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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위치한 초등학교를 다녔던 탓에 말 그대로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네 친구를 가질 수 없었고, ‘서른 즈음에를 통해 여러 번 등장한 다섯 살 적에 만난 죽마고우 성훈이가 지금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초등학교 친구다.

그렇게 동네 친구가 없었던 탓에 초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은 너무나도 외로웠지만, 중학교는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가까운 곳에 입학한 덕분에 나는 드디어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네 친구를 만들 수 있었다.

물론, 이후 고등학교는 다시 경기도 일산 신도시에서 서울로 다녔던 탓에,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를 가져본 것은 중학교 시절이 유일하고, 아마 그래서 지금까지도 중학교 친구들이 그나마 가장 많은 것 같다.

어쨌든, 중학교 시절의 여름방학부터는 꼭 부모님이 극장에 데려가지 않아도, 사촌형제들과 어울릴 기회가 줄어들어도 그렇게 외롭지 않았다.

마침 이 시기부터는 사촌형제들이 하나 둘씩 미국으로 건너가버려서 어차피 그들과 어울릴 기회조차 없었다.

나는 이 시기부터 영화와 음악에 본격적으로 빠져들면서 드디어 외로움을 즐기기 시작했다. 어차피 형제 하나 없는 나의 인생은 내가 스스로 그 외로움을 즐기지 않는다면 너무나 불행할 것이라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나는 이 시절에 음악을 그냥 듣는 게 아니라 음악에 미쳐서 들었고, 그 시간들이 쌓이면서 결국 중학교 3학년 겨울에 통기타를 구입하기에 이른다.

중학교 시절부터는 친구들과 극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여름방학이면 꼭 봐야 할 영화들을 기필코 극장에 가서 보고왔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으로 기억되는 쥬라기 공원이 개봉했던 그 여름방학에 지금까지도 역사적인(?) 흥행작들로 남아있는 영화들이 가장 많이 개봉했던 즐거운 여름방학으로 기억된다.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중학교 시절에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동네 친구들이 생기면서 그들과 탁구도 치러 다니고, 농구도 하면서 더 이상은 외롭지 않은 여름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즐거운 중학교 시절을 뒤로하고 나는 10년이 넘도록 살았던 서울 마포구 중동의 성산아파트를 떠나 경기도 일산 신도시로 이사를 했고, 서울의 명지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또 다시 동네 친구가 하나도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은 그나마 고3 때 일산 신도시가 급격히 개발되면서 자전거를 타고 일산을 쏘다니며 놀았던 기억 외에는 아무런 즐거운 추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우리 학교는 여름방학에 보충수업을 해서 방학 중에도 우중충한 교복을 입고서 일산에서 서울로 학교를 나가야 했고, 에어콘도, 선풍기도 없는 교실, 그것도 50명도 넘는 남학생 교실에서 한 여름에 보충수업을 받는 것은 정말 지옥이었다.

그 당시에도 그렇게 느꼈지만 정말 그 보충수업은 안 하느니만 못한 시간낭비, 체력낭비였고, 그 소중한 시간을 그렇게 보낸 게 억울하기까지 하다.

그렇게 우울하고 억울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 비단 그 우울함과 억울함은 여름방학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나를 짓눌렀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지옥같은 시절에, 아니 오히려 그렇게 지옥같은 시절이었던 덕분에 나는 이 시기에 기타와 친해질 수 있었고, 영화와 음악에 더욱 미칠 수 있었으며, 이 시기부터는 혼자서 극장에 가거나 연극을 보러 가는 일이 아주 자연스러워졌다.

이 시기의 그 외로움과 우울함과 억울함이 없었더라면 오히려 나는 기타와 그렇게까지 친해지지 못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못한 인생을.

어쨌든,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시절의 여름방학은 그저 그 끔찍한 보충수업과 함께 했던 우울했던 기억 뿐이다.

다행히 고3 시절부터는 독서실에서 만난 동네 친구도 생기고, 일산 신도시가 재미있는(?) 곳이 되면서 그나마 기억에 남는 여름방학을 보냈던 것 같다.

이 시절에는 까까머리를 감추기 위해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호프집에 들어가 기본 안주만 놓고서 생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어설픈 어른 흉내를 냈다.

무더운 여름날 밤, 독서실을 같이 다니는 친구와 자전거를 타고서 일산 신도시 곳곳을 괜히 쏘다니면서 노래방도 가고, 배가 고프면 편의점에서 사발면을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도 부쩍 늘었고,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 얘기에 인생 애기를 하다보면 우리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했던 그 공부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그것들이 너무나 쓸모없고 의미없게 여겨지기도 하고, 오직 대학 하나만 바라보며 그렇게 지옥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참 허무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결국은 이렇게 저마다 나름대로의 삶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는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우울하고 억울한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지...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고등학교 시절의 여름방학들을 그렇게 보낸 게 지금까지도 참 아쉽다.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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