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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23 00:46
경제 제 1 규칙, ‘형편껏’ (1)
조회 수 2096 추천 수 0 댓글 0
어렸을 적에는 어른만 되고 나면 ‘먹고 사는’ 일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자동으로 해결이 되는 줄 알았다. 어린이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그냥 돈이 자동으로 생겨서 갖게 된 것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의식주를 부족함 없이 베풀어 주셨고, 친척 어른들도 우리들에게 용돈을 척척 쥐어주셨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 어른이 되고 나니 그 한 푼의 돈을 번다는 게, 생판 모르는 남으로 하여금 나에게 돈을 지불하도록 만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몸소 체험하면서, ‘먹고 사는’ 일은 정말 한 시도 쉴 새 없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돈을 버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요즘은 그 돈을 지출하고 관리하는 것 역시 돈을 버는 것 못지 않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진 경제 제 1규칙은 바로 ‘형편껏’이다. 나는 누가 들으면 “우와!”할 만큼 고소득을 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번 분야에 밝아서 재테크를 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형편껏’의 규칙 하나로 지금까지 큰 탈 없이 버텨온 것 같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늘 쪼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코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닌데도 관리를 잘 해서 그 나름대로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도 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일 바로 이 ‘형편껏’이다. ‘형편껏’, 그야말로 자신의 형편 내에서 돈을 지출하고 관리한다는 것인데,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또 쉬운 것 같지만, 막상 실제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보면 이 ‘형편껏’이 너무나 어려운 것 같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형편껏’을 지키지 못한 까닭에 신용카드라는 것도 탄생하게 되고, 수 많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빚을 지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이 ‘형편껏’은 절대 하루 아침에 실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습관처럼 형성되어야만 하는 규칙이다. 그런데, 가끔 이 ‘형편껏’이 체질적으로(?) 불가능한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형편과 상관없이 쓰고 싶은 것에는 무조건 돈을 써야 하는 이상한 본능을 타고난 이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 ‘형편껏’을 지키지 못해 인간 구실을 못하고, 빚을 안 지고는 살지 못하며, 그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끊임 없는 피해를 준다. 이 ‘형편껏’이 안 되는 사람은 자기 혼자만 망하면 될 것을, 꼭 주위에 ‘형편껏’ 사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런 식이다, 형편 상으로는 티코를 몰아야 하는 사람이 무리해서 그랜저를 사 놓고서, 형편껏 티코를 몰면서 조금이라도 저축을 하면서 작은 여유를 누리는 사람에게 자기 그랜저 할부금 꿔달라는 것이다. 티코 타는 사람에게 돈 달라고 하면서도, 이들은 정작 자기 그랜저를 처분할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다. 누구는 그랜저가 티코보다 좋은 줄 몰라서 그랜저를 안 모는가? 형편 상 그랜저를 사면 빚을 내야 하고 유지비로 인해 쪼들릴 것 같으면, 자신의 수준에 맞는 티코를 사고서, 대신 그로 인해 절약된 작은 여유 비용으로 저축을 하거나 다른 즐거운 일에 지출하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남이 하는 것은 나도 어떻게든 같은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그릇된 믿음을 지닌 우리 한국인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 ‘형편껏’이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누가 큰 집을 샀다고 하면, 월세를 살아야 하는 형편인 사람도 빚을 내서 작은 집이라도 사야 직성이 풀리는 게 우리 한국사람이다. 우리 민족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남의 일에 쓸데없이 관심이 많은 문화’, ‘남의 시선에 쓸데없이 예민한 문화’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다. 월세를 살아야 하는 형편인 사람은 월세를 살고, 큰 집을 살 형편인 사람은 큰 집에서 살고, 그렇게 형편껏 사는 게 자연스럽고, 또 그렇게 형편껏 사는 모습들을 대하는 게 자연스러워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월세 사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낮게 보고, 월세 사는 사람은 그러한 다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니, 결국 너도 나도 형편껏 살지 않고, 남들에게 그래도 어느 정도 수준으로 보이기 위해 그 형편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고 빚을 지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뼛속부터 한국사람이니 한국에서였더라면 ‘형편껏’의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영국에서는 이 ‘형편껏’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자기 집을 가졌다고 우러러 보지도 않고, 월세를 산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냥 여기서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물론, 여기서는 남의 시선에 맞추려고 형편을 넘어서는 지출을 하는 이들은 없어도, 자신의 지출 욕구를 절제하지 못해 ‘형편껏’의 규칙을 지키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하기는 한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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