 뮤지션이 되는 날을 꿈꾸며, 오늘 하루도 거리의 악사로 나서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유로저널: 안녕하세요! 이렇게 만나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고 계시는 한국인 독자들 중에도 런던 시내를 오고 가면서 케이의 연주를 목격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인 독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 버스킹과 버스킹의 세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 부탁드립니다.

케이 존슨(이하 케이): 네, 이렇게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되어서 너무나 즐겁습니다. 런던에서만 수백 명에 달하는 버스커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버스킹을 소개하는 한 명으로 제가 선택되어서 너무나 기쁩니다.

유로저널: 일단 간단한 본인 소개 및 언제, 어떻게 버스킹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부터 시작해 볼까요?

케이: 네, 저는 원래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출신으로, 1998년도에 가족과 함께 영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제 짐바브웨 언어 본명은 너무 어려운 것 같아서 그 첫 글자인 K를 Kay라는 이름으로, Johnson이라는 성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성을 빌려서 케이 존슨(Kay Johnson)이라는 예명을 마치 본명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기억해 주세요, 케이 존슨! 나중에 정말 유명해져도 케이 존슨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것입니다. 어쨌든, 저는 짐바브웨에 있을 때부터 기타를 연주할 줄 아셨던 아버지를 통해 기타를 배웠습니다. 영국에 와서는 2000년도에 잠시 학교에서 기타를 공부한 적은 있었는데, 그보다는 혼자 연습하면서 다양한 연주 활동을 통해 더 잘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거리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버스킹을 시작한 게 2001년도 입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정식 허가를 받은 버스커가 아니어서 주로 동네나 인근 기차역, 사람들이 많은 버스 정류장 인근 등에서 연주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버스커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지하철(Underground) 버스커가 된 것은 2004년도부터 입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정식 허가를 받은 버스커가 따로 활동하고 있다는 얘기인가요?

케이: 물론 버스커라는 용어는 거리, 그러니까 공공장소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모든 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장소에서 모두가 버스킹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가장 인기가 있는, 돈벌이가 잘 되는 지역에 대부분의 버스커들이 몰려서 난리가 나겠지요. 그래서 법으로 정해진 구역과 규칙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일단, 지하철 버스킹의 경우, 가장 지원자도 많고,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까다롭습니다. 매달 수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 버스커가 되기 위해 오디션에 신청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 번 오디션을 보기까지 대기자가 많아서 기다리는 시간이 길 뿐, 대부분의 경우 오디션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디션을 통과해서 정식 허가(라이센스)를 받으면, 지하철 버스킹 관리처에서 지정하는 시간과 장소(지하철역)를 배정받아 버스킹 활동을 하게 됩니다. 워낙 많은 버스커들이 지하철 버스커로 등록되어 있는 만큼, 좋은 자리를 좋은 시간대에 배정받기란 정말 드문 일입니다. 버스커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지하철역은 관광객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레스터 스퀘어, 옥스포트 서커스, 피카딜리 서커스, 토튼햄 코트로드, 캠든 타운, 노팅힐 게이트 등입니다. 지하철 버스킹의 경우, 날씨의 영향도 별로 없고, 야외 버스킹에 비해 안전하고 편안하기 때문에 많이 선호됩니다. 그 다음으로 선호되는 지역은 코벤트 가든과 런던아이 인근 탬즈강변 입니다. 코벤트 가든 역시 너무 많은 버스커들이 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코벤트 가든 지하철 역에서 코벤트 가든으로 이어지는 길에서는 음악 등 소리가 나는 공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로 인간 동상이나 삐에로 같은 버스커들이 활동합니다. 음악 공연은 오후 5시 반 이후로 코벤트 가든 곳곳에서 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라이센스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코벤트 가든 건축물 내에서 할 경우에는 지하철 버스킹과 마찬가지로 오디션을 보고, 정식 허가를 받아서 지정된 스케줄에 따라 공연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 코벤트 가든을 둘러싼 실외 지역에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공연을 할 수 있습니다. 단, 오랫동안 코벤트 가든에서 활동하는 버스커들이 저마다 자기의 고정 자리가 있는 만큼, 그것을 서로 지켜주면서, 특히 자신의 사운드가 다른 버스커들의 사운드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서로 일정 거리를 지켜주는 규칙이 있습니다. 가끔 호기심이나 모험 삼아서 처음 코벤트 가든에 나서는 버스커들도 있는데, 이들이 가끔 그 규칙들을 어길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어차피 며칠 하다가 그만 두더군요.

유로저널: 왜 그런가요?

케이: 버스킹은 단지 수익만을 생각하거나 재미만을 생각하고 시도했다간 반드시 실망하게 됩니다. 상당수의 버스커들은 버스킹 및 공연 활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이들입니다. 호기심에 시도하는 모험이 아니라 일상적인 직업으로 버스킹을 하는 것입니다. 버스킹의 수입은 일정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루에 열 시간을 거리에서 연주했는데, 서빙 파트타임을 하는 것보다도 못한 시급에 해당하는 돈을 만질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안 좋거나, 특별한 다른 이벤트가 있는 시기에는 상대적을 외출하는 사람들도 줄고, 버스커들에게 돈을 주는 사람들도 드뭅니다. 그런 상황들을 잘 이겨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같은 음악을 오랫동안 연주하다 보면 지루해 지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는 길에 아주 잠시 귀를 기울일 뿐, 누군가가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자리를 지키면서 연주를 감상해주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그럼에도 버스킹을 하는 순간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저 역시 초창기에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곳에서 버스킹을 할 때는 돈도 거의 못 벌고,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도 없어서 실망했지만, 다행히 그 시간을 연습하는 시간으로 삼고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유로저널: 버스킹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이 있다면?

