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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6 19:56
경제 제 1 규칙, ‘형편껏’ - 마지막
조회 수 2302 추천 수 0 댓글 0
이번 시리즈를 쓴 이유는 어떤 대단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나는 경제에 대해 정말 무식할 만큼 문외한이며, 누군가에게 경제에 대한 조언을 줄 수 있는 자격도 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쓴 것은, 그냥 주변에서 형편껏 살지 않아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보기가 안타까워서다. 가끔은 돈이 없다며 하도 죽는 소리를 하는 그들에게 비록 큰 액수는 아니더라도 경제적 도움을 건넨 적도 있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내가 경제적 도움을 건넨 이들이 나보다 좋은 전자제품을 쓰고 나보다 더 고급스런 삶을 누리며 사는 것을 볼 때면,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그들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씀씀이를 줄이라고 하자니, 그런 조언을 건네기가 어려운 관계인 경우도 있고, 또 그런 조언을 건네면 자신은 절대로 씀씀이를 줄이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자존심을 상해 하거나, 아니면 그냥 그런 나의 조언을 무시하는 반응도 있을 테니, 함부로 조언을 하기도 어렵다. 하긴, 씀씀이를 늘리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마냥 자기 씀씀이만 고수하다가는 정말 비참한 꼴을 보게 될 텐데, 그런데도 그 씀씀이는 줄이지 않으면서 돈 없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인간들을 보면 참 답답하다. 나 같으면 남한테 돈을 꾸거나 카드빚을 낼 바에는 내 씀씀이를 줄일 것 같은데, 맨날 쪼들린다고 남한테 주접을 떨 바에는 차라리 밥을 굶을지언정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자신의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그로 인한 결과물로 씀씀이를 조금씩 늘려가는 것은 어쩌면 인간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 중 하나일 수도 있다. 저널리즘 공부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유로저널에서 글을 쓰는 일을 하기 전까지, 그러니까 영국 유학생 초창기에 기타 레슨으로만 겨우 먹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활발하게 활동하는 가야금&기타 듀오 KAYA가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았던 시절이라, 당시에는 교회들에서만 봉사 차원의 연주만 했지, 지금처럼 뮤지션으로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연주할 기회도 없었다. 지금 살고 있는 방에 비하면 반 정도 크기밖에 안 되는 방에 살았고, 지금도 외식은 거의 안 하지만, 당시에는 더더욱 먹고 싶은 것을 참아야 했다. (물론, 그래서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날씬했던 것도 있다) 당시 슈퍼에서 소주 한 병이 3.5파운드였는데, 이것도 유학생인 나에게는 큰 돈이었다. 그래서 나는 테스코에서 파는 제일 싼 테스코산 보드카를 사다가 사과 주스에 희석시켜서 소주 세 명 정도 분량으로 만들어서 아껴 마시곤 했다. 슈퍼에서 장을 보면서 그토록 좋아하는 순대를 사려고 들었다 놨다를 망설이곤 했다. 나중에 정식으로 취업을 하고 나서 형편이 조금 나아진 뒤에, 슈퍼에서 소주 한 병 정도는 부담 없이 집어들고, 또 좋아하는 순대를 거리낌 없이 장바구니에 담으면서 어찌나 즐겁던지... 처음부터 돈이 많은 사람이 봤을 때는 가소로울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내 형편껏 조금씩 씀씀이를 늘려가면서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지금 내 형편을 벗어나는 지출을 하지 않기 위해 또 나름대로의 ‘형편껏’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아직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있다. 별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아직 필요가 없어서다.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라서 돌아 다니면서 인터넷 쓸 일도 없고, 회사에서 내준 일반폰도 회사일 하는데는 별 불편이 없다. 내 개인 휴대폰은 2005년도 유학생 시설 10파운드 주고 샀던 구닥다리 폰인데,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내가 엄청난 짠돌이거나 어떤 대단한 소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굳이 없어도 되는 것에 추가 지출을 할 필요가 없어서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마냥 궁상맞게 사는 것도 아니다. 비록 외식은 자주 안하지만, 장을 봐서 늘 맛난 것을 사다놓고 먹고 있으며, 간간히 문화생활도 즐기고, 또 한국에 가면 부모님께 정말 좋은 것들만 사드리고, 지인들에게도 넉넉하게 쏜다. 내가 쓰고 있는 기타는 수백 만원 짜리 기타다. (물론, 지금까지 이 기타로 번 돈이 기타 가격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았지만) 내 형편껏 절약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절약하고, 대신 내가 꼭 지출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역시 형편껏 즐겁게 지출하는 것이다. 나는 나 혼자서만 이렇게 형편껏 비참한 꼴 안 보고 사는 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먹고 살만한데, 남은 그렇지 못하다면 나도 마냥 즐거울 수가 없다. 주위 사람들도, 또 가능하다면 모든 사람들이 크게 어려운 꼴 당하지 않고서, 적당한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는 게 결국 나에게도 좋은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내가 그나마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 바로 ‘형편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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