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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비는 것도 올바르지 못했다. 잘못을 고하는데 있어서 잘못했는지 잘했는지를 신의 기준이 아닌 자기의 기준...
by eknews15 / on Oct 16, 2011 21:57
잘못을 고하고 용서를 비는 것도 올바르지 못했다. 잘못을 고하는데 있어서 잘못했는지 잘했는지를 신의 기준이 아닌 자기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이기 때문에 판단할 자격도 없는 부쉬맨이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은 모순이었다. 또 부쉬맨이 자기의 기준으로 잘했다 잘못했다 하고 있는데 부쉬맨의 기준으로는 잘했다는 것이 신의 기준으로 보면 잘 한 것이 아니었다. 깊이 성찰해 보면 신에게 의식을 바치는 것도, 선행을 하는 것도 모두 잘못을 저지르는 존재인 자기를 위해서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자기라는 존재는 신에게 다 바쳐져서 없어져야 할 존재인데 없어져야 할 그 존재가 평화를 누리고 복을 받아 잘 살다가 죽어서 좋은 곳에 가기 위해 신을 모시고 선행을 하기 때문이었다. 신의 기준으로 보면 잘한 것이 하나도 없다. 따라서 부쉬맨이 생각하기에 잘못한 것은 물론 잘했다는 것조차도 일체를 고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옳은데 부쉬맨이 자기의 기준으로 잘못했다고 판단되는 것만 고하고 용서를 빌고 있었다. 또 자기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에 관해서는 반성도 후회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용서를 빌 수가 없었다. 신과의 관계에서 잘못이 무엇인지, 그것이 왜 잘못인지, ‘나’라는 존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지, 왜 사는지, 삶과 죽음이 무엇인 지와 같은 근본적인 의문을 풀 수가 없었다. 또 신을 경배하라고 하지만 신전에 나아가 잠깐 경배하는 시늉만 하다가 일상(日常)으로 돌아오면 신보다 더 소중한 자기가 있고 배우자와 자식이 있으며 재물과 명예와 권세와 사랑이 있어서 신은 뒷전이었다. 지각(知覺)있는 사람들의 자성(自省)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개혁을 하자고 주장하며 앞장서는 사람도 있었지만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를 못하니 올바른 해법이 나오지 못하였다. 부쉬맨은 무지(無知)하고 무지(無智)하여 경전의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제대로 알기에는 그들의 의식이 너무 작고 때묻어있었다. 경전의 말씀을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도 마찬가지였다. 학자들은 일반 부쉬맨보다 잘 아는 것같이 보였지만 그들의 의식 역시 때묻어있었고 작아서 경전의 말씀을 모르기는 일반 부쉬맨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은연중에 이처럼 식어버리고 변질된 믿음을 개탄하며 삼천년 전에 젊은 용사가 나타나 무지한 그들의 눈과 귀를 틔어주었듯이 또 다른 현인이 나타나 새 세상을 열어주기를 갈망하는 부쉬맨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부쉬맨 마을 사람들이 신을 멀리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새로운 현인이 올 때가 다가왔다고 굳게 믿었다. 자연스럽게 새로운 현인을 기다리는 부쉬맨들의 모임이 생겨나고 그들은 새로운 현인이 올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경전의 말씀을 다시 해석하는 한편 타성적이고 격식화된 의식을 버리고 다시 올 현인을 맞이하기 위한 새로운 의식을 바쳤다. 그리고 경건한 삶을 살면서 조용히 새로운 현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새 세상이 열리려는 상스러운 기운이 서서히 부쉬맨의 마을에 감돌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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