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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5 05:29

뉴라이트의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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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미래 지향적 보수를 표방하는 뉴라이트 단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뉴라이트 운동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교과서포럼이다.

교과서포럼은 역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조명하며 진보적 학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던 역사관을 다시 정의하여 쓰자는 모임이다. 한 가지 예로서 5.16군사쿠데타를 5.16군사혁명으로, 4.19민주혁명을 4.19학생운동으로 고쳐 쓰자는 것이다.

4.19는 혁명이고 5.16은 쿠데타지만 현대사를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연구하자는 시도로 이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려되는 대목은 이 포럼이 한걸음 더 나아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우리나라는 일제치하에 식민지 지배를 통해 산업자본이 축적되기 시작했고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일제에 의해 철도와 도로망이 전국적으로 구축되고, 경공업 위주의 산업이 형성되는 등 산업화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얘기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짚고 가야 하는 것은 일제 식민지 지배가 우리나
라 산업근대화와 경제발전에 꼭 필요한 조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하지 않았더라도 조금 느렸을지도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산업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포겔 교수의 지적처럼 전 세계 국가들의 경제발전 단계가 점차 수렴하고 있으며 선, 후진국간 발전 단계의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는 연구결과는 이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교과서 포럼의 얘기를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자.

이들 역사관에 따르면 식민지 시대 이전인 조선후기에 우리나라는 가난한 농업경제이었으며 토지소유가 하향 평준화되고 있었다.

토지소유의 하향 평준화와 더불어 농업생산성 증가로 인해 자급자족적 농업생산방식이 가능해 지면서 소농위주의 농업경영이 주종을 이루게 되고 노비제도가 급격히 해체되었다.

이에 따라 사회적 신분과 질서가 동요되고, 잦은 민란과 토지소유의 하향분해로 인해 공업화나 경제발전에 필요한 본원적 자본축적이 형성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경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농업에서 공업화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조선후기에 이 단계를 거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근대적 의미를 가진 자본 축적이 공업화 단계에서만 가능하다면 공업화를 거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이 축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에 의한 강제 개항으로 우리나라는 경공업 위주의 공업화 단계를

거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 교과서포럼의 주장이다.

  하지만 교과서포럼의 역사관은 구성과 논리성이 뛰어나지만, 아주 단편적이며 사회적 담론이 빠져있는 일방적 주장이라는 점이다.

그에 대한 반증으로, 조선후기에 우리나라는 공업화 단계를 거치지 못했지만, 상업을 통한 자본축적이 가능했다.

조선은 이 시기 세계를 재편한 중국과 신흥세력으로서 일본과의 사이에서 중개무역과 상업 활동을 통해 상업자본을 축적하기 시작했다.

조선후기에 우리나라는 공업화를 이룩하지 못했지만 이 시기 주요 산업이었던 농업의 자본재인 토지축적을 통해 상업자본이 산업자본화 되었던 것이다.

내부적으로 기술진보가 없었고, 외연적으로 해외기술이전을 겪어 보지 못
했던 조선 후기에도 자본이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역사는 바라보는 사람과 관점에 의해 서로 달라질 수도 있다.

몇 백년전에 사용되었던 물건의 용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도 이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고 지나간 시공을 모두 포괄하며, 일반적인 역사적 사실이라는 주장은 지적인 오만을 넘어선 광기이다.

지난 역사에서는 일반적이고도 포괄적인 정의는 절대 불가능하다.

지난 역사의 단면을 학문적 영역에서 주장하는 한 역사학자의 생각은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사회적 통념으로 주장하는 역사단체의 주장은 사회를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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