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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 63주년과 건국 60주년

  지난 8월 15일 우리 국민은 난생 처음 들어 보는 기념식 행사에 적지 않게 당황했으리라.

공공기관과 언론 사이트를 뒤덮고 있던 건국 60주년이란 단어는 낯설고 생뚱맞다.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매년 8월 15일을 광복절이라 하고 국경일로 지정한 이래

우리는 으레 8월 15일을 광복 몇 주년 하는 식으로 기억해 왔다.

단순한 관습법이 아니라 법률로 제정된 엄연한 성문법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와 몇몇 극우 보수 단체들이 '건국절'이란 용어를 전면에 내걸고 나섰다. 엄연한 법 위반이다.

  비록 여론의 반발을 감지한 이명박 대통령이 뒤늦게 광복절을 부정한 것이 아님을 밝혔지만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런 의도적인 용어의 사용은 근대화 시기 자주 사용되던 이데올로기화 방식의 하나이다.

'국민'과 '인민'이란 단어의 차이만큼 '광복절'과 '건국절'은 그 함의와 성격은 다르다.

  우선 '광복절'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이겨내고 우리 민족의 주권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와 유엔이 인정한

독립 정부의 수립을 경축하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이런 관점은 민족주의에 기인한다. 즉 고조선부터 내려온 우리 민족의 영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반면 '건국절'은 1948년 5월10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강조한다.

즉 그 이전의 영속성보다는 북한 정권의 불인정과 서구적 자유주의로 편입된 날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그리고 이런 차이는 지난 15일 이명박 대통령의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주년 중앙경축식' 축사에서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라는 발언에서

잘 드러난다.

이 발언은 뉴라이트 진영의‘건국 신화 만들기’에 기초한 역사관과 일맥상통한다.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은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이어지는 단계론적 사고에 기초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이승만을‘건국의 영웅’으로, 박정희를‘산업화의 영웅’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이어 이명박을‘선진화의 영웅’으로 만들어 자신들의 역사관을 고스란히 계승시킬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8월 15일을 ‘건국절’로 규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은 역사를 자신들의 일방적인 잣대로 재단하여 역사를

독점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우익들의 역사 투쟁이고 정치 투쟁이다.

그 속에 친일 청산, 독재 청산이라는 세계사적, 역사적 과제는 들어설 틈이 없다.

독재자에 의한 억압과 착취, 배제와 탄압의 역사는 망각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1948년의 정부수립은 억압과 배제를 제도화한 반쪽짜리 정부의 출발이었다.

반공, 친일파, 독재등 오늘날 한국사회가 완전히 극복해야 할 모든 것들이 내재된 위태로운 출발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건국을 기념한다는 의미는 엄밀히 말해 1945년 8월 15일 민족의 해방이라는 의미의 파생상품인

셈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가 건국절의 의미를 강조하는 행위는 근대적 독재 체제의 국민 계몽 방식의 하나라 볼 수

있다.

근대적 민족국가의 국민 계몽 방식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데올로기적 혹은 담론적 계몽이라고 할 때

특정 용어의 의도적 사용과 유포는 그 중에서도 간접적이면서 장기적 영향을 미친다.

광복절을 강조하든 건국절을 강조하든 민족주의 역사관의 주입과 강화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동질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학술적 의미의 역사와 민주주의 주권 국가적 관점에서의 역사는 엄연히 다르다.

민주주의적 관점에서의 역사는 권력집단이나 특정 단체에 의해서 독점될 수 없다.

국민 다수가 동의해 온 관점을 따르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역사이다.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 문제와 분단의 비극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은 눈감은 채 스스로의 독단적인 논리만

을 따르려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관이 안타까운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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