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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10 00:41

할머니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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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감나무가 자란 마당이 있는 연남동의 친가집, 얼른 부엌으로 갔더니 다행히 할머니가 계셨고, 수북하게 가져간 만 원짜리 뭉치를 할머니 손에 꼭 쥐어드리면서 할머니한테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렀다.

 

잠결에도 들리는 내 흐느낌 소리와 뺨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눈물에 그만 잠을 깼다.

 

꿈에서 아무리 웃어도 자다가 실제로 웃지는 않는데, 신기하게도 꿈에서 울면 자다가도 실제로 눈물을 흘린다.

 

꿈 속에서처럼 할머니가 그 모습으로 계시고, 꿈 속에서처럼 할머니께 용돈을 쥐어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겨울 외출하셨다가 넘어지시고 수술을 하신 뒤로 할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시다. 그냥 편찮으신 정도가 아니라, 아마도 다시 예전처럼은 될 수 없을 만큼, 그래서 최악의 경우도 대비해야 하는 상태이신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 먼 영국땅에서, 무슨 대단히도 잘난 인생을 산다고 이러고만 있는 것인지.

 

한국에서 살았더라면 당연히 할머니 곁을 자주 지켰을 텐데, 이런 저런 사정으로 아직까지 마음만 애타는 상황이다.

 

요 근래 어줍잖게 서른 즈음에에 나름 시사적인 글을 썼는데, 내가 시사적인 글을 쓸 때는 두 가지 경우다.

 

정말 그 주제로 시사적인 글이 너무 쓰고 싶었거나, 아니면 내 마음이 병에 걸려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해 억지로 시사적인 주제로 글을 쓰는 경우. 그리고, 아쉽게도 이번의 경우는 후자였다.

 

어쨌든, 그렇게 마냥 병에 걸려 있을 수는 없기에, 이렇게 다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필자는 할머니 손에 자란 경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께서는 필자를 참 사랑해 주셨고, 많이도 챙겨주셨던 것 같다.

 

나는 가끔 정말 어릴 적 일도 또렷하게 기억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머리가 좋거나 기억력이 좋아서기보다는(학창시절 암기과목 점수는 별로였음), 어렸을 적부터 외로움을 너무나 많이 탔기에, 어느 행복하고 따스했던 순간들에 대한 잔영이 지금까지도 내 기억 어딘가에 간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내게 간직되어 있는 할머니와의 순간들 중 가장 오랜 기억은, 몇 살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할머니가 나를 업고서 연남동 골목길을 지나 지금도 연희동에 있는 사러가 쇼핑센터를 갔던 기억이다.

 

사러가 쇼핑센터는 말이 쇼핑센터지, 그냥 1층에 슈퍼마켓과 이런 저런 소규모 점포들이 모여 있는, 어떻게 보면 일종의 시장통 느낌이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도 당연히 장난감 코너를 너무나 좋아했다.

 

할머니는 그렇게 나를 업고서 사러가 쇼핑센터에 가서 장난감을 사주시곤 했다.

 

명절이면 친가에서는 직접 만두와 송편을 만들었는데, 부엌 옆에 있는 조그만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와 송편도 빚어보고, 납작하게 펼친 만두피 반죽을 밥그릇으로 눌러서 만두피를 찍어내던 기억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이 참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는데, 왜 이렇게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추억이 된 뒤에야 비로소 그것들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조금씩 커가면서부터는 친가집을 방문했다가 나올 때면 꼭 마당까지 나오셔서 두둑한 용돈을 손에 쥐어주셨다.

 

그 때는 그렇게 나는 영원히 할머니의 용돈을 받아 쥔 어린 손자로, 또 할머니는 언제까지나 그렇게 그 자리에 계시는 할머니로 남아계실 줄 알았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할머니를 뵙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고, 그러다가 결국 이렇게 나는 영국으로 오게 되면서, 할머니께 무언가를 해드리기가 참 어려워져 버렸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참 잘 해드렸을 텐데, 꿈 속에서처럼 마음껏 용돈을 쥐어드렸을 텐데...

 

집안 얘기를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집안에는 오랜 세월 동안 참 가슴 아픈 일들이 많았고, 그 중에서 삼촌들이 두 분씩이나, 그것도 할머니께서 가장 사랑하셨을 삼촌들이 할머니보다 먼저 돌아가시게 되면서, 아마도 할머니는 그 충격과 슬픔으로 많은 상처를 입으셨던 것 같다.

 

할머니는 다른 또래 어른들에 비해서 참 정정하시고 건강하신 분이셨는데, 그렇게 큰 슬픔들을 겪으시면서 어느새 그야말로 노인이 되어 버리셨다.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들었지만, 그럼에도 만약 할머니께서 다시 예전과 같이 회복되신다면, 정말 할머니께 잘 해드리고 싶은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그 기회를 놓쳐버린 게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다.

 

그러면서 다시 한 번 삶이라는 것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지나고 나면 부질없을 것들 때문에 정작 소중한 것들을 놓치며 사는 우리들, 결국 서로 용서하는 것, 서로 사랑하는 것, 그래서 되도록 많은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렇게 수도 없이 용서하고 또 수도 없이 사랑하는 게 삶일 텐데, 그게 왜 그렇게도 어려운 것인지...

 

할머니를 보고 싶어도 할머니와 찍은 사진 한 장이 없다니, 결국 꿈에서만 뵐 수 있는 것인지...

 

내 남은 평생 살아가는 동안 할머니 꿈을 얼마나 많이 꾸게 될 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나는 그렇게 할머니 꿈을 꿀 때마다 내 눈물에 잠에서 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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