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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31 00:57

일산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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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영국으로 떠나온 뒤에 일 년에 두 번 가량 한국으로 휴가를 다녀오는데, 그 때마다 일산 고향집과 동네 주변을 다니다 보면 참 많은 느낌과 생각들이 피어 오르곤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살았던 곳이니, 고향집과 일산의 곳곳에는 10대 청소년이었던 나의 지난 날들과 성인으로 성장해가면서 겪었던 그 모든 기억들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이번에 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셔서 한국을 다녀오면서, 역시나 일산의 곳곳을 다니며 지난 날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았다.

 

고등학교 시절 다녔던 독서실은 집에서 도보도 1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비록 고시원으로 바뀌었지만 지금도 그 건물,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3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각, 독서실 복도에 나와서 친구랑 수다를 떠는데, 독서실 건너편에 공사 중인 빈 건물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얼른 친구랑 독서실을 빠져나와 그 건물로 살금살금 다가가서 귀를 기울였더니, 남자인 직장 상사가 여직원을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강압적으로 희롱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이 상황을 재미있게(?) 듣다가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여자분이 위험에 처할 것 같아서 둘이서 그 건물로 뛰어들어가 남자분에게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하면서 여자분을 구출(?)해냈다.

 

남자분은 술에 많이 취해 있었는데, 까까머리를 한 건장한 고등학생 두 명이 들어서니 꼼짝을 못 하면서 당황해했다.

 

한 여름이라 주변 아파트들에서도 소리가 다 들렸던지, 어느새 신고를 받고 경찰차까지 출동해서 사태는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공사 중이었던, 자칫 범죄 발생 장소가 되었을 수도 있는 그 건물이 완공되었는데, 하필 그 건물은 경찰서였다.

 

일산에는 곳곳에 아파트 주민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자나 벤치들이 참 많다. 아파트 사이 사이 녹색이 우거진 자리에 있는 그 정자나 벤치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첫 사랑이었던 여자친구와 일산에서 데이트를 할 때면 수도 없이 함께 앉았던 그 자리들,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사와서 그 벤치에 앉아서 먹고, 몽롱한 상태로 누워서 담배 연기를 밤 하늘로 뿜어대며 나누던 수 많은 이야기들...

 

3 때부터 통기타 라이브 아르바이트를 했던 그 술집은 비록 지금은 다른 업체가 들어섰지만, 그 자리는 그대로 있기에 그 곳을 지날 때면 그 시절 통기타를 메고 설레는 마음으로 업소를 들락거리던 내 모습이 보인다.

 

교회 사람들과 자주 다니던 볼링장도 그대로 있다. 우리 교회 사람들이 얼마나 그 볼링장을 여러 명이, 또 자주 이용했던지, 나중에는 우리 교회 이름을 대면 볼링신발 대여료를 할인해주기까지 했다.

 

이번 한국 방문 중에는 여름방학 기간이어서였는지 중고등학생들의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그 시절의 내 모습들이 참 많이도 떠올랐다.

 

점심 시간에 혼자 식사를 하러 동네 식당에 들어가면, 중고등학생들이 학원 수업 중간에 나와서 급히 식사를 하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고 있는 그들, 그들은 과연 지금 어떤 모습의 미래를 꿈꾸고 있는 것일까? 그 시절 나는 어떤 미래를 꿈꾸며 지냈을까?

 

비록 치열한 입시 경쟁에 과도한 사교육으로 지쳤을지언정, 그럼에도 그들은 그들이 겪고 있는 그 10대 시절이란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을까?

 

백지장처럼 새하얀 도화지가 인생이라는 그림을 그려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엄마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식사를 사 먹이면서, 조금이라도 더 잘 먹이려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리고 엄마들이 자녀들이 먹은 식사값을 계산하는 것을 보면서, 그 학생들은 훗날 자신들이 번 돈으로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시기가 되면 부모님과 함께 할 날이 그 때까지 함께 한 날보다 많지 않음을 알게 될 텐데...

 

나도 그들처럼 아주 날씬하고 아주 건강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렇게 서른이 넘으니 한 번 자리잡은 뱃살이 잘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들은 상상조차 못 하겠지.

 

나도 그들처럼 그저 대학만 가면 남은 인생은 자동으로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며 그 고단한 하루 하루를 버티던 시절이 있었는데, 스무 살이라는 나이도 멀어 보였고, 서른 살이라는 나이는 정말 먼 미래의 일처럼 여겼던 시절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제 그들의 눈에는 내가 늙고 배 나온 아저씨로 보이겠지.

 

지금도 일산 고향집과 동네를 거닐다 보면 내가 그들처럼 10대 청소년이었던 때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부모님께서 40대셨던 때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은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러버린 것일까?

 

일산은 부모님이 계신 내 고향집이 있는 곳이며,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나는 일산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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