케이: 역시 경제적인 문제입니다. 런던에는 정말 많은 버스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매우 특별한 공연을 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 비슷한 장르의 공연을 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경우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주지 않습니다. 간혹 아주 특이한 악기나 특이한 공연을 하는 버스커들은 좋은 수익을 거두기도 합니다. 또, 원래는 금지된 것이지만 자신의 CD를 판매하면서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공연도 아니고, 판매할 CD도 만들지 못한 버스커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습니다. 실력이 좋은 이들은 버스킹 외에도 클럽 등에서 공연 활동을 병행하거나 음악 레슨 등으로 추가 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한 음악인이 되어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는데, 그것은 정말 극소수에게만 해당하는 경우인 만큼, 매일 거리로 나서면서 언제나 되어야 거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유로저널: 그렇다면 반대로 가장 좋은 점, 혹은 즐거운 순간이 있다면?

케이: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든, 어쨌든 저는 거리에 나서는 순간마다 그 순간의 주인공이 되어서 제 작은 콘서트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제게 돈을 던져주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 순간, 자리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제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은 제 연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가던 길을 멈추고 제 곁에 서서 제 연주가 끝날 때까지 경청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꼭 돈을 주고 가시지만, 그분들께는 돈을 안받아도 될 만큼, 너무나 고맙습니다. 그런 분을 하루에 단 한 명이라도 만나는 날은 정말 행복하게 여겨집니다. 언젠가 그런 분들이 많아지면 제가 유명한 음악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유로저널: 혹시 가장 싫은 유형의 관객이 있다면?

케이: 제가 거리에서 공연하는 순간 제 곁을 지나가는 모든 분들이 다 소중합니다. 그런데, 간혹 멈춰서서 제 연주를 듣다가 한 곡이 끝날 즈음이 되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분들은 처음부터 그냥 지나가는 분들보다 오히려 더 싫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음악이 제법 괜찮다고 느꼈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제 음악을 듣는 것일 텐데, 그러면서도 한 곡의 연주를 마치면 돈을 줘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것을 피하려고 자리를 뜨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누가 내 연주를 경청하는구나 하면서 기분이 좋다가도 매우 실망스러워 집니다. 아마 이것은 저뿐만 아니라 다른 버스커들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부분일 것입니다. 지난 번 코벤트 가든의 서커스 곡예를 하는 버스커는 한참 자신의 묘기를 구경하다가 막상 마지막 묘기를 보일 때가 되니까 슬그머니 자리를 뜨는 관객의 뒤에다가 큰 소리로 “시간 빼앗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I’m so sorry to waste your time!)이라고 외치더군요. 묘기를 구경하다가 돈을 내기는 싫어서 자리를 뜨는 얄미운 관객에게 한 방 먹인 것이지요. (웃음)

유로저널: 거리에서 연주를 하면서 돈을 받기 때문에, 그것을 조금 낮게 보는 시선들도 있는지요? 본인은 그것에 대해 어떻게 여기는지요?

케이: 아무리 거리에서 사람들의 동전을 받으면서 연주하는 경우라도, 연주자가 정말 좋은 실력으로 최선을 다해 연주하면 사람들도 그것을 느낍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의 인지도와 경력을 지닌 연주자인데도 일부러 거리 연주에 나서는 이들도 제법 있습니다. 이들은 버스킹을 하나의 소중한 경험과 활동으로 여기면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실력이 형편없는 공연을 선보인다면, 혹은 너무 성의가 없이 보인다면, 관객들도 그 연주자를 무시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관객들은 버스커들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 입니다. 저 역시 거리에서 연주하는 모든 순간들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그것을 부끄러워한다거나 하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유로저널: 아직 동양인 버스커는 많지 않고, 특히 한국인 버스커는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인터뷰를 보고 버스킹에 도전하려는 한국인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케이: 요즘은 아시안 버스커들이 많아졌는데, 가끔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거나 아시안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을 보게 되면, 상당히 인기가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시안 공연을 하는 버스커가 많지 않기 때문에, 한국인 버스커가 등장한다면 매우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버스킹은 전혀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에게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좋은 공연을 선보일 수 있을 만큼, 연습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처음부터 큰 장소에서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하철 버스킹이나 코벤트 가든은 대기 시간도 길고, 경쟁자가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지역 쇼핑가, 하이스트릿 등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해도 됩니다. 저 역시 아직도 지하철 버스킹 스케줄이 없는 날은 초창기에 버스킹을 나갔던 동네 지하도나 버스 정류장 인근에서도 버스킹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커는 자꾸 사람들과 만나야 합니다. 버스킹을 오래하다 보면 관객들이 좋아하는 레퍼토리도 파악할 수 있고, 자신감도 생깁니다. 비록 유명한 음악인이 되지는 못해도, 좋은 연습 시간을 갖고, 풍부한 공연 경험을 얻게 되는 셈입니다.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객들에게 한국의 멋진 공연을 선보일 수 있는 버스커가 나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유로저널: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꿈이 있다면?

케이: 계획은 일단 제가 직접 만든 몇 곡의 노래들을 녹음해서 계속해서 음반사를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누가 알겠습니까? 어느 유명한 음반사의 사장이 우연히 거리를 지나가다 제 음악에 반해서 제게 기회를 줄 지도 모르지요. 꿈은 그냥 지금처럼 늘 음악을 연주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는 것입니다.

유로저널: 오늘 너무나 흥미로운 이야기 감사합니다. 언젠가 유명한 음악인이 되어서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게 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유로저널 전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