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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복음의 능력이다. 골3:14-24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될 때 ‘내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인가?’ 심할 경우...
by eknews / on Apr 17, 2012 22:55
사랑은 복음의 능력이다. 골3:14-24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될 때 ‘내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인가?’ 심할 경우에는 ‘나는 구원받은 것 맞는?’라는 생각까지 하는 사람이 있다. 복음은 믿을 때 남녀노유 모든 사람에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삶을 위해서 늘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여 복음을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을 통해 복음을 믿는 자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게 하는 기준을 배울 수 있다. 복음을 믿을 때 어떤 열매가 나타나는가? 첫째 주 안에서 변화된 자화상을 가지게 된다. 죄성을 지니고 태어나는 사람은 부정적인 경험이나 듣게 되는 말을 통해 어둡고 부정적인 자화상을 지닌 채 살아간다. 그리고 어두운 자화상은 어두운 삶을 만들어낸다. 자기 인식이 거기에 맞는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복음을 믿을 때 어둡고 부정적인 자화상은 밝고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된다. 엡5:8에 이 사실을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기록한다. 복음을 믿어 자기 인식이 어두움에서 빛으로 변화된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복음을 믿는다면서 여전히 어두운 자화상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자다. 너는 예수님 짜리다’라는 소리를 들어도 믿지 않기 때문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복음을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 변화되었다고 선언하신다. 변화된 자기 인식을 가지라. 복음의 능력이 변화된 삶을 만들 것이다. 둘째 다른 사람과 화목을 이루며 산다. 아무리 능력 있어도 갈등, 분열을 일으키는 것은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다툼은 마귀에서 난 것이며 화평과 하나됨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다.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말로 하나를 만드는가 아니면 나뉘게 하는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하나됨을 막는다면 복음을 믿는 자가 아니기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다. 복음을 믿으면 예수님이 주신 평강이 마음에 임하고 서로 용서함으로 하나되기를 힘쓰게 된다. 예수님께서 죄로 사람과 하나님간에 원수 된 것을 십자가를 통해 하나로 만드신 후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직책을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되기를 힘쓰는 곳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화목하여 하나된 가정에 복음은 천국을 경험케 한다. 화목케 된 교회가 부흥한다. 화목할 때 복음을 건강하고 형통한 열매를 맺게 나타난다. 셋째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교회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결론 난다. 일을 많이 해도 사랑으로 끝나지 않으면 실패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말도 사랑이 빠지면 비판이 되고 사랑 없는 비판은 좋은 말로 공동체를 무너뜨린다. 사랑이 빠지면 이기심과 교만을 깔고 있는 자기 고집이 된다. 교회는 사랑으로 움직이는 공동체다 제도 힘 다른 것으로 사람을 움직이려하면 교회됨을 잃어버린다. 사랑은 온전하게 메는 띠다. 죄는 아무리 좋아 보이고 순간적으로 의기투합하더라도 얼마 못 가서 배신하고, 상처 주고 헤어진다. 그러나 사랑은 공통체를 엮는 네트워크이다. 복음을 믿으면 사랑을 더하게 되고 사랑을 더하는 곳에 복음의 능력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만든다. 14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메는 띠니라.” 결론 당신은 복음에 대해서 아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복음을 믿고 사는 사람인가? 분별하여 복음을 믿는 자가 되라. 당신의 자화상은 복음을 통해 변화되었는가? 당신은 화목을 추구하며 살고 있는가? 당신은 사랑의 벨트를 차고 삶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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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저널-김용복 목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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