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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비행기 안에서 글을 써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보름이 넘도록 한국에서 휴가를 보낸 뒤에 영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언제나 그렇듯 한국에 도착한 첫날에는 2주도 더 남은 휴가가 마냥 긴 것 같건만,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고 이렇게 휴가를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갈 때는 늘 아쉽다. 그 음식을 먹었어야 했는데, 그 사람을 만났어야 했는데, 그 장소를 다녀왔어야 했는데 하는 그런 아쉬움들... 게다가 이번 휴가 중에는 어이 없이 장염에 걸려서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못 먹고 못 했다. 영국에서는 생전 감기약이나 소화제 한 알 안 먹으면서 건강하게 지냈는데, 하필 한국에서 아프다니. 하지만, 언제나 그 무엇보다도 가장 아쉬운 것은 부모님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싶은 아쉬움이다. 사실, 이번 휴가도 그렇고 매번 한국을 다녀갈 때면 당연히 부모님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도 늘 이렇게 영국으로 돌아올 때는 부모님과 보낸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던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이런 아쉬움은 내가 한국에서 살았더라도, 그 어떤 형태로든 평생 이어질 것이다. 제 아무리 부모님께 잘해드린다고 한들,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한들,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나면 우리는 그 아쉬움의 눈물을 폭포수처럼 쏟아낼 테니까. 한 편으로는 이번 한국 방문 중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런 저런 것들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일단, 한국과의, 아니 더 정확히는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과의 취향, 가치관과의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것 같다. 한국은 모든 것들이 너무 빨리 변하고, 또 유행에 너무 민감하다. 나처럼 지난 것들에 대한 애착이 강한 사람에게는 한국의 속도와 변화가 이제 버겁게까지 느껴진다. 아무리 유행도 좋지만, 나처럼 그냥 예전 것 그대로를 여전히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인데, 한국은 조금이라도 유행에서 뒤쳐지면 그야말로 바로 OUT이다. 옷을 봐도, 신발을 봐도 자꾸만 새로운 디자인이 나오고, 그러다 보면 예전 디자인은 더 이상 안 나온다. 하다못해 몇 달 사이에도 결국 비슷해 보이는 제품이건만 이월상품이라는 명목으로 그 가치가 떨어진다.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10년 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여전히 즐겨 부르는 나는 어쩌면 영국으로 떠나오기 전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어떤 친구들은 지난 시절 우리가 즐겨 부르던 노래들을 더 이상 부르지 않고, 또 그런 노래들을 다시 불러도 별다른 감흥이 없어 보였다. 우리들의 대화도 이제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고, 어떻게 하면 더 출세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가족들을 좀 더 잘 부양할 수 있을까에 가장 많이 할애된다. 자신의 한계와 세상의 벽을 뼈 속 깊숙이 깨닫는 30대 중반을 살아가면서 아마도 우리들은 모두가 다 진짜로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그 와중에 나는 혼자서 어떻게든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 또 철이 들지 않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면, 철이 들면 결국 그 때부터는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치며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게 싫어서, 혹은 두려워서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는 지도 모른다. 또, 한 편으로 느낀 것은 이제 나는 영국에서의 삶에 올인하여 그 길로 너무 많이 와 버리지는 않았는지 싶은 일종의 두려움이다. 즉, 이제는 내가 만의 하나라도 다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살게 될 경우, 과연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지, 더 솔직히는 내가 과연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두렵다. 한국은 모든 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이루어진다. 뭐 하나가 조금이라도 잘 된다 싶으면 금새 수 많은 경쟁자들이 뛰어들어 피 터지는 경쟁이 발생하고, 곧 승자와 패자가 갈린다. 그런데, 영국에서 지낸 지난 7년 동안 나는 ‘경쟁’이라는 것을 거의 잊고 살았다. 그냥 나마의 세계에서 나만의 속도로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다시 한국에서 살게 된다면 과연 나는 그 치열한 경쟁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 더구나 나의 경쟁상대가 될 이들보다 나는 7년이라는 긴 세월이 뒤쳐진 셈인데, 그 격차를 과연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고민이다. 남들보다 앞질러 가도 안심할 수 없는 게 한국의 경쟁사회인데, 나는 오히려 뒤로 한참이나 처져있을 테니. 아직은 현실에서 발생한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게 ‘만약 내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산다면?’이라는 가정을 해 보니 마음이 너무나 심란해졌다. 한국에서 지낸 시간들, 벌써 추억이 되어버린 그 시간들을 한 순간, 한 순간 떠올리다 보니, 또 이런 저런 상념들이 스쳐가다 보니 어느덧 비행기는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을 지나버렸고, 이제 다섯 시간 뒤에는 나의 일상이 기다리는 영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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