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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5 01:43
영국 7년 차, 지난 날의 내 모습은 어디에...
조회 수 2501 추천 수 0 댓글 0
어느덧 10월, 영국 7년 차가 막 시작되었다.
많게는 수십 년 동안 영국에서 사신 분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 영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축에 속하지만, 그럼에도 벌써 영국 7년 차가 되다니, 지나버린 그 세월의 속도가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문득 이메일이라는 것을 처음 시작했던 당시의 아주 오래된 이메일들을 찾아서 하나 하나 읽어보게 되었다.
내가 이메일을 처음 만든 것은 군 제대를 앞둔 2001년의 어느 날이었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과 주고받은 그 수 많은 이메일들을 하나도 안 지우고 다 보관해왔다.
그렇게 찾아본 2001년도의 이메일들을 읽다보니, 그 시절의 내 모습, 내 생각, 또 당시 함께했던 사람들이 모락 모락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벌써 10년 전이다. 연초에는 정작 느끼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2011년, 그러니까 2001년 이후로 10년이나 세월이 흘렀다.
이렇게 얘기하는 까닭은 2001년이 내 인생에 있어서 참 기억에 남을 만한 해였기 때문이다.
일단, 나는 2001년 4월에 제대를 했다. 그렇게 제대 후 5개월 동안 일산에서 종로로 매일 영어회화 학원도 다니고, 여러 학생들의 과외 지도를 맡아서 더 이상 학생을 받지 못할 지경까지 이르렀으며, 그 와중에 음악 활동도 열심히 했다.
그러다가 회화학원에서 만나 친구가 된 미국인 강사의 권유로 2001년 9월 미국 보스톤으로 1년 가량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9월 14일이 출국일이었는데 (당시 한국에서 보스톤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이 없어서, 뉴욕으로 갔다가 비행기를 갈아타고 보스톤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출국일을 불과 며칠 남겨놓고 믿지 못할 뉴스가 들렸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테러로 무너진, 세계 테러 역사 상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 하필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보려던 그 시기에 터진 것이었다.
당연히 출국일은 며칠 더 지연되었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미국땅을 밟았으며, 어쩌면 당시 미국에서 지낸 불과 1년도 되지 않는 그 시간들 때문에 나는 지금 이렇게 영국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강렬한 동경, 그리고 나는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서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을 미국에서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어딘가 더 잘났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그보다 나는 한국과 같은 치열한 경쟁사회와 획일화를 강요하는 조직에서는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모험을 하더라도 새로운 세상에서 내가 가진 개성을 최대한 발휘하는 게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면, 한국에서 내가 보고 듣고 무의식적으로 강요당한 그런 틀에 박힌 삶 말고도 또 다른 형태와 또 다른 방식의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나는 결코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 시절의 이메일들을 읽어보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떠올려보면 10년 전의 나는 사람이라는 존재, 사회, 세상에 대해 너무나 무지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내 모습과 비교해보면 그 당시의 나는 훨씬 더 순수하게 느껴진다.
비록 지금은 그 때에 비해서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속된 말로 나름대로 그 때보다는 출세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잃어버린 것들도 참 많은 것 같다.
분명 지금은 그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음에도, 왜 내 마음은 그 때처럼 자유롭고 유쾌하지 못할까?
그 시절의 이메일에 등장하는 소중했던 사람들 가운데 슬프게도 상당수는 더 이상 소식조차 모르는 타인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무심히 연락이 끊어진 수 많은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도 전성민이라는 사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메일에 남아있는, 10년 전 교회에서 작은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내가 작성한 초대글을 보면, 지금은 그런 글을 쓸 자신이 없을 만큼 참 순수하게 글을 썼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내 기타실력이나 내 음악은 지금보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부족했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음악을 향한 내 마음은 그 당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순수해 보인다.
지난 10년 간 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며 나름대로 더 똑똑해졌다고 착각하지만, 그 사이에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면 결국 나는 지난 10년 간 더 어리석어진 것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가장 큰 행복을 누리도록 해주는 것은, 그리고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가장 큰 지혜는 결국 순수했던 시절의 동심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그 동심으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어른이 되어가고, 사회와 세상을 알아가면서 동심을 잊어버리며, 그 사회와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몰두하다 보면 결국 동심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잊혀진 동심을, 그렇게 잃어버린 동심을, 그렇게 떠나온 지난 날의 내 모습을 다시 찾고 싶어진다.
그런데, 먼 훗날 세월이 더 흐른 뒤, 그 미래의 시점에서 되돌아볼 때는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도 또 그렇게 돌아가고픈 순수의 시절처럼 여겨지는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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