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전시관을 꾸미고 유럽에 자기 문화를 알린 일본은 당시 전 유럽 사회에 강한 충격을 주고 인기를 독차지 하게 됩니다.
프랑스 전시회에선 인상파에게 영향을 주고 영국의 런던 전시회에선 유명한 오페라 <나비부인>을 만들게 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나비부인을 작곡하고 기획한 원작자는 전시회를 방문하고 그곳서 파는 일본음식을 사먹고 일본의 문물에 흠뻑 빠져 일본도와 일본 의상을 사가지고 와 옷을 입고 칼을 휘두르며 사무라이 흉내를 내다가 오페라 <나비부인>을 구상하고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이렇게 일본을 유럽에 알리고 세계 1차 대전 때 막강한 국력을 확보하게 한 것은 유감스럽게도 조선의 도공들이었습니다.
당시 연 200여척의 일본 수출 무역선이 나가사키 항을 출발해 암스테르담에 수출품을 쏟아 놓았는데 주상품은 임진왜란 때 끌려간 도공들의 후손이 만든 세련되고 품질이 뛰어난 도자기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한반도에선 도공을 8가지 천한 직업 중의 하나인 팔천으로 분류하고 도공을 멸시해 점점 기술이 쇠퇴하게 됩니다.
만약 그들의 기술을 존중해주고 아꼈다면 청자를 만들 수 있는 고려시대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켜 근대화의 자본을 우리가 만들 수 있었고 아마도 일본만큼 발전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고 유럽에 일본 문화보다 먼저 한국의 문화가 소개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유감스럽게도 조선에선 도공들을 8천중의 하나로 업신여긴 것은 물론 관리들의 윽박지르기와 탐욕에 견디지 못한 도공들은 일본으로 끌려갔던 동료들의 권유에 조선을 떠나게 됩니다.
일본에선 이들을 잘 대접해 주고 기술과 디자인 개발만 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후원해 주어 결국은 일본의 자기가 한국을 앞지르게 됩니다.
고흐의 해바라기의 강렬한 색과 묘사의 근원
해바라기,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 1890) (Vase with Fifteen Sunflowers) 1888
Oil on Canvas, 92.1x73cm-36x28 Inches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그림이입니다만 그의 그림 안에는 동양과 서양, 유럽과 일본이 만난 문화의 흔적이 잔뜩 고여 있습니다.
그는 해바라기에 빠져 8점의 그림을 남겼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끄집어 낸 태양처럼 타오르는 불꽃의 중심색인 노란 해바라기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강한 인상을 줍니다.
해바라기에 유난히 집착하며 일렁이는 선으로 거칠게 표현한 형상은 고흐의 삶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고흐의 화려하고 강렬한 색깔과 일렁이는 듯한 선의 터치는 일본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아도 별 무리는 없습니다. 많은 미술사가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같은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서로 대비되는 색과 거친 터치로 덧칠하는 표현 방법으로 내면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는 격정을 그는 화면에 풀어 놓고 있습니다.
고흐의 해바라기 앞에 서면 그의 뜨거운 감성이 해바라기를 통해 화면 밖으로 쏟아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일본의 만남이 그를 이렇게 위대한 미술가로 다시 거듭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때로는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 혹은 문화와 문화 간의 좋은 만남이 위대한 예술과 위대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