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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섯 살 적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는 모래내 시장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다. 나는 이 모래내 시장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성산아파트에 살았고, 또 초등학교 시절 이곳에서 통학 버스를 타느라 어린 시절 이 모래내 시장을 수도 없이 지나다녔다. 지금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다양한 노점상들과 7,80년대 정취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먹자골목과 소규모 식당들, 옷가게들, 그리고 재래시장 골목... 어린 시절 추석이나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 곳에 가서 새 옷을 사주시기도 했고,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이런 저런 장을 보셨다. 커다란 대야에서 펄떡거리는 미꾸라지부터 즉석에서 반죽해서 튀겨주는 시장표 오뎅까지, 좁디 좁은 재래시장은 수 많은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장터 음식 냄새부터 생선 비린내까지 섞인 그야말로 시장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경기도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온 뒤에도 서울을 나가게 되면 늘 이 모래내 시장을 거쳐야 했고,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모래내 시장 골목을 다시 방문해본 적이 없었다. 어느덧 나는 깔끔하고 넓직한 백화점과 대형마트에 익숙해져 갔고, 성인이 되어서도 일산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을 나갈 때마다 여전히 그 모래내 시장을 지나쳐갔지만 이제 그 곳은 그저 잊혀진 장소일 뿐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살면서 문득 이 모래내 시장이 생각나고, 또 그리워져 갔다. 지금도 종종 꿈에 나오는 모래내 시장과 그 근처 동네, 그 곳에는 지난 날의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들이 잠들어 있었다. 마침 모래내 시장과 인근 지역이 재개발로 조금씩 사라져 간다는 얘기를 듣고서, 그 모습이 사라지기 전에 어떻게든 기록해놓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급기야는 지난 번 한국 휴가 중 카메라를 들고서 모래내 시장을 방문한 것이다. 시장 초입은 지난 날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었다.
시장 중간 즈음에 있었던 개고기를 판다는 안내문도 그대로였다. 당시에는 실제로 개를 토막내서 그대로 올려놓고 팔았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 모습을 보기가 무서워서 일부러 다른 곳을 쳐다보며 그 곳을 지나치곤 했다. 이제는 그렇게 내놓고 팔지는 않는 듯 토막난 개고기를 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냥 걸어들어간 시장 골목은 어느새 재개발로 인해 끊겨있었다.
끊겨진 시장 뒷편에는 포크레인이 재개발 작업을 진행 중이고, 어느새 들어선 고층 아파트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아마도 세월이 좀 더 흐르고 나면 그나마 남아있는 시장 역시 저렇게 고층 아파트들로 변해가겠지...
시장 옆 주택가 역시 재개발 구역으로 묶여서 흉물스런 모습으로 파괴되어 있었다.
아마도 어느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옛 집’이었을 그 주택 건물들을 보며 까닭모를 서운함이 든 것은 왜일까? 재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사라져가는 지난 시절의 모습들, 그 재개발은 진정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일까? 시장 골목을 빠져나오니 다양한 노점상들이 줄지어 있는 대로변에 반가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정말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 카세트 테잎을 파는 리어카 노점상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노래가 한 번 히트를 치면 그 리어카 카세트 테잎 노점상에서 히트곡을 줄기차게 틀어댔고, 그래서 한 때는 ‘길보드 차트(미국의 빌보드 차트를 빗대어서)’라는 말도 있었건만. 이제는 카세트 테잎을 틀 수 있는 플레이어 자체를 발견하기 어려워진 세상이 되어 버렸다. 그 카세트 테잎 리어카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모래내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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