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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 353

‘미래를 위한 그림’ – 힐마 아프 클린트2

2. 미래를 위한 그림

 

힐마 아프 클린트는 1862년 스웨덴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스톡홀름 왕립 미술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맹인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죽음 등 시련을 겪으면서 미신, 우주, 심령, 종교 등 영적인 것에 심취하기 시작했다.

영혼을 보고 대화하고 이해 못할 세계를 작품으로 남겼다고 해서 그녀의 그림을 두고 ‘미래를 위한 그림’이라고 평가한다.

LEFT- HILMA AF KLINT, TREE OF KNOWLEDGE, NO. 1, 1913–1915. RIGHT- HILMA AF KLINT, TREE OF KNOWLEDGE, NO. 5, 1913–1915.jpg

LEFT: HILMA AF KLINT, TREE OF KNOWLEDGE, NO. 1, 1913–1915. RIGHT: HILMA AF KLINT, TREE OF 

KNOWLEDGE, NO. 5, 1913–1915. © DAVID ZWIRNER

 

그녀가 그림을 그렸을 당시 유럽은 르누아르(1841-1919), 모네(1840-1926) 등 인상파 화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Claude Monet,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jpg

Claude Monet, Woman with a Parasol - Madame Monet and Her Son, 1875

 

그러니까, 화가들이 꽃이나 풍경, 아름다운 소녀 등을 그릴 때, 힐마는의 유전자 모양이나 피라미드, 원 같은 추상적 상징과 또 알 수 없는 수학적 기호를 그렸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6), 1907.jpg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6), 1907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2019년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한 다큐먼터리 ‘Beyond The Visible’ 이 공개됐다. 그녀는 여성은 결혼해서 가정주부로서 또 아이들의 엄마로서 살던 시기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예술적 여정을 떠났다.

다큐는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라고 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추상화의 선구자’라는 것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그녀의 방대한 그림과 글을 추적해 보여주면서 재구성함으로써 작가의 작품을 통한 존재에 대한 사유를 조명했다.

그녀는 20살이 되던 해, 스톡홀름에 있는 로열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당시 스웨덴은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보다 먼저 여학생의 미술대학 입학을 허용했던 나라였다. 5년간의 학업을 마친 후 1887년 졸업 하고 작업실을 열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다른 화가들처럼 풍경화가와 초상화가로 활동했고 꽤 인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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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lma af Klint, Self Portrait, c. 1880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Hilma af Klint, Untitled, 1890s.jpg

Hilma af Klint, Untitled, 1890s © Hilma af Klint Foundation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이렇게 사실주의 회화에 뛰어났던 그녀가 추상의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 미대를 입학하기 전인 그녀 나이18세부터였다. 열 살짜리 여동생 에르미나의 죽음을 가까이서 목격한 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이다.

개신교도였던 그녀는 동생의 죽음 이후 신비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되면서 신지학에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1896년부터는 로열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전통적인 그림 형식을 완전히 버렸다. 이때부터 그녀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탐구하며 이를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그녀는 신의 계시 같은 음성을 들었다고 말했다. “너의 새로운 철학으로 스스로 새 왕국을 세워라, 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이것이 그저 환청이었는지 아니면 그녀가 마음 속으로 너무나도 간절히 바랬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어 버린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때부터 클린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암법과 원근법 등 서양 미술의 전통과 규범을 무시한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추상화였다. 

몇 번의 습작 끝에 1906년 11월부터 4개월간 생애 첫 추상화 연작을 제작했다. 이것이 바로 ‘원시적 혼돈’이란 제목을 붙인 작은 캔버스 그림이다.

 

Hilma af Klint,원시적 혼돈, No.16, 1906-7.jpg

Hilma af Klint, 원시적 혼돈, No.16, 1906-7 (사진출처: Wikimedia Commons)

 

중앙을 중심으로 파란색이 몰려들어가고, 나선형의 선들이 오른쪽 밑에서 왼쪽 위로 향해 뻗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노란색의 나선의 중심으로 보이는 둥근 곡선의 바깥부분은 파란색의 중심과 교차한다. 마치 블랙홀에 에너지가 빨려들어가고 흘러나가는 듯 하다.

이후1908년 클린트는 ‘10개의 가장 큰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시리즈 작품을 제작한다. 이것은 유아기부터 노년기까지의 삶의 단계를 표현한 작품으로 화면마다 곡선과 상징, 기하학적 기호나 문자 등이 담겨있다.

그녀가 창조해낸 미술 어휘들은 정확한 해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림 속 나선형은 진화를, U자는 영적 세계를, 그리고 W자는 물질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겹친 동그라미는 단결을 상징하고 노랑과 빨강은 즐거움과 남성성, 그리고 파랑과 라일락색은 섬세함과 여성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 7, Adulthood, Group IV, 1907.jpg

Hilma af Klint, The Ten Largest, No. 7, Adulthood, Group IV, 1907 © The Guggenheim Museum and Foundation

 

이를 토대로 의미를 해석해 보면, 성인 단계를 표현한 이 7번 그림은 칼 융의 아니마(Amina), 즉 남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여성적 심상과, 여성의 무의식의 한 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남성적 심상인 아니무스(Animus)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성성을 상징하는 거대한 라일락색 화면 안에 남성성을 상징하는 노란 꽃잎 같은 형상이 가운데 배치돼 있고, 그 주변에는 활기찬 다양한 생명체들이 즐거운 노래와 춤으로 두 성의 결합을 축복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것은 그녀의 나이 45세가 되던 해에 그린 작품이다. 10개의 그림 중 7번째니까, 인간의 나이로는 약 50대 쯤이 아닐까 싶다. 젊지도 늙지도 않은 50대의 나이. 논어에는 '쉰 살'을 천명을 아는 나이, 지천명(知天命)이라고 일컫는다.

힐마 아프 클린트는 자신의 50대를 어떻게 보냈으며 그 시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을까? 이 작품으로 비추어보건대, 그녀는 삶의 의미를 깨달아가면서 그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었을 것같다.

 

3. ‘다섯(the Five)’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choijihye10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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