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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다. 과연 이 처음 보는 먹잇감이 어떤 패턴을 보일까 하는 호기심에 여유롭게 쳐다보는 영화 쥬라기공원의 ‘인간’앞에 선 육식 공룡처럼 이 사람 형태에 여성 옷차림의 생명체는 미동 없이 가만히 선 채 내 등 뒤에서 날 응시하고 있던 것이다. 

뒤돌아 그를 발견한 순간 목도리 도마뱀처럼 왠지 그의 목 뒤에서 “목도리”를 우산처럼 펼치며 날 위협할 것만 같다. 짧은 순간이었다. 다행이 난 놀란 표정이나 표현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얼굴의 근육 하나 수축하지 않고 전혀 놀라지 않은 척하며 굵고 안정된 목소리로 물었다. “안녕, 여기서 뭐하니?” 무언가 대답하는데 이탈리아어였기 때문에 알아들을 수 없다. 

말을 하니 괴물이 아니라 분명 사람이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해괴망측하다. 옷차림과 마찬가지로 목소리는 여성의 목소리 같지만 또렷하지 않은 어딘가 어색한 소리다. 게다가 머리 위의 가로등에 생긴 그림자진 얼굴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괴이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 같다.

이런 오싹한 분위기 속에서 그는 나에게 입 모양과 손 짓으로 무언가 물어본다. 아…… 아까 밖에 서 있던 매춘부로구나. 내가 매음을 원하는 줄 알았던 것이었다. “노노노!, 나 자전거로 여행 중이야. 텐트 칠 곳을 찾고 있어.” “여기다가?” 여기다가 텐트 친다는 소리에 그는 다소 놀라는 듯 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간 후에 다시 주변을 조심히 살펴보니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버려진 휴지 조각들, 물티슈 포장지, 콘돔 포장호일에 심지어 콘돔까지. 아마도 이 작고 적당히 밀폐된 공간은 그들의 적합한 작업장소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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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빈’이라고 적힌 줄 알고 봤더니 거꾸로 돌려보면 ‘Patate’이다. 


이 소름 돋는 곳(좌표 44.311167,9.335415)을 재빨리 빠져 나왔다. 약간 거리를 두고 나무 그늘 아래서 그들 세 명의 사진을 찍는 순간 아까 내 등뒤에 와 있던 그녀가 남자의 목소리로 소리 내어 웃었다. 

이건 무슨 또 새로운 괴상한 순간인가. 본디 남자란 말인가. 목소리와 얼굴이 왜 이상했는지 답이 나오는 순간이지만 찜찜한 것은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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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입구에 있던 또 다른 매춘부

이 괴기한 경험을 뒤로한 채 다시 텐트 칠 곳을 찾으러 동쪽으로 더 나아갔다. 가는 길에 또 매춘부 세 명을 발견했다. 이들은 담으로 둘러 쌓인 주차장 입구에 모여 있었다. 곧 결국 널찍한 공원과 매춘부 없는 주차장을 발견했다. 

주차장 구석 커다란 트럭 차량 옆(좌표 44.303384,9.352984)에 텐트를 숨겨 쳐야겠다. 텐트를 치고 침낭 안으로 몸을 숨기기 전까지 고개를 돌리면 다시 그 괴물 같은 존재가 나타날까 계속 오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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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옆 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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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주차장의 아침 식사

모험 19일 3월 10일 토요일 아침, 빵, 햄, 치즈, 우유로 간단히 아침을 챙겨먹고 가까운 세스트리 레반테(Sestri Levante)에 왔다. 오랜만에 문명을 접할 겸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가장 저렴한 1유로짜리 커피 한 잔 시키는 것을 핑계로 노트북, 핸드폰,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하며 인터넷을 즐겼다. 이메일에 답장하고 새로운 이메일 보내고,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의 근황을 살피고 내 근황도 알렸다.

아침에 들어온 카페에서 어하다 보니 금세 오후가 되었고 오후의 새로운 교대직원 두 명도 새로 왔다. 이들은 커플로서 남자는 루카(Luca) 여자는 엘리사(Elisa)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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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가 압생트와 설탕에 불을 붙였다.

한참을 인터넷 문명 세계에서 헤매던 도중 갑자기 루카가 술 한잔 마시자며 부른다. 순간 ‘너 오래 있었으니 뭐 하나 사 마셔야 하지 않겠냐’인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압생트를 대접하겠다는 것이다. 

알콜 도수가 70%로 악마의 술로도 불린다는 이 말 많고 사건 많은 술을 처음 마셔보는 순간이다. 라이터에 불 붇는 것도 순식간이다. 우리는 압생트를 시작으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루카는 농담하길 좋아하는 참으로 재밌는 녀석이다. 술과 책을 즐기는 루카에게 ‘북카페’는 그야말로 그에게 제격인 일터이다. 한편으론 여자친구와 티격태격 장난치는 이 카페는 그들의 일자리가 아닌 신혼집 같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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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아랫줄에 엘리사와 루카가 있다.

어느덧 밤이 되고 루카와 엘리사의 다른 친구들이 몰려왔다. 의대에서 마지막 학기 공부 중인 마누엘라, 그의 애인 빅토르, 경제학을 공부하는 아조, 한때 잘나가는 밴드 리드 키타리스트였던 마테오, 런던에서 일하는 벨린. 우린 금새 친해져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했다. 

