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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친구’ 편에서 소개한 다섯 살 적 만난 Fire Egg 친구 성훈이에 이어, 이번에는 역시 만난 지 20년 가량 되는 중학교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나는 ‘외로움은 소중한 행복’ 편에서 밝힌 것처럼 성격이 활달하거나 친구가 많은 편은 결코 아니다. 더 솔직히는 정말 죽을 때까지 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친구’들은 열 손가락을 넘지 않을 것 같다. 성격 상 이런 저런 사람과 모두 모두 둥글게(?) 지내기도 어렵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얕은 깊이로 여럿 알고 지내는 것 보다는, 차라리 몇 안 되어도 언제 봐도 편하고 즐거운 그 몇 명의 소중한 인연들을 날이 갈수록 더욱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을 더욱 좋아하는 까닭에, 어떻게 보면 스무 살 넘어서는 막말로 죽을 때까지 볼 것 같은 인연은 불과 다섯 명도 만들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이름과 얼굴 정도만 겨우 기억나는 수백 명의 ‘지인’들이 여럿 있는 것보다, 비록 일 년에 한 번 만나도 그저 만나면 즐겁고 편한, 그래서 내 가장 솔직한 모습을 거리낌 없이 까도(?) 좋은 그런 '친구'들을 평생 열 명만 만들어도 그 인생은 정말 성공한 거라 믿는다. 그런 차원에서 내게는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 있었으니, 바로 마포구 중동에 살던 시절 함께 했던 중학교 친구들, 더 정확히는 중암 중학교 동창들이다. 다섯 살 적부터 중학교를 졸업한 16살 무렵까지 10년이 넘게 살던 마포구 중동, 그 중에서도 중암 중학교 시절은 지금도 꿈에 아련히 그려지는 소중한 추억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친구’ 편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아버지가 교사로 계셨던 충암학원 내 충암 초등학교를 다녔고, 그러나 중학교는 주소지에 따라 배정되었던 덕분에,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동창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순수하게(?) 주소지에 의해 배정 받은 중암 중학교에 입학해야 했다. 그러니까, 중암 중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야말로 중학교 시절 처음 만난 ‘중학교 친구’들이었던 것이다. 같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가 하나도 없는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사실 어린 나이에도 마음이 참 무거웠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내성적이고, 친구도 쉽게 사귀지 못하는데, 게다가 아는 이가 하나도 없는 중학교에 입학하다니...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중학교 시절은 내 평생의 학창 시절을 통틀어서 유일하게 동네에서 편하게 걸어서 통학했던 학교였고, 그래서 같은 동네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던 유일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우리 학교는 당시만 해도 (지금은 남녀 합반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한 학년에 남자 네 반, 여자 네 반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우리는 운 좋게도 중암 중학교 역사 상 마지막으로 사복을 입었던 세대다. 겨우 네 반에 불과한 남자반에서 어지간해서는 서로 이름과 얼굴을 모르기가 어려웠고, 워낙 조그만 동네였기에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친해지는 게 다행히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을 보내면서 한 번이라도 같은 반이었던 녀석들, 혹은 같은 학원을 다녔던 녀석들, 혹은 당시 우리 세대에서 정말 유행했던 농구(당시는 농구대잔치 연고전, 농구 드라마 ‘마지막 승부’가 대박이 났던 시절)을 같이 했던 녀석들 중 몇 명이 지금까지도 한국을 방문하면 얼굴을 보게 되는 인연으로 남았다. 사실, 중학교 시절 이 친구들과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아쉽게도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경기도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고,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를 진학했을 때처럼 같은 중학교를 졸업한 녀석이 하나도 없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또 다시 아무도 모르는 상태에서 홀로 남겨진 고등학교 시절을 맞이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이 지나고, ‘통기타 이야기’ 편에서 밝힌 것처럼 나는 고 3 겨울방학 무렵부터 대학교 1학년 시절까지 일산에서 통기타 라이브 아르바이트를 했고, 하루는 재수 중인 중학교 친구들이 내가 노래하는 업소로 놀러온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지만, 나는 당시 그렇게 놀러왔던 친구들을 위한답시고, “재수 중인 제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라고 멘트를 하고서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불렀다. 당연히 당시 가게에 있던 모든 손님들의 시선이 내 친구들을 향했고, 당시 친구들이 느꼈을 당황스러움과 쪽팔림을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해진다. 어쨌든,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 떠올려보니 참 즐거운 추억이긴 하다. 하지만, 맹세코 당시 나는 정말 진지했고, 친구들이 내 노래를 통해 힘을 얻어 꼭 좋은 성과를 거두기를 진심으로 바랬을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중학교 친구들과는 군 제대 후 다시 어울리게 되었다. 녀석들 대부분이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살던 마포구 중동과 성산동에서 계속 살고 있었던 덕분에 우리는 주로 신촌에서 어울렸고, 녀석들은 중동과 성산동에서 살면서 거의 매일마다 보는 사이였지만, 나는 아쉽게도 일산에서 어쩌다 한 번 넘어와서(?) 어울렸던 탓에 그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렇게 어쩌다 만나는 중학교 친구들이 참 반가웠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낸 중학교 시절이 그들로 인해 추억되곤 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뒤에도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이들, 그 동네, 그리고 그 시절의 추억이란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것인지... 그 녀석들을 미국을 가기 전, 그리고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도 어김없이 만났고, 또 이렇게 영국으로 오기 전, 또 영국에서 지내면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지금까지도 만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나는 그 녀석들 한 명, 한 명의 소소한 현재의 일상까지는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 평소 자주 안부를 주고 받는 것도 아니고, 겨우 일 년에 한 번 얼굴을 보고 지내는 까닭에, 어쩌면 나는 잊을 만 하면 얼굴을 비추는 그런 존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것이 나만의 착각일 지라도, 나는 지금도 그 녀석들을 만나면 너무나 반갑고, 그들과 함께 있노라면 지금 현재의 내 삶과 상관없이 언제나 마포구 중동에 살던 그 중학교 시절로 되돌아간 듯 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 편안함을 느끼고 정을 느끼는 관계가 되기란 참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스무 살이 넘어서 만난 이들과는 비록 ‘동료’나 ‘지인’은 될 수 있을지언정, ‘친구’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학교 친구들은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만나면 그냥 편하고 즐거운 녀석들이다. 그렇게 그냥 만나면 편하고 즐거운 이들을 또 다시 만든다는 게 너무나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비록 내 마음과 몸이 그들 곁에 가까이 있지는 못해도 그들은 내게 정말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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