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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30 16:17
지난 여름날로 떠나는 여행-1
조회 수 2407 추천 수 0 댓글 0
원래 영국 여름은 한국 여름과는 달리 더운 날이 별로 없는데, 지난 한 주 동안은 마치 한국의 여름처럼 30도를 육박하는 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영국은 다행히 한국처럼 습하지는 않아서 끈적거리는 더위는 아니지만, 간만에 정말 후덥지근한 한 주였다. 나는 원래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겨울에 태어나서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나는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좋고, 그래서 여름보다는 겨울을 훨씬 좋아한다. 비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그나마 여름이 좋다면 장마철 때문인데, 수해로 피해를 입는 분들도 계시니 차마 비 때문에 여름을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올해 들어서 가장 더운 여름날을 보냈던 지난 한 주는 공교롭게도 아마도 내가 지금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회사에 입사한 이래로 가장 바쁘게 일했던 한 주였다. 몇 시간씩 화장실 다녀오기도 힘들 만큼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전화와 이메일 홍수 속에서 퇴근할 즈음이면 넋이 나가서 멍해질 지경이었다. 물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렇게 바쁘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 만으로도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일에 파묻혀서 정신 없는 한 주를 보내고 나서 돌아보니, 지난 한 주 동안의 특별했던 순간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다. 크게 기뻤거나, 크게 슬펐거나, 아니면 인상적이었던 일, 혹은 감동을 받았거나, 기억에 남을만한 어떤 일도 없이, 한 마디로 그저 일하는 기계처럼 무미건조하게 한 주를 살았던 것 같다. 그러면서 문득 지금이 여름이라는 사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수 많은 여름날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한 번의 여름이 지날 때마다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는 소중한 추억들이 수도 없이 만들어지곤 했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이 시작되어 탐구생활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너무나 신나고 흥분이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여름방학을 가장 즐겁게 만들어 주었던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여름방학마다 개봉되는 재미있는 영화들을 보러 극장에 가는 것과, 또 하나는 사촌형, 사촌동생과 며칠씩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 집은 여름이라고 특별히 피서를 가거나 바닷가에 놀러가거나 하지 않았다. 대신 영화를 좋아하셨던 어머니께서는 나를 데리고 극장 나들이를 종종 하셨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이 아직도 기억난다. 종로2가 허리우드 극장에서 봤던 ‘스타워즈 3편’, 지금은 없어진 종로4가 세운상가에 붙어있던 아세아 극장에서 봤던 말하는 원숭이가 나오는 ‘바나나 대소동’ 같은 영화들. 그러고 보니 당시 여름방학마다 시리즈로 개봉되었던 ‘호소자’ 시리즈도 생각난다. 쿵후를 배운 내 또래 아이들이 어른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의 홍콩영화였는데, 당시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 금성극장에서 영화를 보고서 극장 근처에 있는 아버지의 단골집 리빠똥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음식점에서 부대찌개를 먹곤 했다. 당시 이 ‘호소자’ 시리즈 말고도 여름방학마다 어린이들을 열광시켰던 영화 시리즈가 있었으니, 바로 하지만, 부모님은 이 ‘우뢰매’ 시리즈는 극장에서 보여주시질 않아서 참 아쉬웠다. 어쨌든, 그렇게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 날 나는 늘 반 친구들에게 여름방학 동안에 봤던 영화 얘기를 꺼내면서 은근한 자랑을 했던 것 같다. 한편,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혼자만의 즐거움을 터득하지 못했던 시절이라, 형제 하나 없이 외롭게 자랐던 나로서는 방학 때마다 큰 이모네 사촌형들, 그리고 외삼촌네 사촌동생과 며칠씩 같이 자면서 노는 게 너무나도 큰 즐거움이었다. 당시 큰 이모네 집은 정릉 계곡 아래 있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때 큰 이모네 집에서 며칠씩 자면서 지낼 때면 정릉계곡이나 정릉계곡 중간에 있는 스타풀장(당시 꽤 유명한 수영장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에 놀러가서 물놀이를 하곤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물놀이 하니까 생각이 난다. 바로 수영강습! 그냥 물놀이를 하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나는 당시 물을 무서워하기도 했고, 그래서 제대로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부모님은 어떻게 해서든 나에게 수영을 제대로 가르치셔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의 여름방학에 88체육관의 수영강습을 받게 하셨다. 그런데, 그 시절 나는 그 수영강습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고, 그 수영강습 때문에 어머니한테 맞기도 엄청 맞았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물을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렇게 폼 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수영도 할 줄 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당시에는 어머니께서 다소 강압적으로 수영을 배우도록 하셔서였는지, 그 수영강습이 너무 싫었다. 그냥 물놀이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수영을 배우도록 놔두셨다면 좀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 와서 떠올려보니 그렇게 어머니와 함께 88체육관을 다니던 순간들 조차 그리운 추억으로 아련히 떠오른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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