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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한 대한민국 경찰 개혁


국가는 본질적으로 영토, 국민과 같은 물리적 요소 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결합된 복합체다. 

그러한 결합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구성원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을 수 있느냐이다. 군대와 경찰, 행정조직의 존재 이유는 모두 이런 기초적인 사실에서 파생된다. 그러한 기초적인 합의가 깨졌을 때 국가는 그 자체로 존재 이유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수원 20대 여성 납치·살해사건에 대한 경찰의 허술한 대응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과연 정당한 권한을 부여받고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게 한다. 이런 경찰을 믿고 시민들이 어떻게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지 정말로 걱정이다. 피해자 A(28) 씨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기지를 발휘해 112신고센터에 전화를 했으나 경찰의 부실한 조치로 물거품이 됐다. 

무려 7분 36초 동안 통화가 이뤄졌고, 피해자는 놀라울 정도의 침착함으로 구체적 범행 장소까지 알려 줬으나 오히려 경찰이 허둥대며 상황 판단을 잘못하는 바람에 끔찍한 살인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경기경찰청 감찰 결과 이번 사건은 112센터의 상황접수부터 근본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피해자는 당일 오후 10시 50분 신고 전화에서 "지동초등학교 지나 못골놀이터 전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있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112센터 직원들은 장소에 집중하지 않고 "누가 그러는 거냐"는 등 엉뚱한 질문만 했다. 

범행 장소가 '집 안'임을 누락해 상황을 전달하는 바람에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은 엉뚱한 곳을 탐문하거나 차 안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경찰들이 집집마다 탐문만 했어도 살인만은 막을 수도 있었을 터이다. 이러한 상황오판과 은폐축소로 경찰조직의 두 수장이 사퇴할 지경에 이르렀다. 

조현오 경찰청장 뿐만 아니라,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도 모두 사퇴의사를 밝혔다. 경찰의 늑장 대처와 은폐 의혹에 비난 여론이 들끓자 결국 전격 퇴진을 택한 것이다. 수원 사건은 민생치안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신고·지휘·출동·수색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었다. 

촌각을 다투는 절박한 순간에 112센터 직원은 한심한 질문을 반복하고, 출동 경찰관은 엉뚱한 곳에서 졸고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오는 판이다. 사태를 축소·은폐·조작하는 고질적 병리현상도 재연됐다. 이런 경찰 조직을 위해 세금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면할 길 없는 사건 관계자들은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나사 풀린 조직 기강을 죄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경찰 수장의 퇴진이나 관련자 문책만으로 끝낼 사안이 아니라는 사실도 분명하다. 

본질은 바로 대한민국의 치안시스템 마비다. 국민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경찰 본연의 기능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먹통 치안’의 정상 복원은 한시도 늦출 수 없는 과제다. 신고 접수에서 출동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대대적 수술이 가해져야 한다. 

수원 사건의 신고체계가 작동 불능에 빠진 것은 무엇보다 전문성 부족 탓이 크다. 전국 112센터에는 변변한 대응 매뉴얼이 없고, 전화 응대 요령조차 숙지하지 못한 인력이 수두룩하다. 이번 사건 담당자 역시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8주 동안 500여개 시나리오별로 교육을 이수하는 미국 뉴욕의 911신고센터와는 너무도 대비되는 실상이다.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국가와 국민을 위한 경찰이 되겠다’는 각오가 실려 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경찰 스스로 뼈를 깎는 각오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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