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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나는 편식이 매우 심했고, 허약한 체질이었다. 안 먹는 음식이 너무 많았고, 밥을 먹어도 물에 말아서 겨우 몇 숟가락 뜨고서 밥을 남기기가 일수였으며, 김치도 물에 헹궈먹던 대책없는 아이가 바로 나였다. 그렇게 편식을 하고, 먹는 것 자체를 싫어했으니, 당연히 몸은 바싹 말랐고, 감기도 자주 걸렸으며, 체하기도 자주 했고, 심지어 당시 허약한 어린이들만 먹는다는 어린이 영양제 ‘키디’라는 것도 먹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의 식습관을 고치시기 위해 종종 나를 굶기기까지 하셨지만, 나의 편식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급기야 초등학교 2학년 때는 백혈병 증상까지 발견되면서 학교를 쉬고 서울대학병원에 한 달이 넘게 입원하는 등 어려서부터 편식과 잔병 치레로 부모님 속을 많이 썩여드렸다. 그나마 건강해지기 시작한 것은 체육선생님이신 아버지를 따라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헬스클럽에 다니며 운동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씨름, 유도, 보디빌딩을 하신 아버지를 닮은 체질이어서였는지, 그렇게 운동을 조금 하고 나서 6학년 때는 당장 체력장 급수가 올라갈 만큼 건강해졌으며, 학교 대표로 턱걸이 대회에도 나갈 뻔 했다. 청소년기로 접어들면서 튼튼한 체질이 되어갔지만, 그래도 편식은 어지간해서는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생선 및 해산물을 너무 싫어했고, 마늘과 양파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편식이 고쳐진 것은 대학생이 되고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역시 아버지를 닮아서 체질적으로 술을 좋아했던 나는 술과 함께 궁합(?)을 맞춰서 먹는 그 음식들이 그토록 맛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렸을 때는 몰랐던 놀라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고, 급기야는 이제 지인들과 술자리를 할 때면 내가 식당도 정하고, 메뉴도 정하는 경지(?)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토록 싫어했던 생선류와 해산물은 정말 없어서 못 먹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고, 뭘 구워 먹을 때 마늘과 양파가 없으면 섭섭하기까지 할 정도로 내 입맛과 식습관이 변해버렸다. 아주 느끼한 파스타부터 돼지 구린내가 나는 돼지 막창까지, 정말 가리는 음식이 없어졌으며, 그러다 보니 어느새 몸무게가 제멋대로(?) 늘어났고, 이제는 체중과 건강을 생각해서 맛에 대한 욕심을 자제해야 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그런데, 그렇게 변해버린 내 모습을 보면서 발견하는 것은, 술을 마시는 습관, 음식에 대한 선호가 날이 갈수록 아버지와 너무나 똑같아진다는 것이다. 육류보다는 해산물을 좋아하는 입맛, 구워 먹는 메뉴는 숯불이 아니면 절대 먹지 않는 고집, 술과 안주 간 철저한 궁합, 어머니가 만드신 게 더 맛있는 메뉴는 절대 밖에서 안 사먹는다는 원칙, 하나를 먹더라도 맛있는 것을 먹고, 하나를 먹더라도 제대로 된 맛이 나지 않으면 짜증이 날 정도의 성미까지도 나는 철저히 아버지를 닮았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드시는 음식들이 별로 맛이 없어 보였는데, 어느새 내가 그 음식들을 똑같이 즐기고 있으며, 선물받은 양주들을 쌓아 놓고도 소주와 막걸리만 즐기시는 아버지처럼 나 역시 양주는 누가 사준다고 해도 먹지 않는다. 정말 밖에서만 사먹을 수 있는 특별난 메뉴가 아닌 이상,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으로 술을 드시는 것을 가장 좋아하시는 아버지처럼, 나 역시 영국에서는 거의 맛난 음식을 놓고서 집에서만 술을 마신다. 그렇게 아버지와 식성이 닮아가고 못 먹는 음식이 정말 없었던 내가 그나마 못 먹는 음식이 하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삭힌 홍어였다. 코를 팍 쏘는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삭힌 홍어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은 환장을 하는데, 싫어하는 사람들은 그 냄새만 맡아도 역겨워한다. 아버지께서도 처음에는 이 삭힌 홍어를 못 드셨다고 하신다. 그런데, 어느날 그 맛을 알게 되시고서는 집에서 막걸리와 함께 즐겨 드신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몇 번 먹어보려 시도를 했는데, 그 때마다 입에 맞질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7월 한국 방문 중 다시 한 번 시도를 했는데,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보면 무언가 후끈한 것이 코로 슉 올라오는 그 맛이 시원한 생막걸리와 함께 먹으니 자꾸 입에 들어가더라는 것이다. 결국 나는 그렇게 해서 삭힌 홍어를 배웠다(?). 어머니가 삶아주신 돼지삼겹 수육과 어머니의 맛있는 김치까지 곁들여서 아버지와 함께 막걸리를 주고 받으며 먹던 그 홍어 삼합 맛이 너무나 그립던 차, 급기야 어제는 뉴몰든에 있는 국일관에 가서 홍어 삼합을 맛있게 먹고 왔다. 코로 슉 올라오는 홍어의 향도 일품이었고, 시원한 막걸리의 맛도 참 좋았는데, 아쉽게도 아버지와 함께 먹던 그 맛까지는 아니었다. 내가 먹은 홍어 삼합의 맛이 부족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삼합 한 입, 막걸리 한 모금이 들어갈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던 것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홍어 삼합의 맛을 제대로 알고 먹는 것은 아닐 게다. 그럼에도 그 홍어 삼합이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아마도 내 고향 집에서 홍어 삼합을 놓고 아버지와 함께 주고받는 술잔이 그리워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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