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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03:05
도전이 없는 삶은 슬프다
조회 수 1975 추천 수 0 댓글 0
요즘처럼 그야말로 먹고 살기가 힘든, 그리고 당장 내일 일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쩌면 ‘안정’은 이제 우리가 살아가는 하나의 수단이자 목표가 되어버린 것 같다. 과거에는 박봉에 재미없는(?) 직업으로 치부되던 교사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한창 모험심 가득한 꿈을 꿔야 할 젊은이들부터, 이미 사회생활을 어느 정도 경험한 이들까지,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들 중 정말 자신의 가치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설레임으로 공무원을 꿈 꾸는 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장담하건대 이들 중 99%는 ‘안정’ 하나만 보고 공무원이 되려는 이들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생활이 안정되고, 삶이 안정되는 것은 사실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모험은 감행할지언정, 결국 그 뒤에는 어느 정도의 안정을 바라기 마련이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한 때는 모험심 가득한 꿈을 안고 영국 땅을 밟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기를 지내면서도 늘 앞날에 대한 찬란한 꿈을 꾸곤 했다. 그리고, 하늘의 도우심으로, 또 수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적처럼 영국에 정착했고, 별 탈 없이 잘 지내오면서, 비록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하지만, 어쨌든 나 역시 어느새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은 문득 이렇게 안정된 삶 속에서 더 이상 어떤 것에 대한 도전이나 모험심이 조금씩 사라져감을 느끼게 된다. 지금 쓰고 있는 ‘서른 즈음에’를 쓰기 전에 인터뷰 기사를 한 편 작성했다. 스쿠터를 타고 세계일주에 나선 나와 비슷한 또래인 30대 초반 여성 두 명의 사연이었다. 인터뷰를 다듬으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차근 차근 읽어보며, 문득 나 역시 그렇게 모험심 가득했던, 까닭 모를 뜨거움이 가슴에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그런 모험심과 뜨거움이 많이 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한창 경쟁해도 시원치 않을 30대 초반에 세계일주를 한다고 그렇게 몇 년 간의 공백기를 갖는 게 불안하지 않냐고 그들에게 물었더니, 그들은 막상 여행을 하다보니 오히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지고 아이디어도 넘쳐난다고 답했다. 그리고, 지금의 시간들이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내일을 위한 일종의 준비 기간이기에, 이 시간을 결코 공백기라 생각지 않는다고 한다. 나 역시 한창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20대 중후반에 오히려 그 동안 저축한 모든 돈을 투자해서 무작정 영국으로 떠나오면서, 그 시간들을 공백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언론 공부를 시작하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글쓰기를 막 시작하고, 그저 교회들만 다니면서 연주하는 수준의 음악활동을 하면서도, 당장 생계를 해결할 방법도, 비자를 해결할 방법도 몰랐던 그 막막함 속에서도, 나는 늘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고, 글을 쓸 소재들도 너무 많았다. 그런데, 이제 그 모험의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면서, 이제는 스쿠터를 타고 세계일주에 나섰다는 그들의 도전이 다소 불안하고 또 무모하게까지 여겨질 만큼, 나는 이제 현실의 안정에 도취되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안정된 직장생활, 익숙해진 업무, 5년 째 지속하고 있는 글쓰기, 이제는 어느 정도 대접까지 받으면서 활동하는 음악인, 그렇게 꿈 꿔왔던 것들이 하나씩 현실로 이루어지게 되자, 오히려 열정도 식어버리고,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는 의욕도, 새로운 글을 쓸 소재도 고갈되는 것 같다. 유학생 시절, 무거운 악기들과 음향장비까지 짊어지고서 대중 교통을 갈아타면서 정말 고생 고생을 하면서 거리 연주를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몇 시간 씩 거리에서 뜨거운 햇살 아래, 때로는 소나기를 맞으며 그렇게 연주했던 시절, 참 많은 꿈을 꾸면서 가슴이 뜨거웠던 것 같은데, 이제는 자가용도 있건만 부끄럽게도 마지막으로 거리 연주를 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이제는 불러주는 곳도 많아지고, 그렇게 제대로 된 자리에서 30분 정도만 연주해도 과거에 온 종일 거리 연주를 한 것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게 되니, 거리 연주를 굳이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간절히 바랬던 것들이 어느새 일상이 되었을 때, 정말 조심해야 하는 것 같다. 어느덧 모험심이 사라지고, 더 이상 설레이는 꿈을 꾸지 않게 될 때, 그렇게 일상에 안주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로 늙어가는 게 아닐까? 물론, 큰 어려움이나 큰 고통 없이 안정되게 산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지만, 더 이상 도전이 없는 삶은 너무나 슬픈 것 같다. 날씨가 좀 더 따뜻해지면, 올해는 정말 오랜만에 꼭 다시 한 번 거리 연주에 나서야겠다. 그리고, 어느새 식어버린 가슴도 다시 뜨겁게 달궈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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