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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과거사 왜곡 시정과 우경화 추세 저지를 위한 ‘아시아평화 의원연대회의(papa)’ 창립 총회가 지난 주말 제주에서 열렸다. 한국과 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11개국 국회의원들은 이 모임에서 ‘역내 국가와 민족간 진정한 화해와 상호 신뢰를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과 역사에 대한 정확하고 올바른 시각을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의 평화선언문을 채택했다. 일단 구체적인 실천사항에 앞서 원칙을 천명한 것이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다. 일본의 그릇된 행태를 막기 위해 아시아 여러 나라가 힘을 모으기 시작했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사실 일본의 불충분한 전후 처리와 과거사 왜곡,그리고 군사대국화 기도 및 우경화 추세는 이웃 한두 나라만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아시아는 물론 세계적 우환이 되기에 모자라지 않다. 따라서 일본이 잘못된 과거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의회 차원의 다국적 공동 노력은 매우 바람직하다. 더욱이 이는 며칠 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한국 및 중국의 거센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또 다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데서 보듯 개별 국가보다는 각국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의 국제적 연대 구축을 통한 공동 대응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는 데 비추어 더 그렇다.
게다가 11개국 의원들 가운데는 일본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그런 만큼 papa로서는 한층 더 힘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아무쪼록 papa가 활성화돼 역내 화해와 평화 구축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활동을 펼치게 되기를 바란다.
이와 함께 일본은 이제 이같은 아시아 여러 나라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총리의 신사참배 등을 놓고 왜 다른 나라들이 야단이냐는 식의 사고방식은,특히 아시아에서 일본의 고립만 초래할 뿐이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와 독단적 군사정책은 아시아에 경종을 울렸다’는 뉴욕 타임스의 지적을 깊이 새겨야 한다.
오사카 고등법원이 이미 총리의 신사참배는 위헌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본정부 차원에서 합헌이라고 우기는 것은 단순한 억지 이상은 아니다.
이러한 국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일본에 대한 대처는 무척 불안하고 정확한 지향점으로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지난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직후 “방일이 부적절하다”고 했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닷새 만에 태도를 바꿔 일본 방문 계획을 밝혔다. ‘갈팡질팡 외교’를 보는 듯해 유감이다. 일본 정부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자세를 낮춘 것은 아닌가. 물론 국민 정서에도 맞지 않는다.
방일 결정은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 주재의 고위전략회의가 만든 ‘대일 외교정책에 관한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한다. 지침은 정치?외교 분야와 일반 교류?협력을 분리하고, 외교행위도 필수불가결한 것과 선택적인 것으로 나눈 뒤 선택적 외교행위만 제한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지침 자체는 나름의 일리가 있다. 신사 참배가 아무리 심각한 문제이더라도 모든 대일 관계가 흔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 장관의 방일이 필수불가결한 외교행위인지는 의문이다. 정부는 다음달 열릴 아펙 정상회의 및 5차 6자 회담과 관련해 일본 쪽과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장관급이 아니라도 협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장관이 직접 일본 정부에 우리 뜻을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했으니 온 국민이 그 결과를 주시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과거 일제의 침략과 만행을 합리화한다는 점에서 반평화적이고 반인륜적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보란 듯이 참배를 계속하는 데는 일제의 유산을 군사 대국화와 동아시아 패권 경쟁의 밑거름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일이 벌어지면 흥분했다가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손을 내미는 어정쩡한 외교로는 일본의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를 막기 어렵다. 중국이 지난 3년 반 동안 정상간 상호방문을 끊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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