게다가 이들은 한국의 정세와 근대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내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과 더불어 그 자리에서 위키피디아에서 간단히 공부 후 더 알려주었다. 덕분에 나도 우리나라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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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트리 레반테 기차역 근처 주차장

새벽 3시가 되고 우리는 같이 가게를 정리하고 문을 닫았다. 루카는 다음날 아침 근무자들이 나에게 아침 식사 제공할 것을 약속했다. 이들은 내가 기차역 안에서 잠을 잘 수 있을 거라며 기차역까지 안내해주었지만 기차역 근처에서 텐트치기 더 좋은 장소(좌표 44.274586,9.400636)를 발견했다. 

이제 텐트칠 장소 찾는데 보다 능숙해진 것 같다. 그런데 피곤한 몸에 압생트도 몇 잔 마셨겠다 시간도 많이 늦었겠다, 과연 내일 아침을 얻어 먹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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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가 챙겨준 한보따리 크로와상

이튿날 결국 정오가 다 되어 일어났다. 피곤한 몸을 힘겹사리 움직여 짐을 정리하고 다시 카페로 왔다. 카페에 도착 후 얼마 안 있어 결국 오후에 근무하는 루카와 엘리사도 왔고 난 아침 대신 점심을 얻어 먹었다.

이날도 한가로이 카페에서 루카가 선물(?)로 준 크로와상 한 보따리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결국 하루 일과는 압상트로 다시 끝났고 자전거 여행을 출발하고 처음으로 같은 장소에 한 번 더 야영하게 됐다.
그 다음날 루카와 인사 나누러 —결국 오후 나절에— 다시 카페로 갔다. 루카는 떠나는 내게 시 한편 적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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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삶이고 삶은 소설이다. 너의 것은 소설이며 여행과 우리는 추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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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토로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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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트리 레반테에서 구입한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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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페페론치니. 손으로 부셔 굵은 고춧가루처럼 만들어 쓰면 된다.

마지막 압상트로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하며 친퀘테레로 향했다. 절벽에 둘러싸인 마을답게 가는 길도 참 험난하다.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 길 40여km를 달려 친퀘테레 바로 전 마을인 레반토(Levanto)에 도착했다. 때는 이미 밤이다. 

레반토 기차역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친 후 교회 뒷마당 구석(좌표 44.176048,9.619898)에 텐트 칠 곳을 찾았다. 몸은 피곤하지만 세스트리 레반테에서 구입한 향신료 오레가노와 우리나라 빨간 고추보다 맵고 손톱만한 마른 빨간 페페론치니, 그리고 가루로 된 파르미쟈노 치즈가 오늘 밤 저녁을 더욱 맛있게 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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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가로등이 없어 전혀 안 보이는 데다가 도로 옆은 낭떠러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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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에 오리온자리, 오리온자리의 베텔게우스와 리겔, 가운데 황소자리와 황소자리의 가장 밝은 별 알데바란, 그 오른쪽에 플레이아데스 성단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에서 가장 밝게 보이는 별이 금성이고 바로 그 왼쪽에 두 번째로 밝은 별이 목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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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토의 아침. 알코올중독자가 내게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한다.

모험 22일, 잠에서 깨어나자 마자 습관적으로 뻐근했던 목을 비틀었다. 그런데 지난 밤, 너무 피곤한 나머지 머리 아래 베개 거리를 두는 둥 마는 둥 몸과 목을 제대로 뉘지도 않은 채 순식간에 잠이 든 나머지 나의 목은 그 비틀기를 감당 할 수가 없었다.

평소 콧등 아래로 흘러내리는 안경으로 인해 보다 더 고개를 치켜 들었기 때문에 목은 이미 평소부터 뻣뻣해 있었다. 그런 목을 제대로 두지 않고 죽은 듯이 잠이 들었으니 내 목이 불쌍하다. 고통 때문에 누어있는 상태에서 고개를 들 수도 없다. 또한 좌우로 고개 돌리기도 힘들다.

이렇게 목을 삐끗한 일은 전에도 있었고 몇 주 지나면 다시 괜찮아 질 것을 알지만 앞으로의 여행도 걱정이 되고 이탈리아 병원도 한 번 체험할 겸 근처 병원을 찾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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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달 아래 텐트는 엄청난 비닐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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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토에 도착한 전날, 피곤한 나머지 밥을 하다 또 잠이 들었고 이번엔 심하게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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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하나, 안내 표시 하나 없는 병원

도로 교통 표지판을 보고 병원을 찾아 갔지만 막상 병원에는 병원이라는 표시가 전혀 없다. 간판도 없다. 정문도 못 찾아서 물어서 찾아 들어갔다. 

주사 한 대 맞고 십여 분 넘게 기다린 후 의사와 이것 저것 증상에 대하 얘기한 후 들은 최종 결론은 의외로 짧았다. “당신 삶을 바꿔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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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의 종이가 처방전이다. 약국에 가져가 보여주면 약을 받을 수 있으며 보관하고 있다가 두 번 더 약을 받을 수 있다.

진료비는 25유로이다. 거의 오후 1시가 다 되어 있었는데 1시부터 3시까지는 진료비를 낼 수가 없단다. 그래서 계산하는 사무실로 서둘러 가지 않으면 3시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어보니 다른 도시의 병원에 가서도 지불할 수 있다고 하는데 만약 끝까지 지불하지 않고 이탈리아를 떠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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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화장실에서 머리를 조금 깎았다.


유로저널 김동령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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